서울 용산구 신천동은 한강을 내려다보는 얕은 구릉지대에 조성된 마을이다. 현대자동차 용산사옥 뒤쪽으로 소공원이 하나 있는데, 이 공원에 함석헌기념공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주소는 서울 용산구 신천동 30-3이다.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선생은 민중운동가, 민주화운동가다.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했다. 1916년 양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가 1919년 3·1운동에 가담해 학업을 중단했다. 1921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해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으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계우회사건, 성서조선 필화사건 등으로 감옥을 자주 드나들었다.
1947년 3월 월남해 YMCA에서 성서 강해를 했다. 1956년부터 ‘사상계’에 글을 발표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비판했고, 19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면서 자유당 정권에 도전했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5·16을 어떻게 볼까’로 군사정권에 도전했다. 1962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해 퀘이커교와 친밀관계를 굳혔다. 1967년 장준하의 국회의원 옥중출마를 지원하기도 했다. 1970년 4월 ‘씨ᄋᆞᆯ의 소리’를 창간했고, 민중운동을 전개하며 반독재민주화운동에 힘을 힘썼다. 그는 1989년 2월 4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2002년에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2006년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함석헌 기념공원은 2021년에 고 함석헌 선생 탄생 120주년을 맞아 용산구가 그의 옛집 터 인근에 만들었다. 함석헌 선생은 용산구 원효로 4가 70번지의 집에 1956년부터 1982년까지 26년건 거주했다. 그는 4·19 10돌을 맞아 1970년 4월 19일 자택에서 ‘씨ᄋᆞᆯ의 소리’를 창간했다.
공원은 482㎡ 규모로 크게 함석헌 기념공간,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나뉜다. 공원 조성과 함께 옛집 터 인근 도로(효창원로12길) 100여m에 ‘함석헌길’ 도로명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