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기운 제압하기 위해 지은 금천 호압사
호랑이 기운 제압하기 위해 지은 금천 호압사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3.05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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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가 태조의 꿈 해몽하며 창건…절 마당엔 500년 느티나무 두 그루

 

서울 금천구의 호압사(虎壓寺)에는 창건과 관련한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조언으로 한양을 도읍으로 중하고 궁궐을 지었다. 어느날 태조는 꿈을 꾸었다.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고, 반은 모양을 알수 없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궁궐을 들이 받으려 했다.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어 짓고 있던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해 있는데, 어디선가 한양은 비할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나타났다. 태조는 노인에게 무슨 묘안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노인은 손가락을 가리켰다. 태조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호압사 전경 /박차영
호압사 전경 /박차영

 

태조가 꿈에서 깨어나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부탁했다. 무학대사는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호암산(虎岩山)에 절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은 절이 호압사라고 한다.

호압사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호암산이 호랑이 머리처럼 우뚝 서 있다. 그 기세를 꺾기 위해 이 곳에 절을 지었다는 전설은 그럴 듯했다.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 /박차영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 /박차영

 

서울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산 자락에 위치한 호압사는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에 창건되었고, 창건자는 무학대사다. 호암산은 관악산과 쌍봉을 이루는 삼성산의 지산이며, 숲보다 바위가 많고 그 바위들이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다.

호압사는 조계종 관할이며, 본사는 봉은사다. 태조의 아들 태종이 호압이라는 현액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호압사 범종루 /박차영
호압사 범종루 /박차영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앞서 한양의 지세를 파악했다.

한양은 내사산과 외사산으로 두 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사산(內四山)은 북쪽에 백악산(북악산), 남의 남산, 동의 낙산, 서의 인왕산으로 그 곳에 한양도성을 축조했다. 한양 외곽에는 북으로 북한산(삼각산), 남으로 관악산, 동으로 용마산, 서로 덕양산의 외사산(外四山)이 둘러싸고 있다. 이 외사산의 남쪽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두 봉우리가 붙어 있다.

조선은 개국후 한양에 궁궐을 건립할 때 풍수지리를 민감하게 따졌다. 남쪽에 우뚝 선 관악산과 삼성산의 두 봉우리에서 미칠 화를 염려했다. 관악산은 불()의 기운이 넘치고, 삼성산은 호랑이()의 기운이 궁궐로 다가온다는 게 풍수전문가들의 해석이었다.

관악산의 화기는 남대문의 현판을 세로로 만들고 남대문 앞에 연못(南池)을 만들어 막기로 했는데,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해결 방도는 그 곳에 절을 지어 호()의 기운을 제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은 절이 호압사라고 한다.

 

호암산 입구 /박차영
호암산 입구 /박차영

 

신동국여지승람 금천조에는 시흥군 현금 윤자(尹滋)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풍수지리설 간룡법에서 금천의 동쪽의 산세가 호랑이가 걸어다니는 것과 같고, 그 중에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렀다. 무학대사가 이것을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했고,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10리쯤 되는 것에 궁교(弓橋)를 만들고 또 북쪽으로 10리즘 되는 곳에 사자암(獅子庵)을 지었다. 모두 호암산을 호랑이 형상으로 본 것이며, 범이 달려가는 형세를 누르려고 한 것이다.

땅의 기운이 쇠락한 곳에 사찰을 세워 재난을 방지하고 안락을 기원하는 도참사상이 드러나고 있다. 호압사는 풍수지리학에서 호랑이 심장에 해당한다. 꼬리에 해당하는 시흥3동 부근에 탑을 세운 것, 허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석구(石狗)를 세운 것 등이 모두 도참사상과 관련이 있다.

 

호압사의 수령 5백년 느티나무 /박차영
호압사의 수령 5백년 느티나무 /박차영

 

하지만 호압사는 조선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쇄락했다가 1921년 약사전 6칸을 다시 지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1994년 주지로 부임한 원욱(元旭) 스님에 의해 10여년에 걸쳐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압사에는 석불좌상(약사불)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호압사 한가운데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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