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주장
페니키아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주장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3.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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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되는 여러 각석, 해류, 고대 지도 등을 근거로 제시…반론도 높아

 

아메리카 대륙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발견한 것으로 세계역사학계의 공인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2천여년도 더 전에 페니키아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버클리에 높이 1.5m, 2.9m, 길이 3.5m의 다이튼 바위(Dighton Rock)가 있는데, 그 바위에는 이상하게 생긴 문자가 새겨져 있다. 1680년 이 각석을 처음 발견한 영국인들은 인디언들이 새겨놓은 각석(刻石)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0년후인 1783년 예일대 총장이자 신학자, 아랍어 학자인 에즈라 스타일스(Ezra Stiles)는 다이튼 각석의 문자가 유대어라고 확신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개신교 목사이자 타로점 연구자인 안투안 쿠르 드 제벨렝(Antoine Court de Gébelin, 1725~1784)은 페니키아의 일파인 카르타고 사람들이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방문한 기념으로 새겨놓은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당대 저명한 학자들의 견해여서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렇게 믿었다.

 

미국 매세추세츠에 있는 다이튼 록 각석 /위키피디아
미국 매세추세츠에 있는 다이튼 록 각석 /위키피디아
다이튼 록 각석의 복사본 /위키피디아
다이튼 록 각석의 복사본 /위키피디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북대서양의 해류를 거론하기도 한다. 북대서양엔 대양환류(Ocean gyre)가 도는데,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를 항해하다가 이 해류에 휘말려 북아메리카에 도달했을 것으로 관측한다. 북대서양의 사르가소해(Sargasso Sea)에 관해서는 이미 고대로마 시절에도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사르가소해는 바닷말(해초류)이 뒤덮여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에트루리아의 작가 아비에니우스는 BC 5세기의 카르타고 항해자 히밀코(Himilco)가 해초로 뒤덮혀 있는 대서양에서 표류한 사실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북대서양의 사르가소 해 /위키피디아
북대서양의 사르가소 해 /위키피디아

 

이 주장은 19세기초 모르몬교도들이 주장하면서 확산되었다. 모르몬교 창시자 요셉 스미스는 1823년 천사에게서 고대문자로 새겨진 금판을 받아 이를 번역해 모르몬경(Book of Mormon)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르몬경에 따르면 아메리카 인디언은 구약시대 유다왕국의 후손이며, 예수 그리스도도 생전에 아메리카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모르몬교는 미국 연방정부와 기독교의 탄압을 받아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전했고, 모르몬경의 주장은 비주류 소수의견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모르몬교에선 가나안 사람, 특히 페니키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온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르몬교 신자이자 고고학자인 로스 크리슨센(Ross T. Christensen, 1918~1990)은 유다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Zedekiah)의 아들 가운데 뮬렉(Mulek)이 살아남아 아메리카로 건너왔으며, 뮬렉은 페니키아인이라고 주장했다.

 

레바논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석관의 선박모형. 2세기경 페니키아 선박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레바논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석관의 선박모형. 2세기경 페니키아 선박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페니키아인의 미국 발견설에 대한 반론도 드세다. 고고학자 존 볼드윈(John Denison Baldwin)1871년 저서 고대 아메리카’(Ancient America)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문명이 페니키아인에 의해 건설되었다면, 페니키아 문자가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야 도시 팔랑케와 코판에서 페니키아 문자와 어떤 공통점을 가진 문자가 발견된 적이 없다.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서 발견된 글자는 페니카아 알파벳과 완전히 다르고, 오히려 중국 한자처럼 상형문자에 가깝다.”

1872년 브라질 대서양 연안의 파라이바에서 페니키아 글자가 적힌 비석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비석에는 이집트에서 출발한 페니키아 배가 아프라카 해안에서 폭풍을 만나 도착했는데, 그 비석에는 이집트 파라오 네코(Necho)가 언급되어 있었다. 네코 2세는 나일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를 뚫었고, 그의 명령으로 페니키아 선대가 아프리카 주변 해역을 일주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파라오였다.

이 비석이 내용의 사실이라면 페니키아인의 아메리카 발견설이 확인되는 셈이다. 이 비석은 브라질 국립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네토(Ladislau de Souza Mello Netto)에게 전달되었고, 네토는 처음에 이 명문(銘文)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후 프랑스의 문헌고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800년 기간에 사라진 글자와 새로 생긴 글자가 혼재되어 있다면서 비석이 위조라고 주장했다. 브라질 박물관장이 한방 먹은 것이다. 네코는 비석을 숨겨두고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람을 찾으려 했으나 끝내 허탕을 쳤다.

그러다가 1960년대 미국 고고학자 사이러스 고든(Cyrus H. Gordon)은 비석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또다른 마국 고고학자 프랑크 크로스(Frank Moore Cross)는 여전히 위조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후 페니키아인의 아메리카 발견설에 대해 미국학계는 지지론자와 비판론자로 갈라졌다.

 

배트 크리크 각석 /위키피디아
배트 크리크 각석 /위키피디아
히브리 동전 /위키피디아
히브리 동전 /위키피디아

 

페니키아의 아메리카 발견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비교적 폭이 넓다.

지지론자의 한사람인 사이러스 고든은 미국 남부 두 곳에서 컬럼버스 이전에 유대인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석제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중 하나가 배트 크리크 각석(Bat Creek inscription)이다. 그는 이 각석의 글자가 히브리 동전의 문자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로스 루나스 십계명 바위 /위키피디아
로스 루나스 십계명 바위 /위키피디아

 

고든은 또 뉴멕시코주 로스 루나스 십계명 바위(Los Lunas Decalogue Stone)도 콜럼버스 이전의 유태인 도래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마크 맥메너민(Mark McMenamin)1996년에 페니키아 항해자들이 BC 350년에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BC 350년에 주조된 카르타고 금화 뒷면 아랫부분에 아주 조그마하게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신세계(New World)라는 것이다.

 

BC 350년 카르타고 동전의 문양 /Mark McMenamin
BC 350년 카르타고 동전의 문양 /Mark McMenamin

 

이탈리아의 지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루치오 루소(Lucio Russo)는 서기 2세기 그리스의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근거로 페니키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루소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 명시된 행운의 섬’(Fortunate Isles)과 지중해의 위치를 재계산했는데, 그 섬의 위치가 카리브해의 안틸레스(Antilles) 제도라고 비정했다. ‘행운의 섬또는 축복의 섬은 고대에 대서양에 있다는 전설적 섬으로 알려져 있다. 루소는 프톨레미오스가 페니키아 선원에게서 그 정보를 얻을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페니키아 도래론에 대한 반대론이 거세다. 페니키아인 또는 가나안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주장은 개인적 소견에 불과하고, 그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위작 또는 위조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Dighton Rock

Wikipedia, Theory of Phoenician discovery of the Americas

Wikipedia, Morm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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