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나루터 근처에 박목월 기념하는 소공원
용산나루터 근처에 박목월 기념하는 소공원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3.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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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의 한사람…‘산유화’, ‘청노루’, ‘나그네’ 등 주옥같은 시를 쓴 곳

 

박목월(朴木月, 1915~1978)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인이다. 그를 기리는 목월공원이 서울용산구원효로 3가에 조성되어 있다.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1939문장’(文章)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세 시인은 청록파라고 불리며, ‘청록집을 발간했다.

목월공원이 이 곳에 세워진 것은 그가 이 곳에서 살며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용산구 주민들이 그가 죽은지 20년 되는 1998년에 목월공원을 조성했고, 이후 2009, 2014, 2018년 세차례에 걸쳐 단장했다.

 

목월공원 표지 /박차영
목월공원 표지 /박차영

 

박목월은 1915년 경주 태생으로, 본명은 영종(泳鐘)이다. 해방직후인 1945년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인 1947년 원효로 3277번지 전차종점 부근에서 터를 잡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눈 대표작으로, ‘어머니’, ‘사력질’, ‘산유화’,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등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아시아 자유문학상과 서울시 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목월시비 /박차영
목월시비 /박차영

 

이곳 원효로 3가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물류 기지였던 용산나루였다. 용산나루에는 백성들이 세금으로 낸 곡식(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이 드나들었고, 용산 인근에는 쌀가마를 쌓아 놓는 만리창 등 큰 창고가 있었다. 조선소도 있어 국가에서 필요한 선박을 만들고 수리했다.

해방후 판자집이 들어섰다. 한강 정비를 하기 전에 현대자동차 원효로 본사 등은 백사장이었다. 큰물이 나면 이곳이 물바다가 되곤 했다고 나이든 사람들이 전한다. 박목월 시인도 그 가난한 시절의 사람들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목월공원 위치 /네이버지도
목월공원 위치 /네이버지도

 

소공원에 잠시 머물면서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공원에 게시한 그의 시를 옮겨본다.

 

<모일(某日)>

詩人이라는 말은 /姓名위에 늘 붙는 冠詞/ 이 낡은 帽子를 쓰고/ 나는/ 비오는 거리를 헤매었다/ 이것은 全身을 가리기에는/ 너무나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人間/ 평생 마른옷만 입을가부냐./ 다만 頭髮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달무리>

달무리 뜨는/ 달무리 뜨는/ 외줄기 길을/ 홀로 가노라/ 나 홀로 가노라/ 옛날에도 이런 밤엔 / 홀로 갔노라/

맘에 솟는 빈 달무리/ 둥둥 띠우며/ 나 홀로 가노라/ 울며 가노라/ 옛날에도 이런 밤엔/ 울며 갔노라

 

<구름밭에서>

비둘기 울 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다래머루 넌출은/ 바위마다 휘감기고/ 풀섶 둥지에/ 산새는 알을 까네/

비둘기 울 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산엄어서/ 우는 비둘기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낡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릎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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