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의 젊은 오름 성산일출봉
5천년의 젊은 오름 성산일출봉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3.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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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분출된 화산으로, 화산재와 물이 응고해 형성된 지형

 

성산일출봉이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제주 자연경관으로는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해발고도 182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가파른 길은 숨이 가쁘다. 정상부에 오르면 사발 모양의 너른 분화구가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눈에 들어오고,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장관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성()처럼 우뚝 솟은 산이라 하여 성산(城山)이었으나, 일출이 아름답다 해서 일출봉(日出峯)이 붙어 성산일출봉으로 부른다. 매년 1231일에는 성산일출축제가 열린다.

 

성산일출봉의 일출 /제주도청 홈페이지
성산일출봉의 일출 /제주도청 홈페이지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바닷속에서 분출해 만들어진 수성화산이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화산재가 바닷물을 머금어 퇴적층이 끈끈하게 되어 흘러내리지 않고 급한 경사를 이루어 쌓이게 되었다.

성산일출봉의 나이는 5,000년으로 지질학으로는 매우 젊은 산이다.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성산일출봉 응회구는 수심이 얕은 해저에서 분출해 해수면 위로 성장한 섯치형(Surtseyan type) 화산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과거 화산활동과 퇴적작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수성화산에 대해서도 분출 및 퇴적작용 해석의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한다.

형성 초기에 육지와 떨어져 있었다가 파도에 의해 침식된 퇴적물들이 해안으로 밀려들어와 육계사주(陸繫沙洲)를 형성했다. 이 사주는 만조 때에 물에 잠겼다가 간조 때면 본토와 이어져 터진목이라고 했다. 1940년엔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는 육지와 완전하게 연결되었다.

 

성산일출봉 /제주도청홈페이지
성산일출봉 /제주도청홈페이지

 

정상에는 지금 600m8만여 평에 이르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릇처럼 오목한 형태로 되어 있다. 한때는 농사를 짓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온통 억새 풀이 자라고 있다. 분화구 서쪽 바위 틈에는 생이물이라는 샘이 있는데, 물의 양이 아주 적어 참새들이나 먹을 정도라고 한다. ‘생이는 참새같이 작은 새를 일컫는 제주말이다.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자그마한 봉우리(암석)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성산일출봉의 봉오리가 100개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하나가 모자라 아흔아홉개이기 때문에 호랑이도 사자가 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의 분화구 /박차영
성산일출봉의 분화구 /박차영

 

성산일출봉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성이다. ··북의 절벽은 바다에 빠져 있고, 서쪽은 육지로 이어져 있어 바다나 뭍에서 침입해오는 적을 방어하기 천혜의 요새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려 원종 12(1271)에는 김통정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성산에 토성을 쌓았으며, 선조 30(1597) 임진왜란 때는 제주 목사 이경록이 수산진성(水山鎭城)을 이곳으로 잠시 옮긴 적이 있다. 일출봉 정상 동쪽에는 성산 앞바다에 자주 나타나는 왜구와 외적을 발견하고 신속히 전달하는 통신업무를 담당했던 봉수대가 있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는 일본군이 성산 일출봉을 요새화하기 위해 해안 절벽에 약 2년에 걸쳐 24개의 굴을 팠다. 이때 판 굴은 높이 3~5m 넓이 3m 길이 10~50m 정도로, 서너 개의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로 통하도록 해놓은 굴도 있다. 일본군은 굴 속에 폭탄과 어뢰를 가득 실은 쾌속정까지 감춰놓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패전했다. 이 굴을 뚫을 당시 일제의 수탈은 너무 가혹해 성산리 주민들은 다른 마을로 이주해 갔다고도 한다. 이후 이 인공굴들은 해녀들의 탈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등경바위 /박차영
등경바위 /박차영

 

성산일출봉에는 전설이 많다. 일출봉 등산로 중간쯤 길목에 등경돌’(燈檠石) 또는 징경돌이란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 네 번 절을 했다고 한다.

등경돌은 제주섬의 조물주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은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바구니로 삼고 건너편에 있는 우도를 빨랫돌로 하여 옷을 매일 세탁했다고 한다. 옷이 한 벌밖에 없었기에 날마다 빨래를 했으며 밤에는 헤진 데를 꿰매 입었는데, 이때 등경돌에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한편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이 성산에 토성을 쌓을 때 그의 부인이 밤마다 돌에 불을 밝히고 바느질을 했는데, 부인이 불빛을 조금만 돋우었으면 좋을 걸이라고 하자, 장군이 돌덩이 하나를 주워다가 그 위에 얹어주고 불을 밝히니 부인이 좋아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 주변 /박차영
성산일출봉 주변 /박차영

 

성산일출봉에도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4·3항쟁 고성리 청년들과 오조리 마을 주민 100여 명이 터진목에서 토벌대에 의해 죽었다. 일출봉 북쪽 낭떠러지 암벽을 낀 해안가에 움푹하게 들어간 우뭇개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의 해안절벽 /박차영
성산일출봉의 해안절벽 /박차영

 

일출봉을 중심으로 성산포 해안 일대는 청정해역으로 동남쪽 해안에는 암석지대·자갈지대·모래사장 등이 있다. 이 일대에는 녹조류·갈조류·홍조류 등 총 127종의 해안식물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해조상을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곳은 제주분홍풀, 제주나룻말로 지칭되는 신종 해산식물의 원산지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해산동물의 경우 총 177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 중에 많은 한국산 미기록종이 포함되어 우리나라 해산동물의 분포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주목되는 지역이다.

 

성산일출봉 /박차영
성산일출봉 /박차영

 

성산일출봉은 지방기념물로 관리하다 20007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72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201010월에는 UNESCO 세계지질공원에 인증되었고, 2011년도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 201212월 한국관광 기네스 12선에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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