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형제가 적이 되어 싸웠다
6·25 전쟁에 형제가 적이 되어 싸웠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3.2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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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의 배경…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입구에 형제의 상이 서 있다. 두 젊은이가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다.

지름 18m, 높이 11m의 이 청동조형물은 6·25전쟁 당시 각각 한국군과 인민군이 되어 적으로 만나게 된 형제의 비극을 작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총을 어깨에 맨 장교가 형 박규철 소위로, 한국군 제8사단 제16연대 소속이며, 인민군 복장을 한 동생은 북한군 제8사단 제83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동생 박용철 하전사다. 형제는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만났다. 전투 중에 형제는 서로를 알아보았고, 서로에게 겨눈 총을 거두고 얼싸 안았다.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사진=전쟁기념관 홈페이지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사진=전쟁기념관 홈페이지

 

두 형제의 사연은 이렇다.

박규철·용철 형제는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황해도는 공산 치하로 넘어갔다. 공산당은 지주 계급인 아버지를 붙잡아가 심하게 고문을 하고 과수원을 몰수해 버렸다. 이에 장남 박규철은 남한에 가 공부를 더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허락해달라고 했고, 동생 용철에게는 부모님과 여동생 박금희를 부탁하고 남하했다. 그때 박용철의 나이는 20세가 되기 전이었다.

박규철은 남하해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에 가입했고,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6·25가 발발하자 그는 일등상사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소대장이 부상으로 후송되자 소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고향 황해도에 남아 있던 동생 박용철은 강제로 징집되어 북한군에 하전사로 배치되었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날, 형 박규철은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나 불효자식놈이라고 호통을 쳤고, 그는 꿈에서 깨어나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치악산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박규철 소위가 이끄는 소대가 인민군을 추격하는데, 5~6m 전방에 도망치던 어린 나이의 인민군 하나가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목격했다. 박 소위는 인민군 병사를 생포하겠다는 생각으로 추격해 인민군 병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죽이지 않을테니 도망가지 말라.”

적병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가 바로 동생 박용철이었다. 박규철 소위는 너 박용철 아니냐고 소리치자, 박용철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박규철은 뒤따라가며 용철아, 나야, 니 형이야! .”이라고 소리쳤지만, 박용철은 계속 도망쳤다. 박용철은 도망치다가 경사지에서 나무 뿌리에 걸려 쓰러졌다.

박용철은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박규철은 몸을 날려 동생의 몸을 덮쳤다. 그리고 너 박용철이지?”라고 하자, 그 소년병은 라고 대답했다.

박규철은 내가 니 형 규철이라고 하는데 왜 도망쳐라고 했다. 동생은 형을 알아보았다. 형제는 서로를 끌어 안았다. 박규철은 동생을 끌어안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소대원들은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했다. 박 소위는 소대원들에게 이 인민군이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밝혔다. 이에 소대원들은 형제의 만남을 축하해 주었다.

최동식 625 참전유공자 원주지회장은 강원방송(GI)과의 인터뷰에서 총알이 빗발치게 쏟아지는 그 순간에 동생을 발견하고 가서 동생을 끌어안았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흐느껴우는 장면을 보고 그 주위에 전우들 모두가 다 한참 동안이나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동생 박용철은 형이 소속한 부대의 배려로 국군으로 현지에 입대해 형과 함께 근무했다.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박차영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박차영

 

형제의 사연은 치악고개 전투에 참여했던 안만옥씨가 1989년 전쟁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한국전쟁 참전 수기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윤성진 조각가 등이 '형제의 상' 조형물을 제작해 전쟁기념관 개관과 함께 전시했다.

이 이야기는 천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용산전쟁기겸관의 동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6·25 전재의 성격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한덩어리가 되어 서로 안고 았는 형제의 모습에서 화해, 사랑, 용서의 의미를 엿볼수 있다.

하부 조형물은 고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국에서 수집한 화강석 조각을 쌓아 만들어 민족의 통합과 통일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였다. 양쪽으로 찢어진 돔이 위로 갈수록 아물어지는 형태는 남북통일에 대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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