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적 관점에서 본 임진왜란
경제사적 관점에서 본 임진왜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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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조선의 고급 물산을 원했다…가토, 함경도 단천 은광 한때 점거

 

조선 침공에 앞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는 오키나와의 류큐(琉球) 국왕을 위협해 칭신납공(稱臣納貢)을 요구하고,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세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위협했다. 아울러 200여척의 배로 중국 연해의 펑후(澎湖) 섬과 타이완(臺灣)을 공격하도록 준비했는데, 명이 펑후에 방어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좌절됐다. 도요토미는 방향을 바꾸어 조선을 거쳐 육로로 명()을 공격했다.

15924700여척의 왜선이 대마도에서 바다를 덥쳐 부산포를 침입했다. 부산 첨사 정발(鄭撥),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했다. 왜군의 북상이 시작되었다.

 

왜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에게는 은()이 곧 무기였다. 일본인들은 조선에는 대규모 은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함경도 단천(端川)이다.

가토 기요마사 /위키피디아
가토 기요마사 /위키피디아

 

조선은 초기부터 금·은등 귀금속 채굴에 힘을 기울였다. 1398(태조7) 군인들을 동원해 단천에서 금을 채굴했고, 경상도 안동, 황해도 등지에서 금과 은의 채굴을 시험해 보았지만, 단천 이외에는 경제성이 없었다.

태종은 1407년에 은의 채굴을 중지시켰는데, 그 이유는 은 채굴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실록은 적었다.

그후 1503(연산군 9) 상민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에 의해 연은분리법(회취법)이 개발됐다. 이에 단천은 은산지로 변모했고, 영흥 등지의 납 산지에서도 은을 제련하게 됐다.

조선 정부가 명나라 사신들에게 개인적으로 면포를 뇌물성 선물로 주었는데, 중국 사신들은 돌아가는 길에 평안도를 지나면서 부피가 큰 면포를 은으로 바꿔 귀국하는 일이 빈발했다. 그러자 조선정부는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서 은이 난다는 소문이 명나라에 전해지면 조공품으로 달라고 할 것을 두려워 중종때(1516) 다시 단천 은광을 폐쇄했다.

그런데 일본이 오히려 조선에서 개발된 회취법 기술을 훔쳐가 은을 대량생산하게 됐고, 조선은 오히려 일본에서 은을 수입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당시 세계 기축통화는 은이었고, 중국에선 세금을 은으로 걷었다. 그런 시기에 조선에서 개발한 기술로 은을 대량 생산했더라면 무역을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남겼지 않을까. 당시 조선 왕조는 은을 대량 생산하면 중국에 뺏긴다고 생각해 은 생산을 쉬쉬하고 광산을 폐쇄했다.

 

북한 함경남도 단천시 /위키피디아
북한 함경남도 단천시 /위키피디아

 

가토는 조선의 은 냄새를 맡은 것 같다. 가토의 본거지 규슈 구마모토(雄本)은 아시아 무역거점이었던 나가사키(長崎)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고도의 은 제련기술을 보유하고, 중국 사신들이 선물로 준 비단과 포목을 은으로 바꿔 갈 정도로 은이 많이 생산된다는 소문을 중국 상인과 왜상(倭商)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가토는 제2군을 맡아 동쪽 공격로를 맡았다. 고니시 유기나카(小西行長) 의 제1군이 평양에서 명군에게 발이 묶여 있을 때 가토군은 철령을 넘어 함경도로 달려갔다.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군인들이 원주민에게서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El Dorado)의 소문을 듣고 남미 끝까지 뒤져 볼리비아에서 포토시(Potosi) 은광을 찾아냈듯이, 가토도 조선의 은광을 향해 달음질쳤다.

715~16, 가토는 단천에 입성했다. 그는 단천의 소덕(蔬德)에서 은을 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헌하고, “은광을 개발해 전비에 보태겠다고 보고했다.

일단 전투가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가토는 단천을 수하 구키 히로다카(九鬼広隆)에게 맡겨 은광을 채굴하라고 지시하고, 본인은 북상했다.

하지만 가토의 단천 점령은 짧게 끝났다. 정문부(鄭文孚)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의병들이 일어나 북관대첩(北關大捷)에서 왜군을 대파한데다 명군이 평양성을 탈환, 빠르게 남하하자 가토군은 단천 은광을 활용할 틈도 없이 남쪽으로 도주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군대는 조선 왕조에 주둔비로 은을 요구했다. 명나라는 앞서 몽골과의 전쟁에서 은을 유통시켰는데, 조선에서도 군수물자를 은과 교환하고자 했다. 이에 전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선조 임금은 단천 은광 채굴을 명했다.

 

임진왜란 전란도 /위키피디아
임진왜란 전란도 /위키피디아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경제와 무역 전쟁의 연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도 도요토미의 과대망상에 의해 벌어졌지만, 경제 전쟁이기도 했다. 왜란 한 세기 전부터 동아시아에 의미있는 경제적 변동이 나타났고, 그 흐름이 격화하면서 전쟁으로 치달은 것이다.

전쟁의 명분은 중국()을 치러 갈테니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는 일본의 요구를 조선이 거절한 것이었다. 전쟁은 참혹했다. 임금은 의주까지 피난했고, 7년 전쟁 기간에 전국이 유린됐다.

도요토미는 조선의 고급물산 원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조선과의 무역 거래에서도 적자를 보았다. 왜란 이전에 조선의 상인들은 중국에서 비단과 원사(原絲)를 사서 일본 상인에게 팔아 많은 이득을 남겼다. 일본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면포와 곡물, 도자기도 사갔다. 전국(戰國) 시대에 일본의 경제상황은 넉넉지 않았다. 전국이 분열되어 세력각축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생산물이 없었다. 일본은 구리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고, 중국산 고가품을 사는 과정에서 은을 지불해야 했다.

조선의 기술자들이 개발한 은 제련법을 훔쳐 일본에서 은광 개발이 촉진됐다. 은 생산으로 일본은 조선과의 무역, 스페인등 유럽국가와의 중계무역에서 빚어진 무역적자를 다소 해소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리한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도요토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연합해 1587년 전국을 통일했다. 도요토미는 통일 과정에서 도시의 부상(富商)들의 협조를 얻어 조선·중국과의 해상관문인 하카타(博多, 후쿠오카) 등을 장악해 상권과 무역권의 통일적 확보를 꾀했다. 이어 토지와 농민을 장악하기 위해 전국적인 토지 조사와 호구 조사를 실시하고, 새로운 신분 규정을 정립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정권은 다이묘(大名)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다. 토지 소유에서 제외된 하급 무사들의 불만을 샀다. 더욱이 조선에서 삼포왜란(三浦倭亂), 중국에서 닝보(寧波)의 난()이 일어나 명·조선과의 공무역이 거의 폐쇄된데다 지방에선 쇼군의 명을 따르지 않는 왜구들이 독자적인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중국 비단은 일본의 크고 작은 영주들에겐 신분을 과시하는 물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이었다. 조선면포는 옷감보다 배의 돛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일본에선 면포 이전에 배의 돛이 돛자리 종류인 구초(口草)로 만들어졌는데 조선산 면포 돛은 그것에 비해 가볍고 탄력이 있었다. 따라서 항속과 항해거리를 크게 높였다. 경쟁력 있는 신제품이었다. 면포는 섬나라 일본의 해상운송에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일본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는 이렇게 중요한 상품의 수입을 독점할 계획을 세웠다. 군사력은 경제력을 밑바탕으로 한다. 도요토미는 쇼군의 경제력을 높이고, 지방 다이묘들의 무력 근거를 없애기 위해 사무역 또는 밀무역을 근절할 필요가 있었다.

도요토미는 일차적으로 전국 각지의 다이묘들에게 개별적인 해적행위를 금지시키고, 동시에 이 조치를 담보로 중국에 정규교역을 재개해줄 것을 요청하는 교섭을 진행시켰다. 하지만 왜구의 침공과 노략질에 시달려온 명나라는 일본의 교역 요구를 거절했다.

경제사학자들은 도요토미가 교역단절 사태를 무력으로 해결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쟁 중에 왜군이 한때 조선 최대 은광이었던 함경도 단천을 점령한 것도 이런 배경을 설명해 준다. 왜군은 퇴각하면서 수많은 우리의 도공을 잡아갔다. 그렇게 해서 비싼 값을 주고 중국산 도자기를 사기보다는 조선 도공을 통해 고급 도자기를 공짜로 갖겠다는 목적이었다.

임진왜란은 종국적으로 일본의 패배였고, 조선과 명의 승리였다. 하지만 300년후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도요토미의 망상을 다시 실천하게 된다.

 

동래부순절도 /육군박물관 소장
동래부순절도 /육군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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