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덫⑤…중국군 끌어들인 솔로몬제도
중국의 덫⑤…중국군 끌어들인 솔로몬제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4.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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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만과 단교후 중국과 수교…중국과 안보협정 체결, 미국 긴장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가 미중 갈등의 초점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에 정식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등 영어권 나라들이 화들짝 놀라 대표단을 보내 솔로몬제도를 설득하고 나섰다. 솔로몬제도는 어떤 나라이고, 그동안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는 지리적 명칭이기도 하고, 남태평양상 국명이기도 하다. 1568년 스페인 탐험가 알바로 데 멘다냐(Álvaro de Mendaña)가 이 섬을 발견했을 때 구약성서의 솔로몬 왕이 금광을 개척했다는 오빌(Ophir, 열왕기상 9:26~28)일 것으로 착각하고 솔로몬제도라고 이름지었다.

하지만 이 섬에선 금덩어리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잊혀졌다. 1886년에 독일이 뒤늦게 태평양에 눈독을 들이고 솔로몬제도의 북쪽 섬 몇 개를 점유하자 영국이 1893년 일방적으로 남부 솔로몬제도를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1899년 영국은 독일과 협정을 맺어 솔로몬제도 전체의 영유권을 갖되, 북부 뉴기니를 독일에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1975년 영국은 자치령으로 전환했다가 1978년에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시켰다. 독립한 솔로몬제도는 입헌군주국으로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국왕이며, 여왕은 총독을 파견한다. 의회가 구성되어 총리가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솔로몬제도 위치 /위키피디아
솔로몬제도 위치 /위키피디아

 

솔로몬제도는 1978년 독립한 이래 대만을 지지해온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던 나라가 2019년에 대만과 결별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큰 섬 6개와 90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는 면적이 29,400로 우리나라의 4분의1쯤 되고, 인구는 65만명 정도 된다. 호주에서 북동쪽으로 1,000km 떨어져 있으며, 2차 대전 때엔 일본군과 미군의 격전지였다.

인구구성은 95%가 멜리네시아인으로 거의 단일종족 국가이지만, 섬마다 별도의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부족간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과달카날과 말라이타 두 섬 주민간 대립이 극심하다. 수도 호니아라가 있는 과달카날 섬이 2차대전 기간에 미군 주둔으로 발전되었는데, 말라이타인들이 대량으로 과달카날 섬으로 이주하면서 두 부족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2003년 RAMSI 소속 호주 병사들이 민병대의 무기를 압수해 소각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2003년 RAMSI 소속 호주 병사들이 민병대의 무기를 압수해 소각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98~2003년 사이에 과달카날인과 말라이타인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말라이타인이 경제권을 쥐자 과타카날인들이 민병대(IFM)를 조직해 말라이타인들의 부동산 등을 몰수하며 폭력사태가 빚어졌다. 수천명의 말라이타인들이 고향으로 도주하거나, 민병대(MEF)를 조직해 과타카날 민병대(IFM)에 대항했다. 2000년에는 말라이타 출신의 총리 울루팔루가 말라이타 민병대(MEF)에 납치되었다. 같은 부족인데 총리는 왜 자기네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울루팔루는 사임했으나 소요는 격화되었다. 경제는 붕괴되었고, 2001년초 국가는 부도가 났다. 나라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경찰은 무기력했고, 민병대에 의한 린치가 만연했다. 총리는 수시로 바뀌었다.

보다 못해 영국 여왕이 파견한 총독이 권한을 행사했다. 총독은 평화유지군의 주둔을 의회에 요청했고, 의회는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총독은 태평양의 영연방 국가에 파병을 요청했다.

호주,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피지, 파푸아뉴기니, 마샬군도, 통가, 사모아 등 15개국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솔로몬군도 지원군(RAMSI, Regional Assistance Mission to Solomon Islands)이 조직되었다. 20037RAMSI2,200명의 군인과 경찰로 구성되어 솔로몬제도에 파견되었다. 외국군의 개입으로 소요사태는 진압되었다. 이 분쟁으로 200여명이 사망했다.

이 난리를 치르면서 두 부족이 별도의 나라를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었으나, 일단 평화유지군에 의해 국가가 통합되었다.

 

솔로몬제도 /브리태니카
솔로몬제도 /브리태니카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로 구성된 평화유지군의 주둔에도 불구하고 2006년엔 중국인에 대한 폭력사태가 빚어졌다. 그해 총선에서 총리가 된 스나이더 리니가 중국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원주민들은 중국인들이 섬의 부를 유출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섬나라엔 중국인이 1% 정도 소수종족인데 잘사는 그들이 원주민들에게 밉보였던 것이다.

폭도의 난동으로 차이나타운은 파괴되었고,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소요도 평화유지군에 의해 간신히 진압되었다.

 

다국적 평화유지군(RAMSI)1311개월간 주둔한 후 20176월 솔로몬제도에서 완전 철수했다. RAMSI가 철수한 이후 이 나라의 치안이 다시 불안해 졌다.

20194월 총선은 평화유지군이 철수한 이후 첫 선거였다. 선거후 마나세 소가바레(Manasseh Sogavare)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에게 네 번째 총리직이었다.

소가바레는 이번에 중국을 선택했다. ‘하나의 중국의 원칙에 의해 30여년간 유지해온 대만과의 외교관계도 단절해야 했다. 소가바레의 선택에 태평양의 맹주를 자처했던 미국이 당황했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다급해졌다.

솔로몬제도가 중국에서 1,000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왕따 당한 대만은 솔로몬제도가 중국이 던진 부채의 덫에 걸려들었다고 빈정댔다. 1,000억 달러는 섬나라의 연간 GDP66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중국이 그만한 돈을 줄리도 없겠지만, 1인당 국민소득 600달러에 불과한 태평양 섬나라로선 가히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일단 1,000억 달러 지원설은 보도로만 그치고 확인되지 않았다. 브로커의 언론플레이일수도 있고, 소가바레 정권의 희망사항일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올들어 솔로몬제도가 중국과 안보협정을 맺었다는 소문이 돌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왕이 외교부장과 제레미아 마넬레 솔로몬제도 외교장관 사이에 안보 협정이 정식 서명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국제사회의 관측은 중국이 솔로몬제도에 경제적 지원을 했을 것이고, 그 미끼에 소가바레 정권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지원금액이 얼마인지, 중국의 지원 내용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태평양을 뒤뜰로 여기고 있는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조정관, 국무부 대표등을 솔로몬제도에 급파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소가바레 정부의 친중정책은 부족간 내분을 격화시키고 있다. 지난해말 인구가 가장 많은 말라이타섬 주민들이 친중정책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고, 지방정부는 친서방을 주장하고 있다.

조용하던 이 섬나라의 정치가 서방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Solomon Islands

Wikipedia, Regional Assistance Mission to Solomon Islands

Wikipedia, Manasseh Sogav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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