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통념을 깬 다빈치 코드
예수 그리스도의 통념을 깬 다빈치 코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4.24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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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후손이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 베스트셀러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2003)2009년 현재 8,000만부가 판매되고 44개국에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추리소설이다. 2006년에 콜럼비아 영화사가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했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소설로는 해리포터 다음이다.

다빈치 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작가의 추리적 전개가 탁월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독교의 금기사항이라 할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모습을 소재로 다뤘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하고 그 후손이 이어오고 있다는 가설이 예수를 신격화한 기독교 세계를 대단히 흥분시킨 것이다.

 

다빈치 코드 표지 /네이버 책
다빈치 코드 표지 /네이버 책

 

댄 브라운이 영감을 받은 작품은 성당기사단의 폭로’(The Templar Revelation, 1997), 마가렛 스타버드의 저서, ‘성혈과 성배’(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1882)과 같은 책들이었다. 이런 참고자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초기 기독교 등에 관한 역사를 다루었는데, 사료적 근거가 약했다. 다만 이런 소재들이 댄 브라운이라는 소설가의 손에서 대단한 파괴력을 갖게 되었다.

소설의 가설은 신약성서에 창녀로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아내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할 당시 마리아 막달레나는 임신 중이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리스도 아이의 안전을 위해 삼촌인 아리마테아 요셉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프랑스인 골(Gaul)로 도망을 쳤다. 막달레나는 그곳 유대인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딸을 낳았는데, 이름은 사라였다.

유대인들은 막달레나를 신성한 왕족으로 모셨다. 예수는 솔로몬과 다윗의 후손이고, 막달레나는 이스라엘 12지파중 벤자민지파의 일원이었다. 유대인들은 막달레나를 신성한 왕족으로 여기고, 사라의 출산을 비롯해 막달레나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후손인 가계도를 남겼는데, 그 내용이 상그리엘 문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예수가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가설을 받아들였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 하지만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다. 이후 교회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 즉 결혼 사실과 후손이 있다는 내용 등을 전부 삭제했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신약성서는 예수의 인간성을 그린 저술은 모두 배제되고 예수를 신격화한 내용만 전해진다. 그리고 막달레나를 창녀로 만들어졌다.

숨어 지내던 그리스도의 혈통은 5세기경 프랑스의 메로빙거 왕조와 결혼했다. 메로빙거 왕조는 파리를 세운 왕조로 오늘날 프랑스의 기원이 된다.

메로빙거 왕조가 붕괴된 이후 그리스도의 후손들도 흩어졌다. 그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조직이 시온 수도회다. 시온 수도회의 임무는 샹그리엘 문서를 보호하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혈통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혈통은 교회의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을 바꿨는데, 플랑타르와 생클레르라는 두 개의 성으로 남아 숨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기본 가설이 소설의 근간이다. 카톨릭, 기독교, 그리스정교 등 예수를 신성시하고 있는 여러 종교들은 소설이든 영화든 다빈치 코드가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작품이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다빈치 코드는 보호를 받았다.

 

다빈치 코드를 반대하는 시위 /위키피디아
다빈치 코드를 반대하는 시위 /위키피디아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은 파리에 세미나를 위해 왔다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피살자는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였다. 랭던은 경찰에 범인으로 의심받고, 소니에르의 손녀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내용 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옆에 있는 사람이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견해가 등장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럴듯하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은 V, 즉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기호이며 두 사람의 외곽선을 보면 M자가 되는데,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의 약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은 예수의 옆에 있는 사람이 12 사도중 한사람이며, 다빈치가 예쁘장하게 그렸을 뿐 여자는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소설가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위키피디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위키피디아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소피 느뵈는 예수의 피가 흐르는 막달레나의 후손이었고, 할아버지 자크 소니에르는 시몬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였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무덤을 루브르 박물관의 역피라미드 지하로 설정했다.

댄 브라운은 로즈라인(Rose Line)이라 불리는 파리 자오선(Paris meridian)이 루브르 박물관을 관통한다는 점을 착안했다. 파리 자오선이 그어진 것은 1634년 루이13세 때다. 그 아래 막달레나의 무덤이 있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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