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언급한 노르웨이 모로쿠리엔 공원은?
문 대통령 언급한 노르웨이 모로쿠리엔 공원은?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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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독립하면서 양국이 평화를 기리는 의미로 만든 곳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하랄 5세 국왕 주최로 열린 국빈만찬에서 모로쿠리엔 평화공원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노르웨이에는 세계 역사상 처음 세워진 평화공원이 있다, “1814년 노르웨이와 스웨덴 간 마지막 전투를 기념하며 양국 국경에 세운 모로쿠리엔공원이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어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두 형제 나라에서 더 이상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문구가 공원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고 들었다면서 노르웨이가 평화를 향해 지치지 않고 걸어온 것처럼 우리 역시 평화를 향한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 주최로 열린 국빈만찬에 답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노르웨이 하랄 5세 국왕 주최로 열린 국빈만찬에 답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문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18147월 스웨덴 군대가 노르웨이를 침공했다. 노르웨이는 침략군과 맞서 싸웠고, 양측 모두 수백명의 사망자를 냈다.

침공의 이유는 스웨덴의 영토팽창욕이었다. 당대에 유럽에 판을 친 일종의 제국주의적 침략이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스웨덴 국왕 카를 요한 14세는 반() 프랑스 연합전선의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 등 6국 동맹에 붙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연합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은 프랑스 편에 섰던 덴마크를 침공했고, 18141월 덴마크 국왕으로부터 노르웨이를 분리해 병합하는 내용의 킬 조약(Treaty of Kiel)을 체결했다.

이에 노르웨이 총독은 제헌의회를 소집해 스웨덴과의 합병을 거부했다. 노르웨이 지도자들은 반프랑스 6개국 연합국에 독립을 호소했지만, 어느 한 나라도 노르웨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종연횡을 밥먹듯 했지만, 약소국의 호소는 귀를 막았다.

결국 노르웨이 의회는 스웨덴의 침공에 대비해 병력 동원령을 내렸다. 3만명이 소집되었다 스웨덴 병력은 45,000, 게다가 최신 전함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20여일간 전개되었다. 스웨덴의 일방적 승리였다.

전쟁 막판에 노르웨이 지도자들은 스웨덴과 협상을 벌였다. 스웨덴 국왕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독자적인 의회와 사법체제를 운영하고 나라 이름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으로 하자고 제의했다. 스웨덴의 카를 요한 14세는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무리하게 지배할 경우 열강들의 반발을 초래할수 있다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810일 양측은 협상을 타결하고, 두 나라의 이름이 들어간 연합왕국이 탄생했다.

 

그후 노르웨이는 91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는 의회는 물론 사법, 자체 군대, 통화체계를 유지하며 준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많은 이슈에서 스웨덴과 국가이익이 배치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외교권을 스웨덴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스웨덴의 보호무역무역 정책이 노르웨이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노르웨이는 영국과 경제교류를 많이 했는데 비해 스웨덴은 독일과 더 많은 교류를 했다. 스웨덴은 발트해 주변의 이해관계에 치중한 반면에 노르웨이는 유럽 이외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위키피디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위키피디아

 

복속한지 91년째 되던 1905년 크리스티안 미켈센(Christian Michelsen) 총리는 보수와 진보 세력을 아우르는 정부를 수립했다. 노르웨이 자치정부는 연합왕국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스웨덴의 보수우파, 민족주의자는 물론 역사학자까지 나서 노르웨이는 본디부터 스웨덴의 땅이라며 노르웨이의 분리독립을 반대했다. 양측 군대가 국경에 배치되고 일촉즉발의 상황에 돌입했다.

하지만 스웨덴도 노르웨이를 무력진압할 힘이 없었다. 코앞에 주변에 독일과 러시아가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고 있었고, 영국이 은근히 노르웨이 독립을 지원했다. 스웨덴 국왕은 마침내 노르웨이의 분리독립을 승인했다. 노르웨이 의회는 덴마크 왕실에서 국왕을 모셔와 입헌국주국 형태의 노르웨이 왕국을 출범시켰다. 전쟁 없이 노르웨이의 독립이 달성된 것이다.

 

노르웨이 모로쿠리엔 평화공원의 기념탑 /위키피디아
노르웨이 모로쿠리엔 평화공원의 기념탑 /위키피디아

 

1910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유럽 평화위원회에서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이의 평화조성 필요성이 거론되었고, 이를 위한 기금이 모금되었다. 1914년 양국이 마지막 전투를 치른 100주년을 기념해 모로쿠리엔(Morokulien)에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모로쿠리엔 평화공원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국경도시인 아이즈콕(Aidskog) 시와 에다(Eda) 시 사이에 있는데, 18148월 두 나라의 마지막 전투가 이 지역에서 불과 15떨어진 칼스타드에서 치러진 것을 기념했다. 기념비 뒷면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형제 나라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역사를 공부해 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노르웨이 국빈만찬 발언은 북한보다는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병합해 식민통치를 했고, 36년 후에 우리는 일본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문 대통령이 현재 악화된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모로쿠리엔 평화공원을 언급했으면 더 적절한 비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모로쿠리엔 기념비를 언급했다. 남북은 원래 한 민족이고, 하나의 나라였는데, 해방 이후 분단되었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합병한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지배하고 지배받았던 나라의 평화 정착 노력과, 이념이 달라 갈라져 싸우던 나라의 평화는 다르다. 인용하는 예시도 달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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