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에 드러난 석회 사용의 흔적
우리 문화재에 드러난 석회 사용의 흔적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5.01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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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시대에도 사용…문화재연구원, 전통석회 분석보고서 발간

 

석회(石灰)는 자연에서 채취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건축재료로 사용되었다. 석조물에 석회를 바르면 질감이 좋아지고 그 위에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석회가 활용된 사실이 문화유물을 통해 확인된다.

한성기 백제의 <하남 감일동 고분>에선 내부 벽석의 마감재로 회가 사용되었다. 시료를 살펴보면 백색의 덩어리 형태로 패각(貝殼, 조개껍질)이 파쇄된 상태로 혼재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모래나 자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의 패각은 원형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나 일부 패각에서 관찰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사각형(장방형)의 미세구조와 표면 형태를 종합해 이매패류 굴과의 패각이 활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마감재로 사용된 회()의 표면에 초본류(草本, 지상부가 연하고 물기가 많아 목질을 이루지 않는 식물)의 줄기로 추정되는 눌린 흔적(압흔)이 관찰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다양한 용도로 석회가 활용되었다. 또한, 석회석을 소성(燒成, 광물을 구움)하여 석회를 제조한 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남한산성 봉암성, 한봉성 여장>에 사용된 줄눈과 속채움을 분석한 결과 석회와 토양광물이 혼합되어 있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화성 축조 당시 삼물회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성곽 여장, 왕릉, 분묘 등 조선시대 건축물에 삼물회가 사용된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전통 건축물은 축조 이후에 자연적 또는 인위적인 훼손이 생겨 지속적인 수리·보수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현대에는 축조 당시의 석회가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시대별·지역별 건축물의 중요도나 용도에 따라 사용되는 석회의 종류가 다르고 시공기술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므로 당시의 축조 양상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문화재와 발굴 유적에서 석회류를 확보하고, 이중 축조시대와 용도를 특정할 수 있는 전통석회 시료 58점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문화재유적지 출토 전통석회 분석보고서를 발간했다.

분석시료는 시대에 따라 삼국고려조선 시대로 구분되며, 성곽여장, 건축물, , 고분, 회곽묘, 온돌 유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보고서는 전통석회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문화재와 유적지에서 출토된 전통석회에 대한 시기별·용도별 구분이 가능하게 하게 되었다.

보고서 원문은 문화재청과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수 있다.

 

하남 감일동 백제고분 석실묘 후벽에서 채취한 회 /문화재청
하남 감일동 백제고분 석실묘 후벽에서 채취한 회 /문화재청
하남 감일동 백제고분 석실묘 후벽에서 채취한 패각시료 /문화재청
하남 감일동 백제고분 석실묘 후벽에서 채취한 패각시료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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