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 홀을 따라서①…10일간 조선해안 탐사
바실 홀을 따라서①…10일간 조선해안 탐사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2.05.07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16년 9월 영국 해군함장 바실홀, 옹진군 소청도, 충남 서천, 진도 상조도 탐사

 

바실 홀(Basil Hall)1816년 인도 총독 애머스트경(Lord Amherst) 일행이 대영제국을 대표해 청의 가경제를 알현하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수행한 영국 해군장교다. 영국 사절단이 베이징에 머물 때 홀은 조선 서해와 동지나해를 탐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양과 서양의 패권이 부딛친 아편전쟁 전의 일이다. 때는 순조 16(1816), 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던 조선 해안에 두 척의 영국 전함이 열흘간 훑고 지나갔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그레이트게임을 벌이던 영국이 극동아시아로 확전하기 앞서 동아시아 바다에 대한 지리 정보를 확보하려는 차원이었다.

 

바실 홀 /위키피디아
바실 홀 /위키피디아

 

18168월 두 척의 영국 함정이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를 출발했다. 한 척은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이 지휘하는 알세스트(Alceste)호이고, 다른 한 척은 바실 홀 중령의 리라(Lyra)호였다. 조선 해안에 대한 지도 작성과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다. 바실 홀은 항해를 마치고 2년후(1818)조선 서해안과 류큐 항해기’(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를 출간했다. Loo-choo는 류큐(琉球), 즉 오키나와 열도를 의미한다.

 

바실 홀(1788~1844)이 서술한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가 첫 상륙한 곳은 북위 37° 50‘, 동경 124° 50’으로,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의 피부색은 구릿빛이었고 무서운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약간 야만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그들의 지위는 모자로 구분이 되었는데 모자의 차양은 지름이 1미터이고 모자의 높이는 23센티미터였다. 모자라기 보다는 양산 같았다.“

그가 양산 같았다고 한 모자는 양반들이 쓰던 갓이었다. 영국인들은 마을로 들어가 대표자들을 만났다.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 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조선인들의 생각을 짐작하는 게 전부였다.

바실 홀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곳 사람들은, 태연자약과 무관심이 한데 섞인, 일종의 우쭐대는 몸가짐의 소유자들이었다. 때로 몸짓, 손짓과 그림을 통해 던진 질문의 내용이 명확히 확인되었을 경우에도 그들은 비웃음과 콧방귀로 깔아뭉갰다. …… 이곳 사람들은, 태연자약과 무관심이 한데 섞인, 일종의 우쭐대는 몸가짐의 소유자들이었다.”

마을의 대표들은 나이 많은 양반들이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양반들의 허세를 짐작할수 있는 대목이다. 바실 홀이 소청도에 만난 조선 사람의 모습은 삽화로 그려져 그의 책에 삽입되어 있다. 삽화는 다른 사람이 그렸는데, 조선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과 생활습관이 담겨 있다.

영국인들은 소청도를 떠나면서 이곳 세 개의 섬을 에든버러 학술원 총재이자 바실 홀의 부친인 제임스 홀의 이름을 따 'Sir. James Halls Group'이라고 이름 지었다.

 

바실 홀의 저서(1818)의 한 페이지 /사진=이효웅
바실 홀의 저서(1818)의 한 페이지 /사진=이효웅

 

그 다음 도착한 곳은 94일 마량진(馬梁鎭)이다. 조선시대 마량진은 지금의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다. 영국인이 이곳에 도착한 사실이 순조실록(16719)에도 기록되어 있다. 실록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이르렀다.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이상한 모양의 배가 떠 있는 곳으로 가서, 한문으로 써서 물었더니 모른다고 머리를 젖기에, 다시 언문으로 써서 물었으나 또 모른다고 손을 저었다. …… 그들이 책 두 권을 끄집어 내어, 한 권은 첨사에게 주고 한 권은 현감에게 주었다. 그 책을 되돌려 주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기에 받아서 소매 안에 넣었다.”

영국인들이 준 책이 바로 영어로 된 성경이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던 것이다. 서천군에는 성경전래지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마량진의 조선인들은 서양인들이 귀챦기만 했다. 마량리 관리들은 영국인들이 빨리 섬을 떠나길 바랬다. 말도 통하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 곤장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신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곤장을 칠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바실 홀의 항해도 /사진=이효웅
바실 홀의 항해도 /사진=이효웅

 

마량진을 떠난 두척의 영국 함선은 98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상조도에 도착했다. 영국인들은 지금 도라산 전망대가 있는 상조도 정상에 올라 100여개의 섬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오르려고 마음 먹었던 높은 봉우리의 산은 비탈이 가파르고, 높다란 잡초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해발 600피트(180m0의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지쳤다. 산마루에 오르니 북쪽에서 동쪽으로 조선 반도가 어렴풋이 분간되었다. 눈길이 닿는한 올망졸망한 무수한 섬들이 북서에서 동으로 돌아 암쪽으로 뻗어가는 장대한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28세의 영국 해군장교는 다도해를 바라보고 지구의 극치”, “세상의 극치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바실 홀은 조선 서해안을 탐사한 이후 동지나해로 남하해 오키나와 열도를 탐사했다.

 

그는 1817년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만났다. 홀은 나폴레옹에게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고, 나폴레옹도 조선에 대해 동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816년 바실 홀의 항로 /사진=이효웅
1816년 바실 홀의 항로 /사진=이효웅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