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떻게 인디언을 보호구역에 몰아넣었나
미국은 어떻게 인디언을 보호구역에 몰아넣었나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5.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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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튼 사이즈의 ‘피와 천둥의 시대’…나바호 보호구역을 몰아붙인 미국인들

 

미국 역사에서 1842~1868년 기간은 전쟁과 내전, 인종갈등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독립해 미국에 합병되고,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 와이오밍을 얻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 수백명이 살상되고, 내전이 끝난후에는 백인들의 인디언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 이전의 미국과 이후의 미국은 완전하게 다른 세계가 된다. (blood) 바람이 불고 천둥(thunder)과 같은 대포 소리가 울리던 이 시기를 관통한 전설적 인물이 있었으니 카트 카슨(Kit Carson, 1809~1868)이다.

키트 카슨은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미국에선 전설적인 영웅이다. 그를 주제로 한 소설이 70편이나 나와 있다. 그의 이름을 따 1903년에 만들어진 영화 키트 카슨는 헐리웃 서부영화의 원조로 꼽힌다. 카슨은 미국 대중에게 가녀린 백인여자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손으로 인디언들을 죽이는 용감한 사나이로 그려져 있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멕시코인들과 싸우고, 남북전쟁에서 회색 군복의 남부군과 싸웠다

 

책 표지 /네이버책
책 표지 /네이버책

 

이 전설적인 영웅이 2001년 미국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햄튼 사이즈(Hampton Sides)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논픽션물 ‘Blood and Thunder: An Epic of the American West’이다. 국내에서는 2009년에 피와 천둥의 시대-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논픽션 피와 천둥은 키트 카슨의 전성기에 미국 서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술했다. 이 책은 앞의 소설들처럼 카슨을 슈퍼영웅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저자는 카슨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인들의 원죄인 인디언 말살을 방어하려 했다. 어쩔수 없이 그들을 죽이고, 집단수용소에 몰아넣어 간접살인을 했다는 것이다.

햄튼 사이즈의 책이 출판된 2001년은 9·11 테러가 발생한 시점이다. 무슬림의 악의 제국에 의해 선량한 미국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을 때 카슨과 같은 전설적 영웅이 필요했던 시점이다. 사이즈는 카슨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돌렸다. 작가는 인디언 문제의 본질이 미국인, 즉 백인들의 욕심에서 생긴 것을 인정하면서도 인디언들이 미국과의 약속을 깼기 때문에 정의의 사도 카슨이 나서게 되었다는 논리를 이끌어 냈다. 그런 논리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야만적 테러리스트에 대응하는 명분이기도 했다.

 

키트 카슨의 본명은 크리스토퍼 카슨으로, 당시로는 변경지대인 켄터키주 매디슨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두 번의 결혼으로 열다섯 아이를 낳았고, 카슨은 입에 풀 칠을 하기 위해 스무살에 덫 사냥에 나서 모피의 소재인 비버를 잡으러 서부를 돌아다녔다. 당시 미국 서부는 스페인령, 후엔 멕시코 땅이었다.

하지만 비버도 멸종위기에 처했고, 카슨은 32세가 되던 1842년에 미국 서부를 탐험하는 프리몬트 원정대에 참여해 길안내를 하게 된다. 그는 동물적 감각을 가졌다. 앞에 인디언이 있는지, 위험물이 가로막고 있는지를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다. 프리몬트는 자신의 서부여행기에 카슨을 소개했다. 프리몬트의 저서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카슨은 덕분에 영웅이 되었다.

미국과 멕시코 전쟁(1846~1848)에서 카슨은 뛰어난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 도중에 커니(Stephen W. Kearny) 장군을 만나 캘리포니아에서 샌파스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남북전쟁 때에는 연방군(북군)에 속해 남군의 주력인 택사스군을 물리치고 뉴멕시코를 지켰다.

 

키트 카슨 /위키피디아
키트 카슨 /위키피디아

 

카슨의 역할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뉴멕시코의 인디언 나바호족(Navajo)을 보스케레돈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사이즈는 피와 천둥에서 보스케레돈도(Bosque Redondo)를 구상하고 실행한 것은 카슨의 상사였던 제임스 칼턴(James H. Carleton) 장군이었고, 카슨은 마지못해 그 명령을 따랐다고 했다. 하지만 카슨이 2차 대전때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름 없는 범죄를 나바호족에게 저질렀다는 비난에서 벗어날수는 없다.

칼턴이 뉴멕시코 사령관으로 발령받았을 때 남부연맹 소속 텍사스군이 퇴각했을 때였다. 그는 곧이어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칼탄의 생각으론 인디언을 멸종시키지 않고 일정 구역에 가두어 생활을 유지하게 한다는 자비의 선택이었다.

칼턴은 뉴멕시코의 오아시스와 같은 보스케레돈도에 마음이 꽂혔다. 그는 이곳에 인디언들을 몰아 넣을 생각을 했다. 나바호족의 고향에서 멀고 백인 개척민들의 마을에서도 격리되어 있다. 인디언들을 한군데 모아 농사를 짓게 하고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고 교화시킨다는 정신개조운동도 구상했다.

 

케니언 드 셰이 협곡 /위키피디아
케니언 드 셰이 협곡 /위키피디아

 

칼턴은 그의 구상을 카슨에게 실행토록 명령했다. ‘피와 천둥의 작가 사이즈는 카슨이 명령을 거부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잘못된 명령을 그는 마침내 수용했다. 칼슨의 정책은 우월적 인종주의가 창안해낸 아파르트헤이트와 다름 없었다. 남북전쟁에서 흑인노예의 해방이 선언되었지만 원주민인 인디언의 인권은 무시되었다.

칼턴은 보스케레돈도를 두 대양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전원이라고 했다. 12,000명의 나바호족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조치라고도 했다. 인디언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평화를 일깨우고 기독교 정산을 주입한다. 아이들은 새로운 생각과 생활방식에 젖어들 것이다. 어른들은 언젠가 죽는다. 세대가 교체되면 인디언들은 순화되고, 뉴멕시코엔 평화가 정착된다는 것이다.

칼턴은 자신의 철학을 백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했다. 그 일을 카슨에게 맡겼다. 글을 읽을줄 모르는 카슨은 칼턴이 시키는대로 했다. 칼턴의 이런 생각 이면에는 뉴멕시코에 금이 무진장 매장되었다는 착각이 사로잡고 있었다고 작가 사이즈는 설명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있었고, 콜로라도에서 금맥이 터졌다. 칼턴은 나바호 거주지역에 캘리포니아에 버금가는 금이 매장되어 있다고 믿었다. 나바호를 거주지에서 쫓아내고 백인 광부를 끌어들이겠다는 게 그의 숨겨진 생각이었다고 한다.

카슨은 미군을 무장시켜 나바호 벌판을 쓸고 다녔다. 미군은 초토화정책을 취했다. 인디언들이 재배하는 옥수수밭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저항하는 나바호는 죽였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포획했다.

 

1864년 나바호족의 먼 길 /위키피디아
1864년 나바호족의 먼 길 /위키피디아

 

나바호족은 아메리카 인디언 중에서 가장 번창했던 종족 중 하나다. 나바호는 카슨의 인간사냥과 몰이에 쫓겨 케니언 드 셰이(Canyon de Chelly) 협곡의 지붕으로 도피했다. 지금은 애리조나주이지만, 당시는 뉴멕시코 준주에 있던 340규모의 협곡이다. 오늘날 관광객들에겐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150년전 나바호족에겐 생존이 달린 도주가 벌어졌던 곳이다. 초토화작전은 나바호를 굶겨 항복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나바호족은 마침내 카슨이 주도하는 미군 원정대에 굴복했다. 186211월 나바호 추장들은 카슨에 무조건 항복을 하고 보스케레돈도로 가기로 했다. 칼턴은 일반명령 15호라는 조례를 선포했다. 나바호 부족들의 대이동을 명령한 것이다.

나바호 보호구역은 조상 대대로 살던 곳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들의 이동은 18648월부터 1866년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나바호는 가기 싫은 먼 길(long walk)을 가야 했다. 이 먼길을 가는 동안에 나바호 200명이 숨졌다.

살아 도착한 사람에게도 그곳이 낙원은 아니었다. 물은 알칼리성이 높은 센물이었다. 첫해엔 병충해가 들어 옥수수가 모두 죽었고, 자연재해가 닥쳤다. 굶주림에 탈출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통행증 없이 보호구역 밖으로 나가다 발견된 인디언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식량은 절대 부족했고, 백인들은 인디언 내부에 첩자들을 박아 넣었다.

꿈의 낙원으로 여겨졌던 보스케레돈도는 실낙원이 되었다. 연방정부는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쏟아부었으나, 인디언 정착촌은 저주받은 장소로 되어 갔다. 괴혈병이 발생하고, 홍역과 홍수, 이웃 코만치족의 공격으로 나바호족은 소멸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3,000명에 이르던 나바호 수용자 가운데 3분의1이 여러 이유로 숨졌다. 1868년 보스케레돈도의 나바호들은 파종을 거부했다. 그들에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나바호 네이션 /위키피디아
나바호 네이션 /위키피디아

 

18685월 키트 카슨이 58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일자무식, 위에서 시키는대로 일하는 맹종파였다. 이런 사람을 미국인들이 영웅화한 것은 수많은 작가들이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다.

카슨이 죽고난후 미국인들이 개과천선을 한 것인지, 나바호에게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조치를 내렸다. 그리곤 그곳에 보호구역을 그었다. 지금의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이다. 뉴멕시코, 애리조나, 유타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7로 대한민국의 3분의2를 넘는다.

칼턴이 명령하고 카슨이 수행한 보스케레돈도는 오늘날 미국이 저지른 인종청소의 대표적 범죄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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