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신이 된 중국 장군 田橫
서해의 신이 된 중국 장군 田橫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2.05.1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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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 홀을 따라서⑧…어청도, 외연도, 녹도에 전횡 모시는 제사 전승

 

전횡(田橫)은 기원전 3세기에 산 중국의 장군이자 제나라 왕(齊王)이다. 굳이 연대기를 따지자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나 고구려 주몽보다 수백년전의 인물이다. 이런 중국 인물이 서해 소청도, 외연도, 녹도에서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전횡은 또 전라북도 군산의 토성인 담양 전씨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전횡장군 초상화 /문화재청
전횡장군 초상화 /문화재청

 

전횡(?~BC 202)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 이렇게 적었다.

전국시대 齊王의 후예로서 나라 말기에 자립하여 왕이 된 뒤에 형세가 불리해지자 부하 500여 명과 함께 오호도(嗚呼島)로 피해 들어갔다. 한 고조(유방)王侯에 봉해 주겠다고 해 낙양(洛陽)으로 가다가 머리를 굽혀 신하가 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면서 자결하였다. 그러자 무리 500여 명도 모두 따라서 자결하였다.”

전횡은 산둥(山東)반도를 근거지로 한 제()의 장수로 나중에 왕에 올랐는데, 초의 항우를 주군으로 모셨다. 한의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자 전횡은 새로운 주군을 거부하고 자결을 선택했고, 그의 무리 500명도 그의 선택을 따랐다. 전횡의 죽음은 후대 성리학자들에게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모델로 여겨졌다.

 

전횡과 오백의사 /중국 維基百科
전횡과 오백의사 /중국 維基百科

 

이런 전횡이 서해 고도의 섬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수호신으로 모셔졌다. 충남 보령군 오천면 외연도의 전횡묘, 전북 군산시 어청도의 치동묘, 보령군 오천면 녹도의 당산이 바로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다. 어청도의 치동묘(淄東廟)와 군산의 치동원에서는 전횡장군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이들 섬은 한반도 최서단이라는 지리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충남 보령과 전북 군산으로 나눠져 있지만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어청도라는 지명도 전횡이 지었다고 한다. 전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BC 202년경 한 고조가 초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후 항우가 자결하자 전횡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일행은 돛단배를 이용하여 서해를 목적지 없이 떠다니던 중 중국을 떠난 지 3개월만에 어청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날은 쾌청한 날씨였으나 바다 위에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전횡은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고 푸를 청;()자를 따서 어청도(於靑島)라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전횡 장군을 모시는 어청도의 치동묘 /촬영=이효웅
중국의 전횡 장군을 모시는 어청도의 치동묘 /촬영=이효웅

 

그렇다면 사마천이 사기에서 전횡이 피신했다고 서술한 오호도가 어청도일까. 중국에선 오호도를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 사이에 있는 장산군도(長山群島)의 한 섬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은 500의 무리가 숨진 것을 슬퍼해서 嗚呼島라고 표기했지만, 그후 명칭이 烏胡島 또는 烏呼島로 바뀌었다. 중국에선 유교 덕목을 중시하며 산둥반도에 전횡을 모신 제왕전(齊王殿)이 건립되었다.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섬들 /네이버 지도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섬들 /네이버 지도

 

우리 역사에서 전횡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은 성리학이 도입된 고려말이었다. 고려말 유학자인 이제현, 정몽주, 이색, 이숭인, 권근, 정도전이 전횡에 대한 애도의 글을 썼다.

조선이 개국한 이후 불사이군의 논리가 쇠퇴하면서 전횡도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이후 유학자들이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전횡이 다시 살아났다.

숙종 시기 이후 전횡과 오백의사가 죽은 오호도가 충청도 어느 섬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영조 17(1741) 승정원일기와 영조실록에 그런 기록이 나온다사마천은 전횡과 오백의사가 낙양으로 가다가 자결했다고 기록했는데, 천년이상 세월이 흐른후 조선 땅에선 그들이 우리 영해의 어느 섬에서 죽은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영조는 오호도가 우리나라 홍주(洪州, 충남 홍성군)에 있다는데, 옛날의 자취를 자세히 살피고 오라고 어명을 내렸다. (영조실록 17521) 조선시대에 어청도는 충청도 홍주에 속해 있었다.

이렇게 서해 섬지방에서 내려오던 전횡의 전설이 사실처럼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후 어청도는 오호도 또는 전횡도란 별칭으로 불리었다.

서해에서 전횡의 전설이 전승되고 있는 곳은 어청도, 녹도, 외연도다. 이들 섬은 산둥반도에서 300km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외연도에선 맑은 날엔 산둥반도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도 있다.

서해의 섬들은 한국과 중국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인 것이다.

 

어청도 등대(1912년 점등) /촬영=이효웅
어청도 등대(1912년 점등) /촬영=이효웅
어청도항 /촬영=이효웅
어청도항 /촬영=이효웅

 


<참고자료>

김효경(한남대), 西海의 신령이 된 田橫, 역사민속학 제35(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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