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한곡에 시끄러웠던 세월
‘임을 위한 행진곡’ 한곡에 시끄러웠던 세월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5.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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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참석자 손잡고 노래 불러…변화 진정성 보여줬다는 평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손을 잡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로 시작되는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 추모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언론들은 신임 대통령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른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명박, 박근혜의 보수 정부 시절에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마다 이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인지 여부가 사회적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노래 부른 것으로 보수정권으로선 첫 제창이며, 새로운 변화를 실감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만큼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해묵은 이념갈등의 소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청와대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청와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운동가 고 백기완 선생이 1980년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할 당시 쓴 시 '묏비나리'에서 유래했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생이었던 김종률 등 10여명이 황석영씨 집에 모여 노래극 넋풀이 - 빛의 결혼식의 제작을 논의하다가 삽입곡으로 만든 노래다. 황석영씨가 백기완씨의 묏비나리를 개작해 노랫말을 만들고, 김종률씨가 곡을 붙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음악극 '넋풀이'에 마지막 곡으로 삽입했다. 넋풀이는 계엄군에 사살된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대학가의 저항가요로 확산되었고, 강렬한 노랫말과 비장한 곡의 흐름에 오월 광주를 대표하는 곡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1981년 김종률이 쓴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 /위키백과
1981년 김종률이 쓴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 /위키백과

 

19975·18기념일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제창하는 노래로 채택되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에 이 노래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다. 일부 보수세력이 작사자 황석영씨의 행적에 이의를 제기하고, 제목과 가사에 들어있는 '''새날'이 북한의 김일성과 사회주의혁명을 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황석영씨는 19893월 북한으로 건너가 1993년 귀국해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었다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게다가 황석영씨는 1991년 북한 작가 리춘구와 함께 북측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극우 보수세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기념식부터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참석자 가운데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의 형식으로 변경됐다. 이 노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따라 부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창(齊唱)과 합창(合唱)의 개념도 정의되었다. 제창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방식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면 참석자들이 불러도 되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합창곡에서 제창곡으로 격이 한단계 떨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5·18만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었다. 2013년 광주에서 개최된 5·18 행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되는 동안에 일어서기는 했지만,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2014년 행사에서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아예 일어서지 않았고, 그 옆에 있던 박준영 전남지사는 일어서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2015년엔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는 노래를 불렀지만,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기념행사에서 보수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정부측 인사는 부르지 않는 진풍경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또다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새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부르는지에 촉각이 곤두섰던 것이다. 윤석렬 대통령은 이날 양옆 참석자들과 손을 잡고 반주에 맞춰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이어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라며, “이를 책임 있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후손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출발이라고 했다.

통합과 화해는 먼데 있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노래 함께 부르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극단의 이념갈등을 풀어나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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