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전략적 요충 가림성 성벽이 드러나다
백제의 전략적 요충 가림성 성벽이 드러나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5.2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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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지도 확인…웅진·사비 방어의 전략적 요충, 백제부흥운동 근거지

 

가림성(加林城)은 백제 수도였던 부여 남쪽 금강하류에 쌓은 석성(石城)으로,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 23(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위사좌평은 국왕의 경호대장급인데, 이런 직책의 인물에게 성을 지키도록 한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맬해준다. 하지만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이 성은 백제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했는데,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해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사실에서 난공불락의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했다고 하며, 해마다 그에게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가림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가림성 /문화재청
가림성 /문화재청

 

가림성에 대한 8차 발굴조사에서 초축 성벽과 석축 배수로 등 백제가 사비도성 관문으로서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8차 조사는 202112월부터 진행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백제 시대 처음 성벽이 조성된 후에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5차례 이상 고쳐 쌓은 성벽의 흔적과 성벽을 다시 쌓을 때마다 성 안쪽에서도 시설물을 지속적으로 조성한 점을 확인했다.

 

가림성 8차 발굴조사의 외벽(위)과 내벽(아래) /문화재청
가림성 8차 발굴조사의 외벽(위)과 내벽(아래) /문화재청

 

조사된 성벽은 성흥산의 북쪽 빗면에 자리한 깊은 곡간부를 감싸는 구간이다. 성벽을 쌓기 전에 곡간부는 흙과 돌을 채워 수평하게 다짐했고, 사면부는 원지형의 지면을 고르게 하는 등 백제 토목 기술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기초 공사는 성 내측을 포함한 주변으로 넓은 범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 때 쌓은 성벽은 기초공사로 마련된 대지 위에 화강암을 가공하여 외벽을 쌓고 내측은 흙으로 쌓아 조성하는 내탁식(內托式) 공법으로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최대 5.2m, 폭은 외벽면을 기준으로 최대 12m이다. 성벽의 안쪽 끝자락에서는 성벽과 나란하게 조성된 석축 배수로도 확인되었다. 석축 배수로는 부소산성에서 확인된 석축 배수로와 같은 형태로 0.9~1m 너비로 돌을 세워 벽을 만들고 그 내부의 바닥에는 판판한 돌을 깔아 시설했다.

 

가림성 8차 조사에서 드러난 성벽과 배수로 /문화재청
가림성 8차 조사에서 드러난 성벽과 배수로 /문화재청

 

성벽은 백제 시대 당시 처음 축성된 이후 지속적으로 고쳐 쌓아지는데 외벽은 초축 성벽 앞쪽에 돌출되게 덧대어서 기존 성벽을 보강했고, 곡간부의 중앙에는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단에 큰돌로 성외벽을 축조했다. 성의 내측에서는 석축된 내벽이 확인되고 1~4단정도 남아있는 내벽면의 흔적으로 보아 조선 시대까지 최소 5차례 이상 수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 내측에서 확인된 시설물로는 2019~20년에 조사된 통일신라와 조선 시대 집수지 외에도 고려 시대 내벽에 붙여 조성된 우물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우물의 내부는 56×75정도의 사각형으로 깊이는 최대 3m 정도다.

 

가림성의 우물 내부 /문화재청
가림성의 우물 내부 /문화재청

 

발굴팀은 이번 조사에서 그간 가림성에서 시행된 적 없었던 성벽과 내부 공간 활용의 단면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었고, 가림성 북사면 곡간부에 조성된 성벽의 축조 기법과 성내의 배수체계 등 백제 토목기술과 함께, 꾸준하게 사용된 당시의 수개축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림성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두었다.

한편 발굴팀은 부여 가림성서문지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조사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문지는 개거식(開拒式)으로 2차례 이상의 고쳐 쌓은 (수개축, 修改築 )성벽을 확인했다.

 

가림성 서문지 /문화재청
가림성 서문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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