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기 흔든 홍콩 시위대…“중국보다 자유”
영국기 흔든 홍콩 시위대…“중국보다 자유”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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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심은 민주주의와 중국식 통제가 빚어낸 마찰…중국 민주화가 해결책

 

인구 740만명의 홍콩 주민 가운데 7분의1에 해당하는 103만명이 지난주 거리로 쏟아져 온 것은 단순하게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때문이었을까. 홍콩 당국이 이 법만 포기하면 시위는 잦아들 것인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캐리 람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 15일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범죄인 인도법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콩인들은 캐리 람의 조치는 시위에 놀라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일뿐, 언젠가 법안을 다시 꺼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시위대가 영국기(유니언 잭)를 흔드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그들은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이 그립다, “중국 공산당은 자유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영국이 99년간 통치하며 심어준 자유와 민주주의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고 두려워 한 것이 이번 시위의 본질일 것이다. 그들이 유니언 잭을 흔든 것은 영국 통치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아니라, 영국 통치의 유산인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미였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시위대가 영국 유니언 잭을 흔들고 있다. /블로그 사진
홍콩 국제공항에서 시위대가 영국 유니언 잭을 흔들고 있다. /블로그 사진

 

캐리 람의 홍콩 당국이 추진한 범죄인 인도법은 한 홍콩인이 대만에서 다른 홍콩인을 살해하고 홍콩에 도주해온데서 출발한다. 홍콩과 대만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다. 캐리 람의 정부가 홍콩을 범죄자의 도주처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대만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기 이전에 국내법을 개정하려 한 것이다.

문제는 이 범죄인 인도의 대상국에 중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중국을 비난하다가 실종된 사람들이 많은데다 중국이 개정 법안을 근거로 반중국적 홍콩인을 인도해달라고 하면 홍콩으로서는 내줄 수밖에 없게 된다. 홍콩인들은 이 법안이 본토에 의한 홍콩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로, 길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인 것이다.

 

오는 71일이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지 22년째 되는 날이다. 홍콩은 1898년 영국이 청()나라와의 조약에 의해 99년간 조차하기로 협정을 맺었고, 99년째 되던 199771일에 1초의 여지도 없이 중국에 주권이 반환되었다. 곧이어 19991220일 마카오의 주권도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제국주의 시대에 빼앗긴 영토가 중국해안에서 모두 소멸하게 된다.

그후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에 대해 12체제 방식을 유지해왔다. 중국은 홍콩에 대해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항인치항‘(港人治港)을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 반환 22년 동안 중국은 홍콩을 통합하려 시도하고, 이에 저항하는 홍콩인들의 반중 정서는 악화해 왔다.

 

홍콩시민들은 앞서 2014년에 도심을 점거하며 우산혁명을 일으켰다.

우산혁명의 발단은 중국 당국이 발표한 2017년 홍콩 수반(행정장관) 선거안이었다. 중국 전인대는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하자, 홍콩인들이 시위로 대항했다.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대학생들은 집회를 열고 동맹휴업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학생들도 가세했다. 이에 홍콩 당국은 농성 학생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고, 시민단체가 가세해 도심 점거 시위를 개시하면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확산됐다.

당시 시위는 한때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서방 언론은 당국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낸 시위대의 행동을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고 명명하며, 홍콩 민주화를 지지했다.

그후 우산혁명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는 정치운동도 생겨났지만, 홍콩은 양도할수 없다는 홍콩기본법에 막혀 사살상 좌초되었다.

 

20173월 있었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친중파이자, 2014년 우산혁명을 강제 진압하는데 앞장섰던 캐리 람이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지원 속에 선거인단 1,200명의 과반을 웃도는 777표를 얻어 손쉽게 홍콩 행정장관으로 당선됐다.

중국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는 가우데 본토인들이 홍콩에 대거 몰려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취업난이 가중된 점도 반중 정서를 키웠다.

중국 본토 정부가 홍콩 내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며, 2016년 입법회 선거(총선)에서 친독립 성향의 민주파 세력이 30석을 확보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캐리 람이 범죄인 인도법을 잠정중단함으로써 홍콩 시위의 발화점을 끄려고 시도하고 있다. 홍콩 시위가 그의 의도되로 진정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민주적 자치를 인정하지 않고 본토식 전체주의에 편입시키려 하는한 홍콩 민주화운동은 언젠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범죄인 인도법을 보류하는 조치로 시위를 막기보다는 홍콩의 자유를 보장하든지, 중국이 민주화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근본적 해결책이다.

홍콩인들이 영국기를 흔들며 자유를 외치는 모습에서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자유라는 개념이 앞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 /위키피디아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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