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기업들, 서방의 규제강화에 빠른 적응
러시아 기업들, 서방의 규제강화에 빠른 적응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6.05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안화로 결제하고 아시아 기업과 거래 강화…77%가 현 상황 적응 중

 

규제가 아무리 강화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EU가 러시아에 대해 금융 및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러시아 기업들은 규제의 허점을 찾아 뻐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최근 3개월 동안 금융, 물류, 파트너 발굴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14년 크림 병합 이후 지속되어 온 서방 제재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지는 추세다.

 

러시아 기업들이 우선 서방의 각종 경제제재를 피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기업과 수출품에 대한 금융·무역 규제를 강화한데 비해 아시아 국가들은 오랜 역사적 관계로 러시아에 대한 규제에 비교적 느슨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 블라디보스톡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열리던 국제수출입의 날 포럼이 올해는 극동지역 도시인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후 처음 열린 국제행사였다. 527일 열린 제5호 포럼에서는 러시아 기업가, 은행협회상공회의소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여해 경제제재에 따른 금융, 물류, 파트너 확보 등에 관해 애로사항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5월 27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수출입의 날 포럼 봄 세션. /코트라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5월 27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수출입의 날 포럼 봄 세션. /코트라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이번 포럼에서 러시아 기업들은 경제 제재 이후 러시아 시장에서 활동을 중단한 서방 기업을 대신할 신규파트너로 지리적 근접성, 문화경제적 유사성이 높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한 참석자는 최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는데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과 높은 발전 잠재성을 보아 현지 기업과의 협력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또다른 기업의 대표도 70여 개사 규모의 사절단을 꾸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기업인들은 이런 것들이 최근 러시아의 비즈니스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설명하면서, 우즈베키스탄보다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가입한 카자흐스탄과의 협력이 통관, 인증 등 여러 측면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러시아가 약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기계설비의 경우 기존 유럽 공급처에서 중국 대체 공급처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기계를 포함한 전반적인 제품의 교역에서는 중국을 비롯, UAE, 터키 등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선사 FESCO의 관계자는 사태 이후 일본 차량 수입이 주춤해진 사이 Cherie 등 중국 자동차 수입이 증가했음을 밝혔으며 또 다른 연사는 UAE의 정치적 안정성, 터키의 창고 보관 능력이 이들 국가의 장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 RBK에 따르면 20224월 한달동안 러시아인들은 터키에 136개의 기업을 설립하며 전세계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서방 해운회사들의 선적 중단에 대처해 러시아 기업들은 내륙운송, 극동항구 등 대체루트를 개발하고 있다.

무역 지원 플랫폼 운영기업의 A대표는 다양한 제재에 대응해 3개의 물류 경로를 확보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자바이칼스크를 통과하는 경로(만주경유철도), 몽골을 통과하는 경로(몽골횡단철도), 우수리스크를 통과하는 도로 운송(트럭킹) 경로 등을 예로 들었다.

건설자재 수출기업 T사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항을 통해 뉴질랜드,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로 수출하던 경로를 이용하는 것이 힘들게 되자 철도 운송 및 블라디보스톡항을 활용하는 대체 경로를 발굴하여 물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운송업체인 D사는 서방 제재에 대응해 3개의 대체 루트를 개척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중국 훈춘 철도 노선이고, 두 번째는 터키 이스탄불-러시아 노보로시스크 해상 운송 노선이며, 세번째는 러 극동을 경유한 모스크바-베트남 노선이다.

최근 발트해 연안 국가와 폴란드에서 러시아 화물에 대한 통관 검사가 강화되면서 러시아 기업들은 동부와 남부 국경, 특히 중국, 카자흐스탄, 코카서스 지역을 통한 국제 운송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최근 검문소, 진입로 등의 인프라 확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퇴출되고 달러와 유로 등의 결제가 어려워진 것이 러시아 기업엑덴 가장 큰 타격이지만, 러시아 기업들은 여기서도 빠져나갈 구명을 찾아내고 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달러와 유로로 결제하기 어려울 경우 위안화로 결제통화를 변경하고 있다. 건설자재 수출기업인 T사는 태국·베트남·방글라데시 파트너와 체결한 계약의 경우 3주 이내에 위안화로 송금을 받았다. 위안화 거래 시 2~3%의 마진률 손실이 있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미치진 않으며 러시아로 송금이 어려울 경우 베이징에 있는 사무소로도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규 거래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다.

또 해외 은행이 러시아로의 송금을 거절할 경우, 중국,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에 소재한 사무소 또는 본사가 나서 해당 은행과 접촉, 송금 거절 이유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이런 방법도 어려울 경우 다른 대체 은행을 찾기도 한다.

 

러시아 기업가 권리 보호 연구소가 자국기업 6,003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8%가 경제제재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이 중 77.4%는 이미 새로운 상황에 적응했거나 적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다만 11.7%가 제재에 대처하지 못해 폐업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러시아 기업인들이 직면한 가장 주요 애로로는 수요 감소(62.2%), 자금 부족(40.7%), 물류난(35.9%), 수입 어려움(26.6%) 등 순으로 나타났다.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56.4%)이 어려운 상황을 인정하고 근본적 변화와 새로운 경제 모델을 창출해아 한다고 답했으며, 반면 '전망이 없다'는 비관적인 답변은 3.8%에 불과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