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 ‘요도와 삼봉도’③…독도의 별칭
미지의 섬 ‘요도와 삼봉도’③…독도의 별칭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2.06.0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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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사람들은 요도와 삼봉도, 남쪽 사람들은 우청도…독도를 달리 표현

 

(에서 계속)

2. 경상도와 전라도 어민들의 울릉도·독도 항해

 

17세기부터 경상도, 전라도 어민들은 울릉도에 가서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고 배를 만들어 오면서 울릉도는 보물섬으로 소문이 났다.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윤속 삼척부사는 병진년(1796) 7월에 상경하여 사직하였는데, 임금이 여러 번 복귀를 재촉하는 교지를 내렸지만 굳게 사양하여 임금의 뜻을 거부하다 파직 당했다.  주1) 윤속 부사는 우릉(羽陵)의 팔륜아 사건(八倫兒事件)으로 서리를 신문하였는데, 그 서리(書吏)가 올린 원정(原情)에서 말하기를 우청도(羽淸島)는 망망(茫茫)한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그 섬이 삼척지방에 소속되었다고 하는 것은 일찍이 몰랐던 일이다.”라고 하였다.’ 주2)

 

척주선생안우릉 팔륜아 사건은 윤속 부사 부임 이전의 1787(정조11)에 울산 어민 14명이 울릉도에 가서 어복과 향죽을 몰래 훔쳐 나오다 삼척부 포구에서 붙잡힌 사건으로 주범과 종범으로 나누어 주범 8명을 팔륜아로 부른 것 같다. 서리가 취조하는 과정에서 어민들은 망망한 동해바다 가운데 있는 우청도(독도)까지 갔다 왔다. 주3)

연구자는 우청도(羽淸島)의 우()는 두 개의 섬이 멀리서 보면 새가 양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보이고, ()은 독도에서 보면 동도와 서도 사이가 2-3m정도로 얕아서 맑고 푸르게 보이기 때문에 양 날개를 펼친 맑고 푸른 섬이라는 뜻으로 작명하였다고 본다. 주4)  조선시대 남쪽의 어민들은 예전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다니면서 우청도를 알고 있었고, 그 섬은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삼척진영에 소속된 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삼척부의 서리들은 우청도를 몰랐다. 남쪽의 어민들은 울릉도를 다니면서 기상이 나쁘면 풍랑과 해류로 우청도까지 가게 되었고, 소문은 어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돌섬 독도를 알고 있었다.

 

우청도(독도)의 모습 /사진=이효웅
우청도(독도)의 모습 /사진=이효웅

 

. 맺음말

 

북쪽의 조선 어민들은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하여 울릉도에 숨어들었고, 남쪽의 어민들은 17세기부터 어렵과 배를 만들어 오기 위하여 울릉도로 갔다가 일본 어민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1696년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민들을 쫓아내고 일본에 가서 항의도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어민들은 울릉도를 중심으로 어렵을 하려다가 일부는 표류하여 독도에 갔다.

독도에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 온 어민들은 요도, 삼봉도, 우청도 등에 갔다 왔다고 소문이 났다. 조선 전기에 표류하여 갔다 온 섬은 요도와 삼봉도로 소문이 나서 관에서 수색을 했지만 그곳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조선 중기부터 남쪽어민들도 울릉도를 다니면서 우청도와 같이 독도를 알고 있었으나 관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요도와 삼봉도는 2017년 독도에 표류한 북한 어민들처럼 울릉도를 항해하다가 구사일생한 사람들이 소문낸 섬으로 독도라 추정되고, 요도와 삼봉도를 찾지 못하자 독도 삼봉도가 삼봉이 있는 울릉도 삼봉도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고 본다. 독도 표류항로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끝)

 

주1) 『척주선생안은 삼척지방 수령을 거처 간 역대 관리들의 명단과 삼척 지역의 모든 분야의 중요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1855(철종5) 강릉 김씨 한길댁 김구혁이 개서하였다.

주2) 『국역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 배재홍 역, 삼척문화원, 2003, 130.

주3) 『삼척군지, 우청도(羽淸島), 삼척군, 강원일보사출판국, 1984, 825.

주4) 「독도의 다른 이름 우청도, 이효웅, 서울신문(2002,12,1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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