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18세기 막장드라마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18세기 막장드라마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6.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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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과 파리 넘나드는 러브스토리에 영국식 입헌군주제의 우월성 심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1859)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혁명적 논리를 지시한다. 프랑스 귀족들의 가혹함, 수탈을 언급했지만, 그보다도 혁명가들의 몰인간성, 기요틴의 잔혹함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소설의 제목에서 제기한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인데 디킨스는 영국은 선, 프랑스는 악의 소재로 다뤘다. 앵글로색슨족이 프랑스 골족보다 위대하다는 전제가 소설 밑자락에 깔려 있다.

 

프랑스혁명을 그린 삽화(2권 22장, 바다는 계속 일렁이고) /위키피디아
프랑스혁명을 그린 삽화(2권 22장, 바다는 계속 일렁이고) /위키피디아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는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출신 찰스 다네이와 루시 마네뜨의 사랑이야기로 전개된다. 둘다 사연이 있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후작의 지위를 포기했고, 루시는 억울하게 바스티유 감옥에 18년이나 수감되었던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뜨의 딸이다. 두 선남선녀에 얽힌 가족사는 18세기판 막장드라마다.

막장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은 후작 에브레몽드 형제와 농민 출신의 드파르쥬 부인이다.

사건의 발단은 후작 형제가 자기네 농장에서 소작을 짓고 있는 여인을 겁탈하는 만행에서 출발한다. 쌍둥이인 에브레몽드 형제 가운데 동생이 임신 중인 여인을 겁탈한 뒤 죽도록 내버려뒀고, 그것을 막으려 덤볐던 남동생도 잔인하게 살해하고 남편도 죽였다. 막내 여동생만이 오빠에 의해 먼 곳으로 피신해 살아남았는데, 그 여인이 드파르쥬 부인이다.

소설은 현대 드라마적 구성을 갖는다. 찰스 디킨스(1812~1870)31주에 걸쳐 연재한 것을 모아 1859년에 소설로 엮었는데, 매주 원고를 쓸 때마다 극적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다음 회에 나올 내용을 암시했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비밀을 벗겨내는 순서로 전개된다.

 

알렉상드르 마네뜨는 프랑스 의사로 에브레몽드 형제에 불려가 그들의 폭행으로 죽어가는 소작농 자매들을 치료하다가 후작의 비밀을 알게 된다. 마네뜨 박사는 그 이유로 에브레몽드 형제에 의해 바스티유 감옥에 18년 동안 수감된다.

마네뜨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구출하는 사람은 영국 텔슨 은행의 은행원 자비스 로리다. 로리는 마네뜨의 딸 루시와 함께 마네뜨를 데리고 영국으로 간다.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루시는 에브레몽드의 아들로 귀족에 염증을 느껴 지위를 포기한 찰스 다네이를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적대 가문과의 결혼, 소설의 흔한 주제다.

디킨스의 문장은 만연체다. 일상의 서술과는 다른 표현 기법을 사용한다. 드라마 작가들이 인기가 높으면 새로운 소재를 끼워넣어 연재 회수를 늘리듯이 디킨스도 숱하게 의혹과 미스터르를 꼬아가며 이야기를 늘린 흔적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이 다 서로 얽혀 있다. 에브레몽드 형제의 겁박에서 살아 남은 여동생 테레즈는 드파르쥬와 결혼하는데, 드파르쥬는 마네뜨 박사의 충성스런 시종이었다.

드파르쥬와 그 부인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주역으로 등장, 바스티유 감옥 공격에 선봉에 선다. 드파르쥬는 마네뜨 박사가 수감되었던 감옥에서 그의 편지를 발견한다. 드파르쥬와 그 부인은 그 편지를 근거로 에브레몽드의 조카 찰스 다네이를 기소한다. 자신을 감옥에 넣었던 에브레몽드의 조카를 사위로 맞은 마네뜨와 그를 사랑하는 루시, 여기에 백마를 탄 기사가 등장하는데 영국인 변호사 시드니 카턴이다. 카턴이 사랑하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한 루시를 위해 그녀의 남편 대신에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허무맹랑함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찰스 디킨스 /위키피디아
찰스 디킨스 /위키피디아

 

디킨스는 서문에서 칼라일을 언급했다.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가 토머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The French Revolution)을 읽고 쓴 작품이다. 디킨스는 동료작가 윌키 콜린스의 동결’(The Frozen Deep)이라는 희곡에서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성의 이야기라는 구성에 영감을 얻었다. 그는 연극에 등장하는 카턴 역을 맡아 연기를 했고, 카턴을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켰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찰스 다네이는 디킨스의 이름(Charles Dickens)에서 변형한 것이라고 한다. 디킨스는 런던과 파리라는 두 지역을 중심으로 루시 마네뜨를 동시에 사랑하는 시드니 카턴과 찰스 다네이라는 꼭 닮은 두 인물의 스토리를 엮어 낸 것이다.

번역본 표지(창비) /네이버책
번역본 표지(창비) /네이버책

 

찰스 디킨스는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기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의 두 도시 이야기는 단행본 소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함께 2억부 이상 나간 베스트셀러로 기록된다. 그때도 예술적 가치 있는 소설보다는 흥미 위주의 소설이 대중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왜 1859년에 70년전인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했을까. 1850년대에 프랑스에선 나폴레옹 3세가 다시 황제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의 영광을 조카에게서 재현하려는 군중심리가 지배했고, 영국인들은 나폴레옹 가문의 재기에 공포심에 빠졌다. 영국 내에선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져 산업혁명의 소외지역에 불만이 혁명을 요구했다. 영국 지배층은 다가올 미래에 불안감을 느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디킨스는 파리에 대한 런던의 두려움을 역으로 꾸몄다. 그것은 70년전 프랑스 혁명의 재생산으로 나타났다.

 

소설은 영국 입헌군주제도가 프랑스 공화제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독자의 뇌에 심어주었다. 디킨스는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에서 역사적 사실을 마음껏 차용하면서 영국식 귀족주의를 미화했다.

에브레몽드 후작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귀족의 오만방자한 행태, 소작농의 굶주림과 가난, 인민의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 끝에 1793년 무자비한 기요틴 정치가 있음을 소설은 강조했다. 학정에 시달리던 프랑스 지배층은 영국에서 도피처를 마련한다. 부유한 귀족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태생을 거부한 찰스 다네이, 성실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마네뜨 박사와 아름답고 고결한 그의 딸 루시는 런던에서 삶은 터전을 마련한다.

영국인들은 해결사로 등장한다. 은행원 자비스 로리는 고루하지만 프랑스 고객을 끝가지 보호하고, 시드니 카턴은 사랑하는 프랑스 여인을 위해 생명까지 던진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는 악마로 그려진다. 드파르쥬와 그 부인은 복수심에 불타 과거의 은인을 배신하고 이용한다. 이에 비해 영국인 평민은 의인이다. 루시의 하녀 프로스 양과 자비스 로리의 심부름꾼 크런처, 두 나라를 오가며 간첩질을 한 바사드도 극적인 순간에 브리튼 사람의 역할을 한다.

 

프랑스 공포정치가 극심하던 1793년의 기요틴 처형 /위키피디아
프랑스 공포정치가 극심하던 1793년의 기요틴 처형 /위키피디아

 

디킨스는 프랑스 혁명을 기요틴으로 상징하며 이렇게 썼다.

매일, 자갈길 위로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을 가득 실은 호송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아름다운 소녀들, 갈색머리, 검은머리, 백발의 현명한 부인들, 젊은이들, 건장한 남자들과 노인들, 귀족 출신이나 농부나 모두가 기요틴을 위해 붉은 포도주를 부어주었다. 매일 역겨운 감옥의 어두운 감방에서 나와 양지로 끌려왔으며, 기요틴의 엄청난 갈증을 해소하기 해 거리를 지나서 그녀(기요틴)에게로 향했다.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이리라! 특히 마지막, 죽음을 가장 쉽게 바치는 것은 오, 바로 기요틴이었다!”

그는 70년전의 기요틴을 강조한 이유를 제1권 제1(시대) 서두에서 설명했다.

그때는 지금과 너무도 비슷했고, 그 떠들썩한 권위자들은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오직 과장된 비교로만 그 시대를 받아들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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