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①…신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장군
이사부①…신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장군
  • 아틀라스
  • 승인 2019.06.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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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과 장수, 육상전의 장군과 해전의 제독 겸비…신라 영토 확대에 결정적 기여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다.

이사부 장군이 정벌해 새로이 신라 영토로 흡수한 곳에 실직국, 우산국, 예국, 맥국, 금관국, 대가야, 왜국 등의 잔영이 드리워져 있다. 따라서 이사부는 삼국 중 가장 약체였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도록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만일, 이사부 장군이 없었다면 신라의 통일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변방의 신라를 한반도의 중심무대로 이끌어낸 사람은 천재적이고, 용맹무쌍한, 그리고 백전백승의 이사부 장군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조선, 그리고 오늘날 한민족의 토대가 형성됐다.

많은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 땅으로 만들어 대한민국에 울릉도와 독도를 안겨준 장군으로 새겨져 있다. 일본이 수시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가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이 울려퍼지고, 노랫말 끝에 신라장군 이사부를 반복하다 보니, 이사부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장군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사부는 독도는 우리땅의 주인공을 넘어선다. 경상북도에 동쪽에 치우친 신라라는 작은 부족국가를 한반도의 주역으로 확대시키고, 김유신(金庾信) 장군, 무열왕 김춘추(金春秋),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이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만든 인물이다.

외적의 침입에 나라를 구한 을지문덕, 감감찬, 이순신 장군 등을 우리는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사부 장군은 고구려, 백제를 격퇴하고, 가야, , , 옥저, 말갈, 왜 등 1,500년 전에 우리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국을 흡수하거나 영토 밖으로 내쫓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 장보고에 대한 연구와 홍보는 많이 이뤄져 있다. 하지만 동해를 내해로 만들고 신라를 소백산맥 너머로 진출시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이사부 장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해가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이사부 장군과 관련한 서적이 희귀하다. 관련 소설은 몇권 나와 있지만, 우산국 정벌에 관한 설화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그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그리지는 못했다.

이사부에 대한 사료가 극히 제한적이다.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이사부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만, 그것도 몇줄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측 사서인 일본서기에도 그가 언급되지만, 미흡하다. 단양 적성비에 그의 이름 한 단어가 나올 뿐이다. 역사 기록에 그가 태어난 시점과 죽은 시점조차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필사본에 이사부에 관한 스토리가 나오지만, 정통 국사학자들은 그 서책이 위서라며 정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그래픽=김현민
그래픽=김현민

 

희박한 자료 속에서도 이사부의 위대함은 드러난다.

지증왕 초 (500~505) 가야 공략

지증왕 6(505), 실직(悉直) 군주 부임

지증왕 13(512) 우산국(于山國) 정복, 하슬라(何瑟羅) 군주 부임

법흥왕 16(529) 금관(金官)가야 정벌

진흥왕 2(541) 병부령 취임

진흥왕 6(545) 국사 편찬

진흥왕 11(550) 적성 전투 승리. 도살성 금현성 전투 승리

진흥왕 23(562) 대가야 함락

 

이사부의 성은 신라왕족인 김()씨이고, 내물왕의 4세손으로 진골이다. 그는 소지왕때 태어나 지증왕과 법흥왕, 진흥왕 3대에 걸쳐 활약했다. 그는 왕족이지만,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했다. 진흥왕 시절에 병부령으로써 권력을 장악하고, 국사를 편찬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에 동시에 이긴다. 그는 임금이 되지 못한 한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한을 전장에서 녹여냈고, 후배들에게 등을 내줘 삼한 통합의 꿈을 실현하도록 디딤돌이 되었다.

 

이사부는 육상전의 장군(general)과 해전의 제독(admiral)을 겸비했다. 고대사에서 육상 전투와 해상전투를 동시에 지휘한 장수는 많지 않다. 이사부는 신라의 첫 해전인 우산국 정벌에 성공했고, 하슬라(강릉), 금관가야, 대가야,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중류를 점령했다.

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시인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인즉,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것.

개혁군주 지증왕이 20대 초반의 젊은 왕족을 동해의 중심 거점인 삼척에 군사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먼저 동해를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내륙으로 뻗어 삼한을 통합하려는 의도였다. 백제와 가야가 남쪽과 서쪽 바다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신라는 필연적으로 동해를 장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해 한가운데 울릉도엔 우산국이라는 해상세력이 버티고 있고, 먼바다 건너엔 왜()가 수시로 공격해왔다. 이사부가 동해를 지배함으로써 왜국의 공격을 막고, 고구려의 공격을 방어하며, 해상 교역로를 만드는 이점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하고, 동해 제해권을 장악한 이후 그 이전에 수십차례 신라를 공격해온 왜국의 출몰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왜구가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도록 해상에서 신라 수군이 해상에서 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차례로 복속시키면서 왜가 남해안에서 근거를 완전 상실하고, 연대세력이었던 백제가 멸망하면서 왜국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손을 끊게 된다. 삼국시대에 왜가 더 이상 한반도에 위협 세력이 되지 못하게 한 것도 이사부였다.

 

이사부는 지장(智將)이었다. 군사력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전투를 승리했다.

첫째 10대에 위계(僞計)의 전술로 가야의 땅을 빼앗았다. 전술은 거도(居道)의 계략. 말놀이를 하는 척 하다가 군사를 몰아 기습작전을 펼치는 전략이다. 이사부는 거도의 전술을 채택해 들판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말놀이를 즐겼다. 이사부는 말을 훈련시키고, 재주를 부리는 놀이에 열중했고, 가야를 공격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가야는 이사부의 마희(馬戲) 작전에 속았다. 어느 순간에 신라의 무장한 기병이 가야의 본거지를 급습했고, 가야는 굴복하고 땅을 내주게 됐다.

둘째 지증왕 13, 이사부가 우산국을 공격할때였다. 그곳 사람들이 미련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항복 받기 어려우나, 꾀를 써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해안으로 다가가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 놓아서 밟아 죽이겠다고 알렸다.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즉시 항복했다.

셋째 진흥왕 11년의 일이다.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을 빼앗고, 고구려는 백제의 금현성을 함락시켰다.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두 나라 군사가 지친 틈을 이용해 이사부가 군대를 출동시켜, 두 개의 성을 빼앗았다.

 

최근들어 이사부에 대한 연구가 부쩍 늘고, 잊혀져 가는 신라 장군을 다시 평가하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이사부 축제가 매년 열리고, 그의 이름을 딴 이사부 광장이 만들어졌다. 그의 이름을 딴 크루주선이 동해안을 누빈다. 독도에는 이사부가 도로지명으로 명명되고, 이사부를 연구하는 학술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사부라는 신라장군을 다시 바라볼 시점이 되었다.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 /삼척시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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