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해안도시 리마가 수도가 된 까닭
페루 해안도시 리마가 수도가 된 까닭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6.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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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초기 수도, 고산지대 하우하…고산병과 불임·출산율 저하로 이전

 

남미 페루의 수도는 리마(Lima). 인구 975만명(2020)으로 서울시와 비슷하고 면적은 2,672.3로 서울의 5배쯤 된다. 페루 인구가 3.400만명이므로, 수도 인구가 페루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페루는 1532년 스페인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킨후 그 땅에 스페인 부왕령을 설치한 이래 300여년간 스페인 식민지로 있다가 1821년 독립한 나라다. 리마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부왕령의 수도였고, 독립후에도 페루의 수도를 이어가고 있다.

리마에 앞서 하우하(Jauja)라는 곳이 잠시 스페인 부왕령의 수도인 적이 있다. 피사로가 잉카 세력을 제압한수 1534년 처음 수도로 삼은 곳이 하우하였다. 하우하는 잉카제국의 식량과 의류, ()의 집결지였다. 피사로와 그의 부하들은 그곳을 지키면서 잉카 잔당을 제압하고 원주민이 생산한 물자를 독점할 생각을 했다.

하우하는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 해발 3,352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파카호(Lake Paca)를 비롯해 넓직한 호수가 여럿 있어 물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고산병이었다. 스페인 병사들은 평지 출신이어서 고산지대에 익숙하지 못했다. 고지대는 기압이 낮아 산소가 희박하다. 저지대 출신의 스페인 사람들은 고산병에 걸리기 쉬웠다. 두통이 일어나고 식욕부진,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전문산악인도 힘들다는 고산지대에 그들은 오래 있질 못했다.

결정적인 핑곗거리가 생겼다. 저지대 출신이 고산지대에 오래 살면 임신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정자수가 감소해 임신이 어려워지고, 여성이 임신하더라도 사산하거나 출산후 아이가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고산지대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삼일 사이에 사망할 확율이 높다.

 

리마와 하우하의 위치 /위키피디아
리마와 하우하의 위치 /위키피디아

 

피사로는 하우하를 빨리 포기했다. 그는 이듬해인 1535년에 하우하에서 서쪽으로 40km 지점에 있는 리마로 수도를 옮겼다. 그곳은 카야오(Callao)라는 좋은 항구가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 부왕령, 필리핀과도 태평양으로 연결하기 수월했다. 리마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500년 가까운 도시로 자리잡은데는 이런 연유가 깔려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후로 리마는 페루의 수도로서 기능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잉카의 기존 도시들은 대부분 안데스 산맥 한 중턱에 위치한 탓에 리마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리마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자들이 건설한 신도시로 출발해 독립한 이후에도 페루 최대의 상업 도시이자 행정 수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패루 수도 리마의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패루 수도 리마의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한편 16세기 스페인 식민당국은 해발 4,000m 이상되는 곳에 세계최대 은광도시 포토시(Potosi)를 건설했는데, 스페인에서 건너간 여성들이 포토시에서 임신하면 저지대로 내려가 출산을 했다고 한다. 포토시에는 잉카시대부터 고지대에서 살아온 인디오들이 노동자로 투입되었고, 백인과 인디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이 고지대에 적응하며 살았다. 시대가 흐르면서 스페인 후손들도 고지대에 익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Wikipedia Lima

Wikipedia Ja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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