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가노프, 모피 찾아 우랄 산맥 넘다
스트로가노프, 모피 찾아 우랄 산맥 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6.23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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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4세, 카마강 유역 영토 하사…스트로가노프 형제, 용병 모집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다. 탐욕은 때로 역사의 원동력이 되었다. 금이 탐욕의 대표적인 대상이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황금의 나라를 찾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스페인 침략자들은 엘도라도를 찾아 남미대륙 구석구석을 뒤졌다. 금이 난다는 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가 개척되었고, 호주에 집단이민이 몰려갔다. 육류에 맛을 더하는 향료는 유럽인들의 아시아 식민지화를 가속화시킨 자극제가 되었다.

시베리아 개척을 유혹한 동인은 모피였다. 모피는 부유층에게 부를 과시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추위를 이겨내는데 더 없는 옷감이기도 하다. 모피의 최고는 검은 담비(sable). 담비의 서식지는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이다. 고대 여진족들이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고급 조공품목에 담비 가죽이 포함되었다. 유럽인들도 담비 가죽으로 만든 옷을 좋아했다. 검은담비의 털은 조밀하고 부드럽다. 광택이 부드러워 고급스럽고 손으로 만지면 촉감이 부드럽다. 담비털로 만든 옷은 가볍다. 귀족부인들이 겨울철에 행세를 하려면 담비 모피를 입어야 했다.

 

검은담비 서식지 /위키피디아
검은담비 서식지 /위키피디아

 

유럽에 모피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요인은 기후변화였다. 지구는 빙하기에서 벗어났지만 주기적으로 소빙기(little ice age)를 맞았다. 그 소빙기가 16세기에 유럽은 물론 전세계에 닥쳐왔다.

소빙기로 인해 빙하가 확장되는 바람에 스위스 알프스의 마을이 파괴되었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강과 운하가 얼어 붙었다. 1622년에서 1658년엔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로스 해협과 골든 혼(Golden Horn)이 얼어 배가 드나들지 못했다.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소빙기는 그후 300년이나 지속되었다.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당시만 해도 난방시설이 마땅치 않았다. 방안에서도 두터운 옷을 껴입고 있어야 했다. 모피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인류가 발견한 방한재료 가운데 모피보다 따듯한 게 없었다.

유럽대륙에 장기적으로 한파가 몰아치면서 모피 수요가 팽창했다. 문제는 모피 생산지가 제한되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피 제품 중에서 최고로 치는 담비 털은 시베리아에서만 생산되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모피가 공급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유럽에선 러시아가 유일한 모피 생산국이었다. 모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러시아인들은 담비털을 황금양털이라고 불렀다.

16세기말, 우랄산맥 서쪽 유럽지역에서 담비가 고갈되었다. 담비털을 구하려면 우랄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가야 했다. 동쪽에는 러시아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타타르족이 살고 있었다.

 

담비 /위키피디아
담비 /위키피디아

 

이 황금시장을 포착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러시아 북쪽 노브고로드에 자리잡은 스트로가노프 가문(Stroganov family)이었다. 스트로가노프 가는 모험상인이었다. 16세기초에 그들은 러시아 북동부 변경에서 소금 채취와 모피 무역, 어업 등의 사업을 벌이며 돈을 벌었다. 그들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와 같은 식민기업 역할을 했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그곳을 개발했으며, 그럴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스트로가노프 가문은 그렇게 번 돈을 차르 시대를 연 이반 4세에게 빌려주었다. 일종의 정치적 거래였다. 이 가문은 차르에게 돈의 대가로 우랄 산맥 서쪽 카마강 일대를 달라고 요구했다. 차르는 1558년 야코프와 그리고리 스트로가노프 형제에게 카마강 상류의 드넓은 땅을 하사했다. 카마 강(Kama river)은 볼가강의 지류로 그 지역은 그때까지 러시아의 영토가 아니었다. 그 곳에는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통치하는 시비르 칸국이란 나라가 있었다. 차르는 주인이 있는 땅을 스트로가노프 가문에게 주었고, 그 귀족들은 그 땅을 빼앗아 차르에게 바치겠노라고 약속했다.

차르는 스트로가노프 가문이 신개척지를 정벌하는 것을 허용하되, 단서를 붙였다. 조건은 황제가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가문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시비르 칸국(Khanate of Sibir)은 킵차크 칸국 또는 금장 칸국이 갈라지면서 생긴 나라로 15세기 중엽에 건국되었다. 최고통치자 칸은 칭기스칸의 맏아들 주치의 후손이었다. 이 나라에도 권력다툼이 있었는데, 주치의 장남 바투의 후손과 주치의 다섯째 아들 시반의 후손이 번갈아 칸의 자리에 올랐다. 이슬람을 국교로 삼았고, 그 시기에 이슬람 최북단의 나라로 꼽혔다.

스트로가노프 가문이 차르에게서 카마강 유역의 지배권을 얻었을 때 시비르의 군주는 쿠춤칸(Kuchum Khan)이었다. 쿠춤칸은 시반의 후손으로 내전을 치르며 칸에 올라 기진맥진하던 차에 모스크바의 야욕을 감지하게 되었다.

 

카마강 유역 /위키피디아
카마강 유역 /위키피디아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은 차르에게서 땅을 하사받자 곧바로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돈으로 용병을 사고 그들을 앞세워 동쪽으로 진군했다. -우그리아 어족의 원주민들은 스트로가노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스트로가노프 용병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을 선택했다. 위협적인 존재는 타타르족의 시비르 칸국이었다. 그들은 몽골족, 투르크족이 혼재했고, 유럽인들은 이 동양인들을 싸잡아 타타르라고 했다.

타타르는 러시아인들에게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슬라브족 사이엔 우랄산맥 동쪽에 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들은 머리가 없고 입이 두 어깨 사이에 있는 괴물들인데, 여름 내내 물속에 살고 어떤 자들은 두더쥐처럼 땅속을 걸어다닌다고 했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은 용병들에게 동물 사냥의 명분을 주었다.

 

하지만 시비르의 타타르는 러시아족보다 야만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스트로가노프 형제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쿠춤간은 러시아인들이 카마강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선제공격을 취했다. 그는 주변의 소부족들을 끌어들여 동맹군을 형성하고 조카 마메트-쿨에게 지휘권을 주어 러시아인 정착촌을 습격하도록 했다. 타타르는 정착민들을 집단으로 살육하고 후퇴했다.

스트로가노프 형제는 타타르를 이기기 위해선 유목민의 기동력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 침략자들은 스텝지역을 떠도는 유목세력에게 동맹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대상은 러시아와 타타르의 경계지역인 우크라이나 초원지대에서 자체 병력을 보유하고 있던 코사크였다. 코사크 무리의 족장(아타만) 가운데 예르마크 티모폐예비치와 이반 콜트소가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다.

 


<참고자료>

Wikipedial, Stroganov family

Wikipedial, Little Ice Age

Wikipedial, Siberian fur trade

Wikipedial, Sable

Wikipedial, Khanate of Sib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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