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중심 예니세이강
유라시아의 중심 예니세이강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7.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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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위, 몽골에서 발원해 북극해로 빠져…중앙시베리아의 수송로

 

예니세이강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나일강, 아마존강, 양쯔강, 미시시피강 다음이다. 강의 길이는 5,539km이며, 유역면적은 258으로 한반도의 22, 대한민국의 25배에 달한다. 유역면적의 97%가 러시아에 있고, 몽골이 3%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러시아의 강이라 할수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 셈이다.

예니세이(Yenisey)란 말은 원주민 언어 에벤키어로 큰물, 즉 한강이란 뜻이다. 원래는 몽골족, 투르크족이 강 주변에 살았다. 동양의 오랜 역사 과정에서 북방 유목민 가운데 중국 또는 다른 유목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종족이 쫓겨가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인들이 오기 전에 살던 원주민의 언어(예니세이어)는 흉노족 계열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바이칼호 남쪽에 살다가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민의 언어에 지배자를 의미하는 카간 또는 칸,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란 단어가 살아 있다. 학계에선 오호십륙국 시대(304~439)에 후조(後趙)의 지배계급이었던 갈()족의 후예라는 견해가 나온다. 갈족은 위그르족, 즉 투르크족의 일파다.

 

예니세이강 유역 /위키피디아
예니세이강 유역 /위키피디아

 

17세기초 동양인들이 살던 예니세이강 유역에 러시아인들이 몰려왔다. 1604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는 키르키즈족의 위협을 막아달라는 타타르 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코사크 200명을 파병해 톰스크(Tomsk)에 요새를 세웠다. 타타르의 부족장은 자신의 영지를 차르에게 양도하고 신하가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예니세이강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이듬해인 1605, 러시아인들이 몽골족 일파인 준가르와 키르키즈족의 동향을 관찰하기 위해 예니세이강 상류를 둘러보았다. 시비르 칸국이 멸망한지 7년째 되는 해에 그들은 예니세이까지 진출한 것이다.

2년후인 1607년 코사크 무리는 예니세이강 중류에 에네트족(Enets)을 쫓아내고 투루크한스크(Turukhansk) 캠프를 세웠다. 예니세이강에 세운 최초의 정착촌이다. 이어 1619년 예니세이스크(Yeniseysk), 1628년 크라노야르스크(Krasnoyarsk)를 순차적으로 건설하면서 예니세이강을 차지했다.

 

소예니세이와 대예니세이의 합류지점(키질) /위키피디아
소예니세이와 대예니세이의 합류지점(키질) /위키피디아

 

예니세이강은 러시아 영토의 정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른다. 북극해로 흘러드는 최대의 강이다. 우랄산맥에서 예니세이강까지를 서시베리아 평원, 예니세이부터 동쪽 레나강까지를 중앙 시베리아고원이라고 한다.

발원지는 몽골고원이다. 몽골 타누올라산맥 북사면에서 발원한 소예니세이강과 동사얀산맥에서 흘러나온 대예니세이강이 러시아 투바주 키질에서 합류한다.

세계최대 담수호인 바이칼호가 예니세이강 유역에 포함된다. 몽골고원에서 흘러내린 셀렝가(Selenga) 강이 바이칼호에 흘러들어 앙가라(Angara)을 통해 빠져나가 예니세이 본류와 합류한다.

 

바이칼호와 셀렝가강 /위키피디아
바이칼호와 셀렝가강 /위키피디아

 

강 하구는 북극해 가운데 카라해로 빠져나간다. 하구는 연 최고 기온이 0-10에 불과한 툰드라 기후 지대다.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녹아 범람하기도 한다. 상류지역엔 봄철에 먼저 얼음이 녹지만 하류지방엔 북극권이므로 얼음이 녹지 않아 물이 흐르다 넘쳐 흐른다. 또 봄철이 되면 주변의 얼어 있던 지표가 녹으면서 물이 새어 나온다. 따라서 겨울과 여름의 유량 차이가 크며, 강 주변에는 하부에 영구동토층을 둔 저습지가 형성된다. 강 유역의 면적은 넓디넓지만 인구밀도가 낮다. 추운데다 강 유역을 개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니세이강은 중앙시베리아의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한다. 제정러시아는 광활한 예니세이강 유역을 개발하기 위해 기선을 투입했다. 1864년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증기선 2척을 건조해 카라해를 통해 강에 투입했지만, 한척은 긴 겨울을 넘기는 과정에서 동파해 좌초되었다. 1878년에 기선을 투입해 예니세이스크에 도달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황태자 시절에 예니세이강을 기선으로 이동했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시베리아로 유배갈 시절에 이 강의 기선을 타기도 했다.

 

강 주변에는 연안에서는 금 ·석탄 ··비철금속 ·석묵(石墨) ·목재 등이 산출되는데, 이들 자원은 수운을 통해 수송된다. 침엽수림이 드넓게 펼쳐진 타이가 지대를 형성하므로 목재가 풍부하다. 주변에서 채취된 목재가 강믈을 따라 흘러간다. 강 상류는 물살이 급해 수력발전이 용이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와 브라츠크를 비롯해 많은 수력발전소가 있다. 또 이르쿠츠크 ·브라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등은 안가라 바이칼 콤비나트의 중심도시이며, 중화학공업이 활발하다.

거의 모든 강에 항행이 가능하며, 수상교통이 가장 붐비는 곳은 크라스노야르스크다. 이 곳은 시베리아 철도와와 예니세이강의 교차점이다. 1985년엔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댐을 건설했는데, 물길을 연결하기 위해 선박견인장치(Canal inclined plane)가 설치되어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댐의 선박견인장치 /위키피디아
크라스노야르스크 댐의 선박견인장치 /위키피디아

 

2차 대전 때 독일과 일본은 예니세이강을 경계로 소련을 나눠먹기로 합의했지만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었다. 러시아는 소예니세이와 대예니세이가 합류하는 키질(Kyzyl) 근처를 아시아 대륙의 지리적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추워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지만 큰 눈으로 대륙을 보면, 예니세이는 유라시아의 중심이라 할수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Yenisey

Wikipedia, Russian conquest of Siberia

Wikipedia, Yeniseian languages

Wikipedia, Geographical midpoint of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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