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북유럽에 배신당한 쿠르드족
이번엔 북유럽에 배신당한 쿠르드족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7.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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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 위해 튀르키예 요구 수용…쿠르드 축출 우려

 

중동의 쿠르드족이 또 배신을 당했다. 이번에 배신을 때린 나라는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다. 두 나라가 나토(NATO)에 가입하면서 쿠르드족의 생존에 걸린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렸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미국에 배신당한지 3년만에 이번엔 유럽국가에 배신당한 것이다.

629~30일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스웨덴과 핀란드가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2차 대전 이후 동서냉전 시기에도 중립을 고수하며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어느쪽도 가입하지 않았던 북유럽의 두 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자국 안보를 위해 나토에 가입한 것이다.

두나라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나라는 튀르키예(터키의 새 국명)였다. 나토 규약에 신규회원국의 가입은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의되며,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가입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튀르키예는 두 나라가 쿠르드 반군조직인 쿠르드 노동자당(PKK, Kurdistan's Workers Party)에게 은신처(guest house)를 제공하고 있다며 나토 가입을 반대했다.

외신들의 분석에 따르면, 튀르키예 반대의 첫 번째 목적은 북유럽 2개국이 쿠르드 테러리스트에 대한 은닉을 중지하고 그들을 터키로 송환하도록 협조를 받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무기수출 규제를 풀라는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스웨덴과 핀란드에 무기 수출금지조치를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북유럽 두 나라는 2019년 터키의 시리아내 쿠르드지역 침공을 규탄하며 공격용 무기의 수출금지조치(엠바고)를 단행했다.

튀르키예의 또다른 속셈은 미국의 F-35 전투기 수출 금지조치를 풀라는 것이다. 터키가 러시아에서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S-400을 구매하자 미국은 터키에 전투기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즉 북유럽을 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 위해 튀르키예 요구 수용…쿠르드 축출 우려
쿠르드족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 튀르키예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미국의 폴리티코에 따르면,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막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의 회담에서 두 나라는 테러 용의자를 신속하고 완전하게 축출한다고 합의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PKK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쿠르드 반군세력의 거주를 묵인하던 북유럽국가들이 튀르키예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들을 내쫓겠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단체는 서방진영이 튀르키예의 지지를 얻기 위해 쿠르드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좌파도 소수민족의 인권을 포기하는 정책이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미국이 러시아 견제를 이유로 튀르키예에 전투기 판매를 허용한다면, 그 전투기는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쿠르드족단체들은 보고 있다.

 

강대국의 쿠르드족 배신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910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군대를 빼겠다고 한지 3일만에 터키(튀르키예) 군이 시리아 쿠르드지역을 침공했다. 그해 109일 터키군은 시리아 국경 쿠르드족 지역에 공습과 포격을 가한데 이어 지상군을 투입했다. 공식적으로는 시리아 침공이지만, 사실상 쿠르드족 무력화에 나선 것이다.

쿠르드족은 앞서 4년간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동지방에 수니파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IS를 격퇴하는데 피를 흘렸다. 쿠르드족은 11,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IS를 퇴치하는데 주력군으로 싸웠고, IS를 몰아낸 자리에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다.

그런데 미국이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이제 IS가 격퇴되었으니, 기나긴 전쟁에 미군이 더 이상 피를 흘릴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의중을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읽었다. 에르도안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시리아 북부 쿠르드지역에 군사작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트럼프는 이를 묵인했다. 미국은 결국 쿠르드족을 이용한 후 버리는 꼴이 되었다.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거주지역 침공ㅇ르 반대하는 시위(2019) /위키피디아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거주지역 침공ㅇ르 반대하는 시위(2019) /위키피디아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배반과 좌절을 당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투르크를 교란하기 위해 쿠르드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스만이 붕괴되면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도 쿠르드족이 유럽인종이며 아시아에서 기원한 투르크족과 다르다는 점을 주장하며 쿠르드족을 부추겼다.

1차 대전을 주도하던 터키의 청년투르크당은 쿠르드족 탄압에 나섰다. 그들은 인종청소를 명분으로 쿠르드족을 학살하고, 민족 대이동을 밀어붙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70만명의 쿠르드족이 남쪽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오스만투르크는 해체되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Treaty of Sèvres)에서 강대국들은 터키 서부에 쿠르드족 자치국가를 약속했다. 1927년 쿠르드족은 19271028일 쿠르드족은 터키 동부지역에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선언하고 국명을 아라라트 공화국(Republic of Ararat)이라고 했다. 수도는 쿠르드족이 숭배하는 아라라트산 기숡의 쿠르드 아바(Kurd Ava)로 정했다.

하지만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이끄는 터키 공화국은 아라라트 공화국을 반군으로 규정했다. 3년후 19309월 터키 공화국 군대는 아라라트 공화국을 무너뜨렸다.

 

그후에도 쿠르드족은 독립운동을 펼쳤다. 쿠르드 독립운동세력은 미국에 동맹을 맺고, 서유럽에 기대었지만 끝내 강대국들은 쿠르드를 이용했을 뿐 독립까지는 도와주지 않았다.

쿠르드족은 중동을 비롯해 전세계에 3,300만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를 갖지 못한 최대의 민족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중동의 화약고였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이 분쟁의 또다른 원인이었다면 쿠르드족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라 할수 있다.

 

쿠르드족은 터키 아나톨리아반도 동남부와 이란, 이라크, 시라아의 국경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30면적의 쿠르디스탄(Kurdistan) 지역에 거주하는 이 종족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며,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쿠르드족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12세기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으로 3차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살라딘(Saradin)이다. 그는 아이유브 왕조를 창건해 중동과 이집트를 잇는 대제국을 형성했다. 아이유브 왕조가 1250년에 망한 이후 쿠르드족은 셀주크 투르크와 그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쿠르드인의 45%가 터키에 살고 있고, 이란에 23%, 이라크에 18%, 시리아에 6% 살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10만명에 달한다.

 


<참고자료>

Reuters, Sweden's Kurds fear they may pay price for NATO bid as Turkey fumes

Politico, Swedish and Finnish NATO deal with Turkey triggers fears over Kurdish deportations

Wikipedia, Ku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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