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강물 따라 가다 태평양 만났다
시베리아 강물 따라 가다 태평양 만났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7.02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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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가-오브-예니세이-레나강 이용…우랄에서 오호츠크까지 57년 걸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항해자들은 바다를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고 개척했다. 그에 비해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자들은 강을 활용했다. 초기 시베리아는 원시 그대로였다. 길이 없었다. 대신에 큰 강들이 구석구석까지 물길을 냈다. 시베리아의 강들은 겨울엔 얼어붙었으나 여름엔 녹아 길을 열어주었다.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엔 오브(Ob), 예니세이(Yenisei), 레나(Lena) 세 개의 큰 강이 북극해로 흐른다. 유역면적도 넓고 지류의 수량도 풍부하다. 초기의 개척자들은 모스크바에서 볼가강을 따라 내려와 오브, 예니세이, 레나를 건너갔다. 그들은 카약과 같은 작은 배를 이용했다.

지류와 지류 사이엔 육로를 이용했다. 육로를 지날 때엔 배를 끌고 갔다. 또 다른 강을 만나면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갔다. 다행히 시베리아 강들은 지류와 지류 사이의 육로 거리가 짧았고, 분수령이 되는 육로는 비교적 평탄했다. 육로 이동(portage)은 다른 대륙에 비해 수월했다.

시베리아 개척은 강의 탐험이기도 하다. 강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고, 또다른 강줄기를 찾아 동으로 갔다. 그렇게 가다보니 태평양이 나왔다.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가 1582년 우랄산맥을 넘은지 57년 되는 1639년에 이반 모스크비틴가 태평양 연안의 오호츠크에 도달했다.

시베리아의 강은 도로가 뚫리는 1730년대까지 주요한 교통로이자 통신 경로였다.

 

예르마크 티모폐예비치의 무리들이 배를 끌고 우랄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건너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예르마크 티모폐예비치의 무리들이 배를 끌고 우랄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건너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첫유럽인이라면, 예르마크는 시베리아 개척의 선구자다. 1582년 예르마크가 러시아의 첫 차르 이반 4세의 명을 받고 시베리아로 갈 때 빼를 끌고 우랄산맥을 넘었다.

예르마크는 볼가강의 수적 출신이었기 때문에 배를 잘 탔다. 그와 코사크 무리는 볼가강 지류 카마강을 따라 가다가 우랄산맥을 넘었다. 그곳의 산은 해발 350m, 강기슭에서는 150m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 배를 끌고 고개를 넘었다. 그들은 고개를 넘어 토볼강의 지류를 만났고, 그 강은 이리티시강의과 오브강으로 연결되었다. 시비르 칸국의 수도는 이리티시강과 이리티시강의 교차지점에 위치했고, 러시아는 시비르 수도를 차지한 후 그곳에 토볼스크를 세웠다. 토볼스크는 카마강의 도시 페름에서 700km, 모스크바에선 1,800lm 동쪽에 있다.

예르마크가 개척한 길을 체르딘 루트(Cherdyn Route)라고 했는데, 이 루트로 활용되는 타길강의 상류가 좁아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 1597년 탐험가 아르테미 바비노프가 강폭도 넓고 더 짧은 루트를 개발했는데, 그 길이 바비노프 길(Babinov Road)이다. 이 길은 1735년 육로가 건설될 때까지 시베리아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솔리캄스크 종탑. 시베리아의 관문 바비노프 길의 출발점이다. /위키피디아
솔리캄스크 종탑. 바비노프 길의 출발점이다. /위키피디아

 

러시아는 타타르의 나라 시비르 칸국을 정벌하는 과정에 오브강을 따라 요새를 건설했다. 러시아인들은 이리티시강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브강을 만나 동쪽으로 750km 거슬러 올라가 1594년 나림(Narym)에 요새를 건설했다.

1602년 코사크들은 오브강의 지류인 케트강(Ket River)을 따라 상류로 300km를 거슬러 갔다. 개척자들은 그곳에서 뭍으로 이동하면 또다른 큰강 예니세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육로를 이동했고, 1619년 마침내 예니세이강을 상류 지점에 예니세이스크( Yeniseysk) 요새를 건설했다. 예니세이스크는 토볼스크에서 1,400km, 모스크바에서 3,200km 동쪽에 위치한다. 또다른 팀은 바흐(Vakh)강을 따라 심(Sym)강을 건너는 길을 찾아냈다. 토볼스크에서 예니세이스크까지 두 개의 하천 루트를 확보하게 되었다.

시베리아 탐험가들은 강과 강이 합류하는 지점, 또는 강과 다른 강을 육로로 건너는 지점에 요새를 세웠다. 예니세이스크는 예니세이 본류와 지류인 앙가라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예니세이를 내려가 북쪽에서 퉁구스카 강을 만나는 지점에 투루한스크(Turukhansk) 요새를 지었다.

탐험가들은 오브강의 지류와 레나강의 지류를 건너가는 최단의 육로를 찾았다. 그들은 앙가라강을 거슬러 일림강(Ilim River)을 만나고. 그곳에서 육로를 건너 레나강의 지류인 쿠타강(Kuta River)를 만나게 되었다. 두 강을 영결하는 육상이동로의 교차점에 1630년 일림스크(Ilimsk)1631년 우스트쿠트(Ust-Kut) 요새가 건설되었다.

이제 레나강이 눈에 들어왔다. 개척자들은 레나강을 헤집고 다녔다. 1632년 우스트구트에서 1,400km 되는 지점에 요새를 건설했는데 그곳이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야쿠츠크(Yakutsk). 모스크바에서 4,900km 동쪽에 위치한 이곳의 12월 평균 기온이 영하 37°C. 야쿠츠쿠는 시베리아 동부 거점요새로 활용되었다.

예니세이강의 투루한스크에서 퉁구스카강을 따라 레나강 지류 초나강을 만나 야쿠츠크로 가는 길도 개척되었다.

 

시베리아의 하천 루트 /위키피디아
시베리아의 하천 루트 /위키피디아

 

1636~1637년 사이 어느 시기였다. 드미트리 코필로프를 단장으로 하는 탐험대가 54명의 코사크를 이끌고 야쿠츠크를 출발했다. 이 팀에 톰스크 출신의 코사크 이반 모스크비틴(Ivan Moskvitin)이 참여했다. 그들은 레나강에서 따라 가다 지류 알단강(Aldan River)을 만났다. 그곳에서 원주민 무당에게서 근처에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데 정주민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탐험가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코필로프는 모스크비틴에게 무당이 알려준 곳을 찾으라고 했다. 모스크비틴은 39명의 코사크와 에벤키족 가이드를 이끌고 알단강을 따라 가다 마야강을 탔다. 남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했다. 그들은 말에 짐을 싣고 700m 고지를 올라갔다. 산을 내려와 150km 동쪽으로 이동했다. 16398월 그들은 넓디넓은 바다를 만났다. 태평양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오호츠크(Okhotsk)라고 이름지었다. 예르마크가 우랄산맥을 넘은지 57년 되는 해였다.

 

강을 이용한 수운(水運)은 초기 시베리아 탐험과 개척에 적극 활용되었고, 모피 사냥꾼과 상인들의 이동로가 되었다. 오브, 예니세이, 레나강을 따라 모피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시절도 오래가지 못했다. 1700년대 들어 시베리아의 모피 생산이 급감했다. 검은 털을 가진 동물들이 무차별 포획되는 바람에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모피 공급이 뚝 떨어진데다 1730년대에 차르 정부가 시베리아에 도로를 건설하는 바람에 하천 이용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참고자료>

Wikipeida, Siberian River Routes

Wikipeida, Cherdyn Route

Wikipeida, Babinov Road

Wikipeida, Ivan Moskvi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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