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떨어져 러시아에 속한 부랴트
몽골에서 떨어져 러시아에 속한 부랴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7.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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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크 약탈에 30년 저항했으나 끝내 굴복…역내에 러시아인이 더 많아

 

시베리아 바이칼호 동안에 부랴트 공화국(Republic of Buryatia)이 있다. 면적은 35로 대한민국보다 3.5배 넓고, 인구는 97만명(2010)으로 100만명에 근접한다. 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독립국은 아니다. 러시아 내에서 자치권의 폭이 비교적 넓은 지방정부에 불과하다.

우리 언론 또는 일부 식자층 사이에 언젠가부터 부랴트 공화국이 우리민족의 시원(始原)”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겉보기에 얼굴 모습이 비슷하고 무당이 굿하는 풍습이 있다고 해서 우리문화의 판박이처럼 보인 모양이다. 부랴트족의 DNA까지 연구한 학자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부랴트족과 우리민족이 동족이라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섣부른 민족주의에 불과할 뿐이다.

부랴트족(Buryats)을 처음 언급한 사서는 13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몽고비사’(蒙古秘史). 칭기스칸이 등장하는 시기에 몽골 북부지역에 부랴트족이 확인되었고, 칭기스칸의 맏아들 주치가 1207년에 정벌해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부랴트의 어원은 부리(특대)에서 나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바이칼호 일대는 몽골의 영토였다. 부랴트족은 원()나라가 멸망한 후 북원(北元)에 속해 있었고, 북원이 쇠퇴한 이후 외몽골의 할하(Khalkha)족에 복속, 조공을 바쳤다. 하지만 예니세이강 하류에 흩어져 사는 투르크 계열의 에벤키족에게선 조공을 받는 상국으로 군림했다.

 

부랴트공화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부랴트공화국의 위치 /위키피디아

 

17세기에 코사크가 차르의 앞잡이가 되어 시베리아에 출몰하면서 바이칼호 일대에 힘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1620년대에 예니세이강 상류에 코사크가 출현했고, 1643년 쿠르바트 이바노프가 이끄는 코사크 탐험대가 앙가라강 상류를 거슬러 산을 넘어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

러시아에게 시비르 칸국 정벌 이후 가장 강력한 적이 부랴트족이었다. 그동안 시베리아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타타르 계열의 종족들은 코사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소수 원주민들은 총만 갖다 대면 야식(조공)을 바쳤다. 그에 비해 브랴트족은 달랐다. 그들은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몽골족 일원이었다.

코사크는 부랴트에게 야삭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동양인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국을 바꾸는 것은 왕조에 큰 위기를 초래하는 중대변수였다. 직전에(1636) 조선이 조공을 바치라는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고집하다가 왕이 무릎을 꿇는 수모(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다. 부랴트는 할하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에 차르에 대한 야삭 상납을 거부했다.

코사크와 부랴트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코사크의 약탈, 부랴트의 보복의 악순환으로 전개되었다.

바이칼호의 바르구진만은 코사크들이 발견한 최고 품질의 검은담비 생산지였다. 코사크는 부랴트에게 무자비하게 모피를 공출했고, 식량을 강탈했다. 바이칼호의 물개, 물표범등도 약탈의 대상이었다.

이에 부랴트는 코사크의 횡포에 봉기했다. 몽골족은 코사크의 요새를 기습공격해 인공물을 파괴하고 침입자들을 죽였다. 1645년 베르홀렌스크 요새를 세 번이나 공격했다. 하지만 부랴트족은 코사크의 총포에 맞서질 못했다. 코사크는 인질을 잡아 부랴트족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그들은 숲속으로 은신해 게릴라 전술을 썼다.

코사크와 부랴트와의 적대는 30년 정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지리한 싸움도 끝이 보였다. 부랴트는 더 이상 서양세력에 저항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차르에 복종하기로 했다. 어차피 할하족에 조공을 바치든 슬라브의 차르에 바치든 마찬가지였다.

하나씩 부족들이 제압당하면서 1660년경에는 바이칼호 인근의 부랴트족이 대부분 러시아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러시아는 부랴트 족장에게 귀족칭호를 주며 복속시켰다. 러시아도 바이칼 일대에 요새를 구축하며 서쪽으로 진출해 나갔다. 러시아는 바이칼호에서 빠져나가는 앙가라강 상류에 이르쿠츠크에 요새를 세우고, 바이칼 건너편에 네르친스크를 건설했다. 이제 러시아는 아무르강 상류에 이르러 청나라 국경을 넘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바이칼호 인근은 분리되어 러시아 영토로 되었다. 몽골족은 러시아, 몽골, 중국(내몽골)로 흩어지게 된다.

 

바이칼호 올혼섬의 샤만 /위키피디아
바이칼호 올혼섬의 샤만 /위키피디아

 

부랴트족은 러시아 혁명 당시에 백군에 가담했다. 백군은 부랴트족을 주력으로 앞세웠으나, 볼셰비키에 패했다. 혁명후 수립된 소련은 1923년 부랴트족 거주지에 부랴트-몽골 자치소비이트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했다. 소련 시절엔 부랴트의 민족성이 말살되었다. 불교와 고유한 민속행사가 금지되었고, 1958년엔 몽골문자 사용도 부정되었다.

소련이 해체될 무렵인 1992년 부랴트는 몽골의 꼬리를 떼고 부랴트공화국을 선언하며 러시아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부랴트공화국에는 부랴트족이 30%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슬라브족이다. 종교는 러시아정교 신도가 27.4%로 가장 많고, 불교 신도가 19.8%로 그 다음이다. 현재 부랴트 공화국의 수반은 알렉세이 티데노브(Alexey Tsydenov)인데 아버지가 브랴트족, 어머니가 슬라브족이다.

 


<참고자료>

Wikipedia, Buryats

Wikipedia, Bury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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