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동쪽 끝은 아시아의 동쪽 끝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동쪽의 행정구역은 추코트카 자치주(Chukotka Autonomous Okrug)인데, 면적은 73만7,700㎦로 한반도의 4배에 가깝지만 인구는 5만명에 불과하다. 추코트카 주에서도 가장 동쪽 지역이 축치반도(Chukchi Peninsula)이며, 그 끝이 데즈네프 곶(Cape Dezhnev)이다.

서양인들은 1488년 포르투갈 항해자 바르톨로뮤 디아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발견한 것에 대단한 의미를 두면서 러시아인이 아시아의 동단을 발견한 사실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세계사가 서유럽의 승자들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데즈네프곶은 오랫동안 이스트케이프(East Cape, 굳이 번역하자면 동곶)으로 불렸다. 영국 항해자 제임스 쿡이 1778년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갈라진 바다를 지나면서 아시아쪽 튀어나온 지역을 이스트케이프라고 명명했다. 세계 지리학을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좌지우지하던 시절이라 쿡이 명명한 지명이 통용되었다. 러시아가 뒤늦게 자국인 세묜 데즈네프가 1648년에 시베리아 동쪽 끝을 항해한 사실을 확인하고 1898년 데즈니프 항해 250주년을 기념해 이스트케이프를 데즈네프곶이라고 변경했다.

 

 

데즈네프곶은 암석으로 된 산이다. 산의 높이는 768m. 데즈네프는 후술한 항해기록에서 “코처럼 튀어나온 거대한 암석”을 지나갔다고 표현했는데, 후세의 연구자들은 그곳이 데즈네프곶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좌표는 북위 66°4′45″, 서경 169°39′7″다.

데즈네프곶은 아메리카대륙과 마주보고 있다. 반대편은 미국 알래스카 주의 프린스오브웨일스 케이프(Cape Prince of Wales)다. 이 명칭도 쿡 선장이 당시 왕세자(후에 조지 4세 국왕)를 기념해 지은 이름이다. (러시아는 이 곶의 지명도 러시아 탐험가(Gvozdev)의 이름으로 고쳤다가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하면서 원래대로 북귀시켰다.)

데즈네프곶에는 데지네프 기념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등대는 1954년에 착공해 1956년에 완공되었는데, 오벨리스크 형태로 건축되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데지네프곶에서 동쪽으로 20km 북극해 해변에 우엘렌(Uelen)이란 마을이 있다. 원주민 축치(Chukchi)족이 사는데, 인구는 2020년 센스서에서 720명으로 조사되었다. 한겨울 1월의1 평균 기온은 –20.5°C, 한여름 7월의 평균기온은 10.1°C로 대단히 추운 지역이다. 바다코끼리(Walrus) 상아를 가공하는 산업으로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의 상아 조각기술은 시베리아에서도 으뜸으로 간주되고 2004년엔 스위스에서 상아공예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바다 건너 알래스카의 이누이트족과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두 종족이 본디 하나였음을 입증한다. 유럽에서 온 러시아인들이 해협을 건너기 이전에 원주민들이 바다를 건너 두 대륙에서 삶을 공유했다는 얘기다.

 

 

데즈네프곶과 알래스카 사이에 베링해협(Bering Strait)이 가로막고 있다. 해협의 최단거리는 82.5km다. 그 사이에 2개의 섬과 1개의 암초가 있다. 두 섬을 미국에선 다이오미드 군도(Diomede Islands)라고 부르는데, 서쪽의 대다오미드(Big Diomede) 섬과 동쪽의 소다이오미드(Little Diomede) 섬으로 나눠져 있다. 서쪽의 큰 섬이 러시아령, 동쪽의 작은 섬이 미국령이다. 두 섬의 거리는 3.8 km다. 러시아에서는 대다이오미드섬을 라트노바(Ratmanova)섬이라고 한다. 두 섬의 영토가 갈라진 것은 1867년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할 때 이 섬의 중간을 기준으로 영토를 나누자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섬은 무인도이지만 미국령 섬은 사람이 산다. 2020년 소다이오미드엔 83명이 거주하는데, 주로 이누이트족이고, 어업과 상아 가공에 종사한다.

두 섬 사이에 날짜변경선이 지나고, 미·러 양국의 국경이 그어져 있다. 동서냉전 시기에 두 섬 사이에 ‘얼음 장막’(Ice Curtain)이 쳐졌다. 두 나라는 두 섬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물론 촬영하는 것조차 금지하기도 했다.

 

 

베링해협은 바다의 측면에서 보면 베링해와 축치해 사이에 있다. 넓게는 태평양과 북극해를 가른다.

지질학자들은 베링해협이 원래 대륙이었다고 주장한다. 베링해 탐험가 비투스 베링의 이름을 붙여 베링기아(Beringia)로 명명된 이 육교를 통해 고대 아시아 인류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인디언이 되었다고 한다.

베링해를 연결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다리 또는 터널을 건설해 자동차 또는 철도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마음껏 건너가자는 것이다.

1890년 콜로라도준주의 주지사 윌리엄 길핀이 그의 논문에서 베링해협을 거쳐 전세계를 연결하는 코스모폴리탄 철도(Cosmopolitan Railway)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2년후 미국의 건축공학자 조지프 스트라우스가 베링해협에 철교를 건설하는 방안을 러시아제국에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1904년 미국 철도 신디케이트가 같은 제안을 러시아에 제안했고,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2세가 동의했다. 하지만 러시아에 혁명 기운이 고조되면서 무산되었다.

소련 공산정권 시절엔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가 21세기 들어 중국에서 고속철도로 미국까지 연결하자는 방안이 2014년에 제기되었다. 중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를 연결하자는 것이다. 또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도 비슷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선 터널 공법이 발전하면서 영국 프랑스처럼 터널을 뚫자는 얘기가 나온다.

베링해협의 최고 깊이는 55m로 영불해협의 174m보다 깊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사이에 건설된 유로터널은 해저구간만 38km다. 베링해에 터널을 뚫는다면 그보다 두배 더 길다. 하지만 툰트라 지역의 교통여건과 수요등이 비용을 상회할 여건이 되지 않는데다 관련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 구상은 현재로선 답보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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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Dezhnev Cape

Wikipedia, Bering Strait

Wikipedia, Diomede Islands

Wikipedia, Bering Strait cro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