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귀순한 코사크 후예 알바진인
중국에 귀순한 코사크 후예 알바진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7.3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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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알바진 전투 포로의 후손, 의화단의 난, 문화혁명 때 수난

 

300여년전 중국 국경에서 귀순한 러시아 코사크족들이 대를 이어 중국에 살고 있다. 그 소수종족이 알바진인이라 불리는데, 현재 그 수가 2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연은 청나라 강희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685623일 청군은 러시아의 아무르 요새 알바진(Albazin)을 선제 공격했다. 청군은 병력 3,000명에 포 100~150, 장총 40~50, 머스켓 총 100정으로 무장했고, 코사크는 600여명으로 방어했다. 청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 코사크 부대는 항복했다. 강희제는 코사크에 승자의 아량을 베풀었다. 강희제의 지시로 포로로 잡힌 코사크 병사와 가족, 부하들을 모두 풀어주었고, 청나라로 투항하겠다는 코사크 45~50명을 받아들였다. 살아남은 코사크는 네르친스크로 돌아갔고, 투항자들은 베이징으로 송환되었다. (관련기사: 알바진 전투)

 

1686년 청군의 알바진 포위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1686년 청군의 알바진 포위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귀순 코사크들은 베이징 북부에 머물렀다. 앞서 아무르강 일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 투항한 코사크 40여명이 베이징에서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먼저 투항한 코사크들은 러시아 정교를 통해 종족의 결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알바진에서 투항한 코사크들이 새로 합류하면서 베이징에 코사크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국들은 이들을 알바진인(阿爾巴津人, Albazinians)이라고 했다.

청조는 코사크 전쟁포로로 부대를 만들었다. 청조는 군대를 팔기(八旗)로 운영하면서 깃발로 각기를 표기했는데, 최하위 부대를 니루(佐領)라고 했다. 청은 코사크 포로로 하나의 니루를 구성했다. 그들은 양황기만주도통제사삼령제십칠좌령(鑲黃旗滿洲都統第四參領第十七佐領)로 편제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 공식명칭 대신에 오로스 니루(俄羅斯佐領, Oros Niru)라 불렀는데, 아라사 니루, 즉 러시아 부대란 뜻이다.

강희제는 코사크 귀순자들에게 군작(봉급)을 주고 주둔지에 토지도 소유하게 했다. 게다가 종교의 자유도 주었다. 아라사 니루들은 강희제가 하사한 티베트불교 사원을 개조해 성 니콜라스 교회라고 불렀는데, 후에 성모승천교회라고 개칭했다.

코사크들은 이름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예컨대 야코프레프(Yakovlev)이란 성은 야오(), 두비닌(Dubinin)은 두(), 로마노프(Romanov)는 루오()로 개명했다. 결혼도 허용했다. 결혼상대는 한정되었다. 코사크는 시베리아 종족인 에벵키족 여인과 결혼할수 있고, 만주족과 몽골족에서는 감옥에 갔다가 나온 여자만 상대로 인정되었다.

 

베이징의 정교교회에서 알바진인들의 예배식 /위키피디아
베이징의 정교교회에서 알바진인들의 예배식 /위키피디아

 

코사크 교회를 이끄는 신부는 러시아에서 파견되었다. 1712년 툴리셴이 사절단으로 러시아에 파견되었을 때 차르에게 신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이후 러시아는 선교사를 베이징에 파견했다.

아라사 니루의 부대장은 처음에는 세습되었으나, 3대째부터는 청조에서 임명했다. 코사크들은 만주족 또는 한족에 비해 시민생활에 제한이 있었고, 장교승진도 5품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종교활동을 통해 그들은 종족을 꾸려나갔고, 19세기말 그들의 숫자는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알바진인들은 후대로 가면서 점차 코사크문화와 기질을 잃어갔다. 그들은 러시아어를 잊게 되었고 중국화되었다. 19세기말 한 러시아 여행자가 아라사 니루 마을을 방문하고선 그들이 종교만 정교일뿐 거의 중국화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아라사 니루에 편성된 알바진인들(1900년) /위키피디아
아라사 니루에 편성된 알바진인들(1900년) /위키피디아

 

그렇지만 한족들은 수백년이 지나도 코사크들을 중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화단의 난(1899~1901) 때에 코사크 후손들은 폭도의 타깃이 되었다. 그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러시아종교가 기독교와 동일시 되었다. 이 폭동에서 중국내 러시아정교 소속 신도 222명이 순교한 것으로 공식 집계되었다. 대부분이 코사크 후손들이었다.

두 번째 참사는 문화혁명(1966~1976) 때였다. 홍위병들은 알바진 후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겁을 주었고, 일부는 소련으로 돌아갔다. 코사크 후손들은 중국의 대동란기를 거치면서도 명맥을 이어왔는데, 대부분은 베이징과 텐진 주변에 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인 후손들을 아라사족(俄羅斯族)으로 통칭하며, 56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분류한다. 아라사족은 17세기 코사크에서 2차대전후 만주점령 소련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거쳐 중국에 잔류한 러시아인의 후손을 포괄하는데, 알바진인도 아라사족에 속해 있다.

 


<참고자료>

Wikipedia, Albazinians

Wikipedia, Albazino

Wikipedia, Oros Ni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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