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에 처한 까마귀 후손 이텔멘족
소멸 위기에 처한 까마귀 후손 이텔멘족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8.04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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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크와 혼혈로 캄차달족 형성…정주종족으로 겨울집과 여름집 구분

 

이텔멘족(Itelmens)은 주로 러시아 캄차카반도 내지의 캄차카강 주변에 모여 살고 있다. 고아시아어족에 포함되며, 추코트카-캄차카 일대의 축치족, 코랴크족과 언어계열이 같다.

이텔멘족은 동유럽인들에게 노출되기 이전의 1650년대에 200~300개 마을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잔혹하기로 유명한 코사크 정복자들이 쳐들어오면서 그들은 살해당하고 전염병에 옮고 부역에 나가면서 인구가 급속하게 줄어 100년후인 1744년에 40~50개 마을로 줄었다. 게다가 남자만으로 구성된 코사크 부대가 캄차카에 정착하면서 이텔멘족의 여인들을 데려가 살았다. 그래서 생긴 혼혈족이 캄차달족(Kamchadals)이다. 중남미의 크레올로처럼 제국주의가 형성한 혼혈족의 하나다.

지금 캄차카에선 이텔멘족의 보호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1993년 현재 이텔멘어를 쓰는 나이든 사람이 100명이 채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텔멘어 유지를 위해 1988년에 이텔멘어 문자와 교재를 만들고, 1990년대초부터 이텔멘인 밀집 거주 지역의 초급학교 1~4학년에서 이텔멘어 수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교사 수급 자체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 덕분인지 1989년 센서스에서 이텔멘족이라고 대답한 사람의 수가 2,400명이었는데, 2002년엔 3,180명으로 늘어났다. 2010년 센서스에서 이텔멘은 3.193명으로 집계되었다.

 

이텔멘족의 춤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의 춤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이 멸족 상태에 가깝게 소멸된 것은 러시아인과 그들의 앞잡이 코사크 때문이다.

이텔멘족이 코사크를 처음 만난 것은 1695년 블라디미르 아틀라소프의 부하 루카 모로즈코 원정대에 의해서였다. 2년후 아틀라소프가 직접 캄차카 원정에 나서 이텔멘의 분열을 이용해 그들을 섬멸했다.

코사크들이 얼마나 원주민을 죽였던지, 1697년 표트르 대제는 캄차카 원주민들을 학대하거나 노예로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하지만 멀고먼 극동에는 차르의 지시가 먹히지 않았다. 이텔멘족은 정주종족이었다. 코사크에게 정주종족은 가장 쉬운 포획대상이었다. 코랴크나 축치에게 붇들리면 신체에 위해가 가해지는데 비해 이텔멘족은 상대적으로 유순했다. 순한 사람은 늘 당한다. 코사크는 이텔멘 여자들을 잡아 아내로 삼고 노예로 팔았다. 총만 가졌을 뿐 야만인이나 다름 없는 코사크들은 소년들도 성적 대상으로 삼다가 팔아치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이텔멘은 1706년 코랴크족의 반란에 동조해 동유럽 야만인들에게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폈다. 이텔멘은 코사크 요새를 공격하고 죽이고 코사크에 부역하는 동족을 잡아 죽였다. 이텔멘의 저항은 더 큰 비극에 의해 중단되었다. 1715년에 더 큰 재앙이 닥쳐왔다. 코사크가 천연두를 옮겨온 것이다. 캄차카 원주민들이 전염병에 대량으로 죽어 나갔고, 인구는 그전의 10%로 줄어들었다. 차르 정부도 캄차카에 5년동안 야삭 공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텔멘족의 분포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의 분포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은 까마귀 신앙으로 유명하다. 이텔멘족의 까마귀 신앙은 이웃 코랴크, 축치족에게도 전파되었다. 이 까마귀 신앙이 고구려의 삼족오, 신라의 연오랑-세오녀에 나오는 까마귀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신라 석탈해가 캄차카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이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밖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 왜국(일본)에서 북서쪽 1천리면 캄차카반도다. 탈해(脫解)의 성에 대해 삼국사기는 “(탈해를 실은) 궤짝이 처음 당도했을 때 까치 한 마리가 울면서 따라 날아왔으니, 까치 작()자를 줄여 ()’으로 성을 삼도록 하자고 했다. 까치와 까마귀는 색깔이 비슷하고, 동아시아에서 종종 신화를 공유할 때가 많다.

각설하고, 이텔멘족의 종교는 다신교이고, 그 정점에 큰 까마귀인 쿠트흐(Kutka)가 자리잡고 있다. 쿠트흐는 이텔멘족의 조상이다. 그런데 쿠트흐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바보멍청이다. 똑똑한 신은 쿠트흐의 아내 까마귀(Chachy), 똑똑하고 영리해 남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이텔멘인들은 또 바다의 신 미트크(Mitgh)를 창조해 냈다. 또 산의 신, 구름의 신, 나무의 신, 악령이 있다고 믿었다.

 

이텔멘족의 겨울집(지하)와 여름집(지상)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의 겨울집(지하)와 여름집(지상) /위키피디아

 

이텔멘족은 유목민족인 코랴크족과 달리 정주종족이다. 그들은 농사와 어로를 하며 생활했다. 또 태평양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 주식으로 삼았다. 연어 살과 알을 말려 저장해 겨울에 먹었다. 그들은 주거지를 만들어 정착했다. 이텔멘족은 가족이 커지면 분가를 해 새로운 거주지를 형성한다. 남자가 결혼하면 여자 집에서 사는 데릴사위제가 행해졌다.

이텔멘족은 겨울집과 여름집을 따로 만들었다. 겨울집은 지하에 만들었고, 여름집은 지상에 지었다. 겨울집에선 여러 가족이 함께 오밀조밀 모여 살지만, 여름집은 가족별로 만들어 널찍하게 쓴다.

겨울집은 땅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90~150cm 깊이로 파서 지하에 짓는다.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벽과 바닥에 짚을 깐다. 네 개의 기둥을 밖고, 천정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만든다. 천정에는 30cm 크기의 구멍을 만든다. 여름집은 말뚝을 여러개 세우고 그 위에 짓는다. 여름집에는 창고와 물고기를 말리는 틀을 설치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Itelmens

이텔멘인-까마귀의 후손 이텔멘인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김민수)

윤성학, 모피로드, 2021, 케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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