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18C 영국의 신데렐라적 사랑
‘오만과 편견’, 18C 영국의 신데렐라적 사랑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8.13 2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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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과 계급으로 옥조이는 현실을 사랑으로 벗어난다는 스토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은 신데렐라성 소설이다. 계급과 신분의 벽을 넘어 서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 현실의 난관을 해피엔딩의 극적 반전으로 해결하는 스토리는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기에 충분하다.

앞서 1697년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민담으로 전해오던 것을 소설 신데렐라로 출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국에서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을 출간한 시기는 1813년으로, 프랑스 소설 신데렐라115년의 차이를 두고 있다.

100여 년 사이에 유럽의 역사는 격동기를 맞는다. 중세 봉건사회가 급격하게 와해되면서 산업화하고, 신흥 부르조아지가 등장했다. 아울러 프랑스 혁명(1789), 영국 명예혁명(1688~89)이 일어나면서 민권 사상이 확산됐다.

 

신데렐라성 소설도 변해야 했다. 계모의 구박을 받던 예쁜 소녀가 궁궐 무도회를 갔다가 왕자의 눈에 띠어 결혼하게 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구태의연한 스토리가 유지될수 없는 상황이었다. 100년 사이에 남성 귀족의 권위주의(오만)가 약화되고, 여성의 까칠함(편견)이 드세지는 시절에 연애와 사랑은 달라야 했다.

오만과 편견에는 신데렐라적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느날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고 경이감에 빠진 여자 주인공, 곧이어 남자 귀족 청년의 구애를 받고 흐믈흐물하게 무너지는 장면에서 무엇이 오만인지, 무엇인 편견인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 질서가 변했을 뿐 상류계급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은 그대로이고, 다만 그 스토리 전개를 여성 작가가 감질나게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요정이니, 요술이니 하는 동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등장 인물들의 심리적 묘사를 통해 신데렐라적 극적 반전을 유도하는 소설적 기술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이 영국의 유명 소설가로 추앙받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1894년 Hugh Thomson 그림) /위키피디아
엘리자베스와 다아시(1894년 Hugh Thomson 그림) /위키피디아

 

소설 오만과 편견은 과년한 딸 다섯을 둔 베넷 부부의 결혼 이야기다. 주무대는 영국 런던 인근에 있는 롱본(Longbourn)이란 시골마을이다. 어느날 옆 마을 네더필드에 젊고, 부유한 신사 빙리가 별장을 빌려 이사를 오면서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베넷 부인은 딸들을 시집 보낼 목적으로 빙리에게 잘보이려 노력한다. 사건은 역시 무도회에서 발생한다. 무도회에서 맏딸 제인은 빙리와 인상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고, 둘째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로 따라온 다아시의 오만함(pride)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지성과 위트 있는 재치에 점차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나쁜 첫 인상에 대한 편견(prejudice)이 굳어져 그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오만과 편견은 당시 영국 계급사회의 질서를 반영한다. 귀족의 아들 다아시는 가난한 지주 딸인 엘리자베스에게 아무리 잘 해주려 해도 뻣뻣하게 보이고(오만), 귀족 계층에서 배운 예의, 관습, 생각들이 가난한 엘리자베스에겐 편견으로 굳어지게 된다. 계층 간의 관습과 사고의 갭이 오해로 다가온 것이다.

 

작품이 집필된 1800년 전후로 영국 상류계급은 혈통, 재산 등에 의해 엄격하게 격을 따졌다. 일반적인 사교 모임에서는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지만, 결혼 등 현실 문제에서는 따지는 게 많았다.

등장인물은 대부분이 지주(젠트리) 계급이다. 주인공 다아시는 명문 백작 가문과 인척 관계이고, 연수입 1만 파운드의 재산가다. 빙리는 그다지 명가는 아니지만 부유하며, 연 수입 5,000파운드의 재산을 보유한다. 여주인공의 집안인 베넷 가는 지주이지만 중류 계급이고, 연 수입 2,000 파운드 정도로 가난한 부류에 해당한다.

당시에 상속재산이 적은 남자와 여자는 모두 부유한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이 가장 쉽게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베넷 가문은 딸들에게 상속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으므로, 조카인 콜린스가 재산을 상속할 예정이었다. 베넷 부인은 이런 사태를 걱정하면서 딸들에게 빨리 배우자를 찾아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사회적, 가족의 분위기에서 엘리자베스는 상대방의 경제적 형편보다는 사랑을 위해서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러브스토리의 필수적 요소다.

그런데 돈 많고 상류계급인 다아시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다아시의 태도는 서툴렀다. 귀족 냄새가 났고, 사근사근하지가 않다.

 

반전은 다아시의 오만함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깨는데 있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가 사랑 고백을 거절하자 장황하게 편지를 쓴다. 엘리자베스는 여기서 1차로 흔들린다. 편지 내용에 공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아시의 저택을 우연히 방문하고 놀란다. 소설은 그의 솔직함에 끌린다고 기술했지만, 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셋째, 동생 리디아의 비정상적 결혼 건에 다아시가 개입해 물질적 혜택을 주는데서 엘리자베스는 다이시에 대한 편견을 무장해제한다. 이젠 항복하는 것만 남았다. 그렇고 그런 연애 스토리다.

책표지(민음사)
책표지(민음사)

 

이 소설이 200년 이상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로맨스가 돈과 계급으로 옥조이는 현실을 사랑과 이해로 벗어난다는 신데렐라적 플롯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똑똑한 엘리자베스처럼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지 않고도 사랑과 행복, 재산과 사회적 지위까지 얻게 되는 스토리 구성이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한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2005년까지 총 6편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 라이트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다.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17751216일 영국의 햄프셔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습작을 하다가 15세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21세 때 첫 번째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후 첫 소설로 첫인상을 집필했지만, 출판이 거절되었다. 이 책이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오만과 편견1813년 최초로 출간되었으며, 영국의 가장 위대한 명작들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간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초턴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엠마등을 출판했다. 1817년 건강이 악화돼 집필을 중단하고, 4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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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en 2022-08-15 15:03:00
오스틴 소설을 신데렐라 이야기에 빗대어 해석하는 건 70년대 초에 이미 상당 부분 폐기된 접근입니다. 오스틴을 이렇게 읽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