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1년 비투스 베링과 알렉세이 치리코프가 알래스카를 탐사한 이후 북아메리카가 곧바로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은 아니다. 1799년 파벨 1세가 칙령으로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선포하기까지 50여년간 알래스카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유럽의 세 나라가 덤벼들었다. 러시아에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스페인과 영국이 알래스카를 넘보았다.

러시아가 알래스카에 접근한 것을 알고는 스페인이 알래스카를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1494년 교황이 정한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이었다. 스페인 출신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승인 아래 세계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반씩 나누는 협약이었다. 이 조약이 유효하다면 아메리카 대륙이 통째로 스페인의 것이 된다. 이 케케묵은 조약을 들이대자 러시아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러시아의 종교는 교황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그리스정교였고, 영국국교회도 교황의 명령을 거역하며 탄생한 분파였다.

 

 

스페인 정부는 알래스카 탐사대를 보냈다. 1775년 브루노 데 에세타(Bruno de Heceta)가 북위 58°의 알래스카까지 탐사했다. 그의 이름은 미국 오레건주의 헤세타 등대, 헤세타 해변으로 남아 있다. 이어 1779년 탐사대는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만(Prince William Sound)을 둘러보고 북위 61°까지 올라갔다. 1788년 스페인 원정대는 알류샨열도 어널래스카(Unalaska)에 형성된 러시아인 정착촌을 방문하기도 했다.

영국에선 제임스 쿡 선장이 1778년 베링해와 알래스카를 탐험했다. 캐나다 북부에서 모피 사업을 하던 영국의 허드슨 베이 회사(Hudson's Bay Company)가 캐나다 서부로 진출, 유콘강 일대를 탐사했다.

1789년 영국과 스페인은 지금의 캐나다 서부 벤쿠버 섬에서 충돌했다. 먼저 도착한 영국이 스페인 선박의 기항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는데 양국은 전투 직전에 두 나라 상인 모두가 그곳에 활동할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타협점을 첮았다.(누트카 조약) 사실상 영국의 승리였다. 이 사건 이후 스페인은 지금의 캐나다 이북의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북미 대륙에서 스페인의 힘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알래스카엔 말래스피나 빙하, 발데스, 코르도바 등의 스페인 지명이 남아 있다.

 

 

베링은 알래스카 원정길에 숨졌지만, 북미의 새로운 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러시아 모피상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베링과 함께 탐험에 나섰던 독일 생물학자 게오르크 슈텔러는 알류샨 열도에 해달, 바다사자 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시베리아 동부에 모피 동물이 고갈된 상태에서 그들은 알류산 열도에 몰려갔다. 베링 원정대가 돌아온 다음해인 1743년 모피 장사꾼들은 캄차카반도를 떠나 베링섬에 도착했다.

해달(sea otter)의 모피는 수달의 그것보다 소비자들에게 최고급으로 대우받았다. 해달 모피는 비싸게 팔렸고, 장사꾼들에겐 노다지였다. 바다사자도 가죽을 제공했다. 러시아 상인들은 알류산 열도를 징검다리처럼 하나씩 건너기 시작해 1763년에 모피상 스테판 글로토프(Stepan Glotov)는 알래스카 남해안 코다액 섬(Kodiak Island)에 도달했다.

러시아의 모피산업 종사자를 프로미시레니키(Promyshlenniki)라고 했는데, 이들은 원주민에게 억압적이었다. 러시아인들은 해달을 잡을 줄 몰랐다. 그에 비해 원주민인 알류트족은 어려서부터 해달을 잡은 기술을 익혔다. 모피상인들은 알류트족에게 해달 사냥을 요구했다. 상인들은 잔혹하게 원주민을 다뤘다. 알류트족 어린이와 여자를 포로로 잡아 성인남성들에게 석방의 조건으로 해달을 잡아오라고 했다. 아내와 자식을 인질로 잡힌 알류트족들은 어쩔수 없이 해달을 잡으러 위험한 바다로 나가야 했다. 알류트족 가족은 해체되고 분리되고, 파괴되었다. 러시아놈들은 알류트 여인을 임신시켰다. 알류트족도 저항했지만, 총칼 앞에 무기력했다. 골로토프의 경우 유니막 섬의 마을 하나를 통째로 파괴하고 수백명의 알류트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이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들어갔다. 카테리나 2세는 1763년 알류트족을 가족처럼 친절하게 대하라고 명령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차르의 가식이었을 뿐이다.

 

 

알래스카가 돈이 된다는 뉴스에 시베리아에 몰려 있던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베링해를 건넜다. 베링해를 건너는 것은 예로부터 위험했다. 모피상인들은 알류산열도와 캄차카반도에 모피중개소를 개설했다. 모피회사들은 출혈 경쟁을 벌였다. 회사마다 특정 섬과 주민에 대한 사업권을 주장했고, 경쟁적으로 원주민을 수탈했다.

그중 가장 악랄한 상인이 그리고리 셸리코프(Grigory Shelikhov)였다. 그는 러시아 유럽지역인 쿠르스크 출신으로, 1783년 고향 동료인 이반 골리코프(Ivan Golikov)와 동업으로 셀리호프-골리코프 회사(Shelikhov-Golikov Company)를 설립했다. 회사는 이르쿠츠크에 사무실을두고 쿠릴열도와 알류샨열도에서 잡은 해달 바다사자 등을 거래하는데 주력했다. 회사는 원주민을 고용해 바다동물을 획득했는데, 수법은 다른 회사처럼 알류트족 가족을 인질로 삼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채집한 모피는 중국과 일본, 스페인령 필리핀에 팔고, 소금과 쌀등을 사서 시베리아에 공급했다.

셸리코프는 1784년 코다액섬의 스리세인츠만(Three Saints Bay)에 모피교역소를 설립했다. 러시아인들이 섬을 차지하자 선주민인 알루티크족(Alutiiq)이 반발했다. 섬에 도착한 러시아인 130명은 총과 대포로 무장했다. 원주민들은 해안가에 있는 해식애(sea cliff)와 해식기둥(sea stack)으로 도피했다. 그곳은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으로, 아와우크(Awa'uq)라 불리었다. 러시아인들은 그곳으로 도피한 알루티크족을 집단살해했다. 그 숫자는 200~500명이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많게는 3,000명에 이른다는 관측도 있다. 셸리코프의 부하들은 1,000여명의 주민을 체포하고, 주로 어린아이 400명을 인질로 잡고 나머지는 풀어주었다. 이후 알루티크족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안에게 복종했다.

이 사건은 감추어졌다가 생존자가 50여년 후에 그곳을 방문한 핀란드의 생물학자(Henrik Johan Holmberg)에게 진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무렵 영국 모피회사도 알래스카에 진출했고, 갓 독립한 미국의 회사들도 모피 영업에 뛰어들었다. 영미 계통의 회사들은 원주민들에게 셸리호프 회사보다 비싼 값으로 모피를 사들였고, 러시아인들처럼 인질극을 벌이지도 않았다. 셸리호프는 영미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러시아인들만으로 단일 회사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중심에 자신이 서겠다는 야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2세는 그의 생각에 미온적이었다.

그렇게 탐욕적이었던 셸리호프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는 1790년에 유능한 경영 알렉산드르 바라노프(Aleksandr Andreyevich Baranov)를 영입하고 1795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셸리호프가 죽고 동업자 골리코프가 회사에서 떨어져 나갔다. 셸리호프의 부인 나탈리아는 1797년 이르쿠츠크의 경쟁회사 밀니코프사와 합병을 성사시켜 ‘유나이티드 아메리카 회사’(United American Company)를 출범시켰다.

1796년에 즉위한 파벨 1세는 셸리호프가 주장한 알래스카 사업의 독점에 대해 어머니 예카테리나 2세보다 호의적이었다. 1799년 7월 8일 파벨 1세는 북위 55° 이북의 북아메리카를 러시아 영토로 선포하고,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컴퍼니를 ’러시아 아메리칸 회사‘(RAC, Russian-American Company)로 변경해 북미 대륙의 사업권 일체를 독점하도록 했다. 이 칙령으로 RAC 이외의 모든 회사는 북미지역 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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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ikipedia, History of Alaska

Wikipedia, Russian America

Wikipedia, Stepan Glotov

Wikipedia, Ukase of 1799

Wikipedia, Shelikhov-Golikov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