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령 아메리카②…틀링깃족의 저항
러시아령 아메리카②…틀링깃족의 저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8.1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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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투에서 러시아 패배…본국 순양함 네바호 지원 받아 제압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RAC, Russian-American Company)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를 모방한 회사였다. 원래는 이르쿠츠크의 사기업이었던 셸리코프-골리코프 회사(Shelikhov-Golikov Company)에 정부가 북미지역 사업독점권을 부여하면서 179978일부로 이름을 RAC로 변경하고, 정부의 통제를 강화했다. 본사도 이르크츠크에서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이전했다. 경영진은 차르 정부에 경영보고서를 제출해야 했고, 정부가 임명한 감사와 이사진 일부를 받아들여야 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처럼 RAC는 군대를 보유했고, 식민지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사실상 총독정부의 기능을 했다. 영어권에서는 RAC의 사장을 주지사(governer)로 번역하기도 한다.

RAC의 초대 사장은 1791년부터 셸리코프-골리코프의 사장을 맡았던 알렉산드르 바라노프(Alexander Andreyevich Baranov)가 이어받았다. 바라노프는 그때까지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수도였던 코디액 섬이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쓰나미와 지진이 잦았고, 한대성 기후여서 겨울엔 추웠다. 그는 보다 따듯하고 안전한 곳으로 수도를 옮길 생각으로 알래스카 해변을 물색하다가 1795년 싯카만의 한 섬을 후보지로 선택했다. 그 섬이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바라노프 섬(Baranof Island)으로 명명되었다. 그곳은 원주민 틀링깃족(Tlingit)의 거주지역이었다. 바라노프는 틀링깃족에게 이곳에 이사오더라도 공격하지 말아달라며 약간의 사례금을 주었다고 한다.

RAC가 발족하고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본격적으로 통치하게 되자, 179977일 바라노프는 코디액에 살던 사람을 대거 싯카로 이동시켰다. 이때 대형범선과 카약으로 이동한 인원은 러시아인 100, 알류트족 700, 다른 원주민 300명 등이었다. 틀링깃족은 일단 새 이주자에게 환영을 표시했다.

바라토프는 그곳을 자신의 고향 아르한겔스크의 이름을 따 노보 아르한겔스크(Novo-Arkhangelsk)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곳에 창고와 대장간, 군대 막사, 감시탑, 목욕탕 시설 등을 지어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틀링깃족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틀링깃족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틀링깃족은 얼마 안가 러시아인들에게 적개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러시아인들이 원주민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야만인으로 멸시했다. 러시아인들은 총으로 위협해 틀링깃족에게 부역을 시키고 공물을 내놓으라고 했다. 틀링깃 이웃 부족들은 당신네들이 땅을 주어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인근에서 가장 용맹하다고 평가받아온 틀링깃족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1799년 겨울이 되면서 틀링깃족은 수시로 러시아인들의 정착촌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틀링깃 전사들은 우월한 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인에게 격퇴되었다.

1800년 바라노프는 러시아인 25, 알류트인 55명을 남겨놓고 코디액으로 돌아갔다. 영국과 미국의 모피상들이 틀링깃족에게 머스킷총을 주며 무역독점권을 달라고 협상을 벌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싯카 전쟁 그림(Louis S Glanzman) /위키피디아
싯카 전쟁 그림(Louis S Glanzman) /위키피디아

 

1802년 틀링깃 전사들은 러시아인들의 정착지를 기습공격했다. 그들은 러시아인과 알류트족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고, 해달 모피를 빼앗고 주거지와 선박를 불태웠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숲으로 달아났다.

때마침 코디액으로 가던 영국배 유니콘호이 노보 아르한겔스크에 들렀다가 원주민의 습격사건을 목격했다. 선장 바버(Captain Barbe)는 블링킷 전사에게 잡혀 있던 러시아인 3, 원주민 20여명, 해달 모피등을 빼앗아 코디액으로 갔다. 영국인 선장은 러시아 당국에 틀링킷족의 습격을 알리면서 포로들의 몸값으로 1만 루블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마지못해 요구액의 20%를 주었다고 한다.

 

코디액섬을 방문한 러시아 순양함 네바호 /위키피디아
코디액섬을 방문한 러시아 순양함 네바호 /위키피디아

 

틀링킷도 러시아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주민의 샤먼은 해안가 높은 곳에 망대를 짓고, 해안으로 적이 침공할 것을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샤먼의 예언에 따라 블링킷은 해안가 야산에 초소를 짓고 경계병을 배치했다. 게다가 배에서 포를 쏘더라도 안전하도록 높은 곳에 주둔지를 만들고, 해안가에는 목책을 밖았다. 그런데 이 원시부족은 러시아인들이 최신 순양함 네바(Neva)호를 끌고 올 줄을 몰랐다.

네바호는 1801년 영국에서 건조된 상선 템스(Thames)호였다. 러시아가 1802년 영국 상선 두척을 매입했고, 그중 템스의 선명을 네바로 바꾸었다. 길이 61m, 450톤의 이 배는 러시아 해군에 소속되어 갑판에 대포 14문을 장착하고 수명 43명이 승선하는 순양함으로 전환되었다. 이 배는 1803년 러시아 최초로 세계일주의 임무를 띠고 출항해 이듬해 북아메리카를 항해하고 있었다.

바라노프는 복수의 기회를 엿보았다. 본국에도 블링깃족 습격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그는 블링깃 보복전에 북태평양지역을 항해중인 네바호를 끌어들였다.

 

18049월말 네바하와 에르마크호, 다른 두척의 범선, 250척의 바이다르카 카약이 싯카 해안에 새카맣게 몰려왔다. 여러 가지 배에 탄 사람은 러시아인 150, 알류트족 400~500명쯤 되엇다. 블링깃족도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포격은 101일부터 시작되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네바호가 쏜 함포사격으로 블링깃족의 요새는 붕괴되었다. 포격은 4일을 넘기지 않았다. 104일 러시아인과 알류트족이 상륙해 적의 요새를 장악했을 때 블링깃족은 사망자와 부상자만 남겨둔채 퇴각해 버렸다.

러시아의 완벽한 승리였다. 네바호는 퇴각했다. 러시아인들은 블링깃족이 만든 고지대 요새를 점령해 초소를 세우고 호화주택을 지었다. 바라노프는 노보 아르한겔스크를 다시 점령하고, 그곳을 러시아-아메리카의 수도로 삼았다. 노보 아르한겔스크는 1876년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후 블링깃족이 부르던 싯카(Sitka)로 복원했다. 미국에서는 1804년의 전투를 싯카전투(Battle of Sitka)이라고 부르다.

 

블링깃족은 내륙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터전을 세우고 러시아인과 그들에게 부역한 원주민 부족과 싸웠다. 1805년에 틀링깃 전사들이 야쿠타트를 공격해 러시아인 14명과 알류트족 200여명을 사살하고 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후에도 크고 작은 습격이 1858년까지 이어졌다.

일부 블링킷족은 러시아에 협력해,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도 했다. 러시아도 블링깃족과의 화해를 위해 협력자들을 대우하기도 했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후 1880년 인구센서스에서 틀링깃족 43명이 인디언강 주변에 살고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싯카국립역사공원의 틀링깃 추모기념비 /위키피디아
싯카국립역사공원의 틀링깃 추모기념비 /위키피디아

 

1972년 미국 연방정부는 싯카 전투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당시 사망한 블링깃족과 러시아인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각각 세웠다. 200410월 싯카전투 20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인과 블링깃족 후손들이 참여해 참회와 화해의 행사를 열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Battle of Sitka

Wikipedia, Tlingit

Wikipedia, Sitka, Ala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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