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령 아메리카④…하와이왕국 전복작전
러시아령 아메리카④…하와이왕국 전복작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08.2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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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사 섀퍼, 카우아이섬 추장과 손잡고 보호국화 시도하다 실패

 

섀퍼는 독일 의사였다. 1779년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812년 러시아로 건너갔다. 그는 러시아 아메리카 회사(RAC) 소속 상선에서 의사로 근무했는데,  선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1813년 그가 탄 배가 알래스카에 도착했을 때, 다시 그 배에 올라타지 않았다. 가뜩이나 의료진이 부족하던 차에 RAC 사장 알렉산드르 바라노프는 독일에서 온 의사가 정착하겠다고 하자 반갑게 맞았다.

게오르그 안톤 섀퍼(Georg Anton Schäffer)가 알래스카에 도착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이 신출내기가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에서 정변을 꾀한 것도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1815130RAC 소속 선박 베링호가 하와이 카우아이(Kauai) 섬 해변에서 좌초되었다. 배에는 알래스카산 모피와 식량 등 다양한 화물이 실려 있었고, 그 화물의 가치는 10만 루블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당시 카우아이 섬의 추장은 카우무알리(Kaumualiʻi)였다. 베링호의 선장 베넷(Bennett)은 배를 줄 터이니, 화물을 돌려달라고 해 추장의 동의를 얻어냈다.

RAC 사장 바라노프는 화물을 찾으러 사람을 물색했다. 그때 러시아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들은 캘리포니아 포트로스나 코디액 섬에 가 있어 수도 노보 아르한겔스크(싯카)에는 믿고 보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바라노프는 어쩔수 없이 독일 의사에게 하와이로 가서 화물을 찾아오라고 했다.

 

게오르그 안톤 새퍼 /위키피디아
게오르그 안톤 새퍼 /위키피디아

 

하와이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다. 쿡 선장은 177811월 하와이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마우이 섬에 도착했고, 그는 원주민들에게 신으로 받들어 졌다. 하지만 그가 신이 아님이 드러나면서 1779년 살해되었다.

서양인의 도래는 하와이 원주민을 자각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와이 제도는 섬 단위로 추장이 통치하며 분열되어 있었다. 섬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서양인들이 접근했고, 서양인과 접촉해 무기와 후원을 얻은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하와이 섬에서 기반을 쌓은 카메하메하(Kamehameha)가 세력을 확대해 오아후, 마우이 섬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1795하와이 왕국(Hawaiian Kingdom)을 수립했다.

카메하메하 왕은 카우아이 섬을 정복하려 했으나, 폭풍우와 전염병으로 실패했다. 1810년 카우아이 섬의 추장이 카메하메하에게 신하가 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하와이 왕국은 형식적으로나마 열도를 통일하게 되었다.

카우아이 섬은 면적이 1,456.4로 제주도의 80% 정도로, 하와이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 킹콩 등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섬의 추장 카우무알리는 하와이 왕의 위세에 눌려 머리를 숙였지만, 때가 되면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 배가 좌초한 것이다. 추장은 이 배를 이용할 계획에 골몰했다.

 

하와이 제도 /위키피디아
하와이 제도 /위키피디아

 

섀퍼는 181511월에 먼저 하와이 왕을 찾아갔다. RAC는 오래전부터 하와이왕국과 거래를 트고 있었다. 바라노프 사장은 하와이 왕에게 보낸 서신에서 카우아이가 화물을 변상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할수도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메하메하의 입장에서 말을 잘듣지 않는 카우아이를 러시아가 공격해주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하와이왕국은 섀퍼에게 필요하다면 토지를 주고 교역센터도 짓게 하겠다고 제의했다. 카메하메하 왕은 섀퍼에게 조약을 체결하자고 압박했으나, 섀퍼는 마지막 순간에 서명을 거부하고 17165월 카우아이 섬으로 가버렸다. 두 세력 중에 유리한 쪽의 편에 서겠다는 판단이었다.

카우아이 섬의 카우무알리 추장은 경쟁자인 하와이 왕보다 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카우아이는 물론 니하우, 오아후, 마우이, 라나이 섬의 추장들이 러시아 차르에게 신속(臣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조건으로 러시아가 무력을 동원해 하와이왕국을 공격해달라는 것이다.

카우아이 섬에는 섀퍼가 타고 온 이사벨라(Isabella)호 이외에도 바라노프가 추가로 보낸 옷크리티예(Otkrytie), 선박 수리차 들른 일메나(Il’mena)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상선들은 해적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을 했다. 카우아이 추장은 세척의 러시아 상선을 이용하고 싶었다.

의사 출신인 섀퍼는 정치감각에는 초보였지만 돈키호테와 같은 성격이 있었다. 그는 카우아이 추장의 제안에 기울었다. 추장은 자신의 섬에 좌초한 러시아 선박의 손해를 충분히 보상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섀퍼가 태평양 한가운데에 온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게다가 백단향(sandalwood)에 대한 독점무역권도 주겠다고 했다. 셰퍼는 카우무알리 추장의 파격적 제안을 받아들여 그해 71일 조약에 서명했다. 카우아이측은 러시아의 삼색 기를 올리고, 러시아 해군 복장을 하고 서명식에 참석했다.

섀퍼는 카우아이 섬에 러시아 요새를 건설했다. 엘리자베트 요새(Fort Elizabeth)는 원주민들이 동원되어 1817년말에 준공되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알렉산드르(Alexander)와 바클레이 드 톨리(Barclay-de-Tolly) 요새도 건설되었다.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러시아 엘리자베트 요새(모형) /위키피디아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러시아 엘리자베트 요새(모형) /위키피디아

 

섀퍼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알래스카의 바라노프와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보고서를 올렸다. RAC 이사들은 섀퍼의 작전에 긍정적이었지만, 페테르스부르크의 조정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17971815)의 후유증이 큰데다 당시 세계 해양의 제해권을 쥐고 있는 영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하와이왕국의 카메하메하 왕을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를 섀퍼가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누가 뭐래든 카우아이의 손을 잡고 하와이를 보호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일을 저지르면 북아메리카의 RAC와 상트페테르스부르크가 추후 승인할 것으로 판단했다. RAC의 수장 바라노프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 해군 수뇌부는 섀퍼의 계획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무력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고,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합병(1848)하기 이전이었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캄차카와 오호츠크, 알래스카, 캘리포니아에 식민지를 건설, 미국보다 먼저 태평양에 진출해 있었다. 섀퍼는 뒤늦게 정치와 외교, 군사에 눈을 떴지만 지정학적 세력균형을 올바르게 판단한지도 모른다. 내륙에서만 게임을 치렀던 러시아제국은 태평양 천원(天元)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이다.

 

하와이왕국 초대 왕 카메하메하 /위키피디아
하와이왕국 초대 왕 카메하메하 /위키피디아

 

하와이에서 러시아와 영미의 대리전이 벌어졌다. 미국은 카메하메하를 지지하며 다섯 척의 상선을 보냈다. 912일 미국 상선 오케인(O'Cain)호가 카우아이에 상륙해 러시아기를 내리려 했다. 카우무알리의 병사들이 미국 상인들을 격퇴했다.

새퍼가 하와이왕국과 교전하기도 전에 러시아 해군이 먼저 배신을 때렸다. 세계일주를 하던 러시아 해군 소속 루릭(Rurick)호가 181612월 하와이에 도착했다. 카메하메하 왕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고 400명의 병사와 의용군을 해변에 배치했다. 함정에서 내린 오토 폰 코체부에(Otto von Kotzebue) 함장은 카메하메하 왕을 알현하면서 뜻밖의 말을 전했다. 함장은 러시아 동료(섀퍼)를 사전에 만난 적이 없으며, 하와이왕국과 평화적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섀퍼의 행위가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섀퍼가 고용한 미국인들이 먼저 이탈했다. 곧이어 카우아이 사람들이 동요했다. 카우무알리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카우아이 주민들은 섀퍼를 묶어 배에 태우고 이곳을 떠나라고 했다. 섀퍼는 하와이를 떠났다가 회항명령을 네랴 낼 카우아이의 엘리자베트 요새를 장악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노보 아르한겔스크로 돌아가지 않았다. 181777일 그는 청나라 남부 교역도시 광저우(廣州)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한때 자신이 병을 고쳐준 선장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 식민지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쳐 독일로 돌아갔다.

 

1818년 섀퍼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독일 아헨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나폴레옹 전쟁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였다. 섀퍼는 아헨으로 가서 차르를 알현하고 하와이를 보호령으로 만들 것을 재차 주장했다. 차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러시아 해군에 의해 거부되었다.

역사가들은 하와이의 러시아인 반란음모를 섀퍼 사건(Schäffer affair)이라고 부른다.

 


<참고자료>

Wikipedia, Schäffer affair

Wikipedia, Georg Anton Schäffer

Wikipedia, Russian Fort Elizabeth

Wikipedia, Alexander Andreyevich Bar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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