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건에서 드러난 쇼비니즘의 댓가
론스타 사건에서 드러난 쇼비니즘의 댓가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9.0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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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구,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정부 개입에 3천억원 배상 판정

 

론스타가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적 분쟁이 10년만에 마무리되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정부가 21,650만달러(2800억원)와 그에 대한 이자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정했다. 원화로 계산하면 그 금액이 3,000억원을 넘는다.

당초 론스타가 요구한 금액은 468,000만 달러(61,000억원)이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금액이었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금액 13,834억원보다 4배나 많은 금액이다. 법적소송을 할 때 부플릴대로 부풀려 청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청구금액 대비 96.4% 승소하고 4.6%만 패소했다는 법무부의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명 론스타사건으로 불리는 외환은행 국제투자분쟁 사건은 24년전인 1998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경제는 외국 빚을 갚지 못해 국가부도에 처했다. 환율은 1달러당 2,000원으로 치솟았고, 지금 스리랑카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IMF에 손을 내밀었고 IMF는 시중은행 2개를 해외에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마지못해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2개 은행은 가장 부실이 큰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이었다. 2개 은행을 외국에 팔지 않으면 파산시키거나 공적자금을 더 퍼부어야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 곧이어 김대중 정부는 IMF 요구라는 핑계를 대며 해외매각을 받아들였다. 그후 제일은행은 영국의 스탠더드앤차타드에, 외환은행은 미국의 론스타펀드에 매각되었다.

론스타 로고
론스타 로고

 

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가장 큰 동력은 IMF 구제금융과 2개 은행 해외매각이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금 모으기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정치인들의 자화자찬, 국수주의자들의 자기도취에 불과한 얘기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에 대한 혐오주의가 사회에 팽배해졌다. 외환은행이 그 타깃이 되었다. 시작은 론스타의 자격시비였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영국정부의 인가를 받은 은행이므로 건드리지 몫하고, 론스타가 걸려들었다. 투기자본감시센타라는 시민단체가 2004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취득승인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했다.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좌우의 차이는 없었다. 론스타는 투기자본으로 집중공격을 받았고, 헐값매각이라는 타이틀로 변양호 등 경제관료 20여명이 줄줄이 검찰에 고발되었다.

2006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젠 먹고 튄다(먹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기업, 금융기관도 해외에 나가 먹튀하고 돌아온다는 사실은 조금도 얘기하지 않는다. 론스타의 대표가 주가조작혐의로 체포되고 재정경제부 관료가 구속되었다. 관료들 사이에 변양호 신드롬이 형성되었다. 관료들은 잘 되어도 대우받지 못하고 못되면 피해를 보는 업무를 일단 피하려 했다.

홍콩의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하겠다고 합의했다가 정부(금융위원회)가 비틀었다. 론 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국내 재판소에 출석했다. HSBC는 외환은행 인수계약을 파기했다. 론스타는 다시 인수대상을 찾아 하나금융에 39,157억에 팔았다. 2010년의 일이다. 론스타는 정부가 개입하는 바람에 외환은행을 비싸게 팔수 있었는데 싸게 팔게 되었다고 국제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론스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이 아니라 HSBC에 갔어야 했다.

 

길게는 20여년, 짧게는 10년에 걸친 지루한 법정분쟁의 끝은 3,000억원의 배상판결이다. 정부가 개입해서 손해를 보았으니 정부가 갚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국제 판결에 대한 국내 언론의 시각은 아직도 마녀사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아일보 사설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론스타 사태는 한국 금융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던 시절 투기자본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 금융당국이 독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벌어진 일이다. 문제가 생긴 뒤에도 매끄럽지 않은 정부의 일처리, 전문성 부족이 이어져 막대한 세금이 나가게 됐다. 한국적 관치(官治)금융의 총체적 실패인 셈이다.” 준엄하게 언어를 구사했지만 왜 배상금 판결이 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같다.

한겨레신문 사설은 엉뚱하게 현정부 관료들을 겨냥했다. “현 정부 고위인사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으로 깊이 관여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인수협상을 할 때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었다. 만약 이번 판정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구상권 행사와 함께 형사 책임도 물어야 한다.” 외환은행 관련 업무를 한 사람은 모두 책임지라는 아주 무책임한 주장이다.

경향신문 사설은 모호하다. “ISDS는 국가 정책보다 투자자 보호를 우선하는 데다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ISDS 제도 자체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 미국 중심적이니 나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경향신문의 정치적 색깔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사설은 글로벌 시각에서 정리했다이번 판정은 외국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 간 보호 수준에 격차가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ISDS의 적용 대상은 해외 투자자의 진입부터 사업 운영, 자금 회수에 이르는 모든 절차상 행정, 입법, 사법 행위를 포괄한다. 글로벌 관점에서 국제와 국내 행정법 간 비교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식행정은 없는지 점검하는 게 급선무다. ISDS의 적용 대상이 폭넓고 규정도 복잡한 만큼 입법 및 행정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 절차적 적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표준에 맞춘 규제의 합리화도 필요하다. 이참에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법률을 제·개정할 때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외국인 투자자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없는지 사전에 면밀히 점검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매일경제 사설도 외국자본 폄하 경향을 우려했다. “외국 투자자가 국내에서 얻은 수익이 정당하냐는 법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외국 기업의 이득을 '먹튀'로 폄하하는 일부의 정서에 휩쓸릴 경우 국익에 손해만 될 것이다. 국제신인도도 추락할 게 분명하다.”

이번 판결은 외환위기 이후 팽배한 쇼비니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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