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9.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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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목간, 선박 부재 등 발굴…목조불상은 신라, 건축물은 고려 유산

 

목재는 인류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물질이고, 지금도 친근하게 우리 주변에서 인간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역사도 나무와 함께 했고, 목재 문화재도 많이 발굴되고 남아 있다.

우리 선조들은 나무로 집을 짓고, 배를 건조하고 악기를 만들고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경주에 가면 신라시대 교량 월정교를 복원해 놓았는데, 석재와 목재로 구성되어 있다. 종이가 등장하기 전에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간(木簡)에 문자를 기록했다. 가야시대의 목간이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어 사료가 부족한 우리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김해 봉황동에서 출토된 선박 부재. /김해박물관
김해 봉황동에서 출토된 선박 부재. /김해박물관

 

고대 선박은 나무로 만들었다.

20126월에 경남 김해에서 고대 선박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재질은 목재였다. 김해시 봉황동 119-1번지 연립주택 신축부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선박부재가 출토됐는데, 보존처리 결과 가야의 배로 밝혀졌다. 발굴현장에서는 선박부재와 노, 닻으로 추정되는 돌 한점도 발견됐다.

보존처리를 한 결과, 선박부재는 길이 390cm, 32~60cm, 두께 2~3cm의 대형목재 유물로서 앞면에는 일부 문양과 쐐기 및 쐐기홈이 존재하고 한쪽 끝 부분은 다른 부재와 결합할 수 있도록 가공되어 있었다. 선박에 사용된 재질은 녹나무와 삼나무로 밝혀졌다. 녹나무는 난대성 수종으로 중국과 일본에 많이 자라고, 우리나라는 남해안 일부 지역과 제주도에서 생장하고 있다. 또한 삼나무는 일본 고유 수종으로 일본의 선박건조에 흔히 이용되는 수종이다.

봉황동 선박부재를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한 결과, 3~4세기로 파악되었다.

앞서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배 2척이 발굴됐다. 소나무의 속을 U자형으로 들어내 만든 이배는 길이 4m, 62cm의 카누형 배였다. 7,000~8,000년전 신석기시대의 선박으로 추정된다.

 

합천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에 보관된 두 목조불상 /문화재청
합천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에 보관된 두 목조불상 /문화재청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은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이 남아 있다. 경남 해인사에는 법보전과 대적광전에 목조비로자나불좌상에 따로 모셔진 쌍둥이 불상이 목조인데, 9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가 802년에 창건되었고, 불상은 창건시기에서 머지않은 시점에 조성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이다.

 

안동시 봉정사 극락전 /문화재청
안동시 봉정사 극락전 /문화재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은 경상북도 안동시 천등산에 있는 봉정사 극락전이다. 봉정사는 672(문무왕12)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1972년 이 건물을 보수공사를 할 때 상량문에서 기록이 발견되었다. 기록에는 고려 공민왕 12(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극락전의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었고,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 /문화재청
부석사 무량수전 /문화재청

 

그다음에 오래된 건물은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봉정사 다음으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1916년 해체·수리 때 발견된 기록으로 보아 1376(고려 우왕2)에 수리했다고 하나 구조수법이나 세부양식이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올려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같은 경내에 있는 조사당이 1377(고려 우왕3)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 건물과 비교할 때 100년 내지 150년 정도 앞섰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공민왕 7(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1376)에 다시 지은 것이고, 조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했다.

건축시기로 봉정사 극락전이 부석사 무량수전에 비해 앞서지만 건축 완성도 면에서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규모는 앞면 5·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목재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목재의 내구성을 키우고 적정한 통풍과 제습, 해수침적, 옷칠, 단청 등의 방법으로 세균의 침입을 막고 부패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의 특징을 잘 파악해 적합한 용도로 쓴 것도 목조물 장수의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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