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불허한 광화문 월대, 복원해야 하나
세종이 불허한 광화문 월대, 복원해야 하나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2.09.1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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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발굴조사 실시, 내년 복원 예정…역사성·현실 여건 등 고려해야

 

문화재청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있던 월대를 복원한다는 계획 아래, 91일부터 학술발굴조사에 들어갔다. 월대(月臺, 越臺)는 궁궐 앞에 넓은 기단을 만들어 각종 의식을 치르던 곳을 말한다. 일제가 이를 헐었고, 6·25 전쟁 때 훼손되었으니, 복원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가뜩이나 광화문광장을 뜯어 길을 좁힌데 이어 광화문 앞을 불룩하게 삐져 나오도록 월대를 만들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복구도 좋고 복원도 좋은데, 서울 한복판의 기존 시설을 뒤흔들며 망한 조선의 궁궐 정문앞 테라스까지 옛날처럼 되돌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월대는 한마디로 문턱 플랫폼 또는 연단이다. 이 연단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가 없으나, 고종 5(1868)에 임금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것은 분명하다. 세종대왕은 월대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세종실록엔 이렇게 쓰여 있다.(세종 13, 1431329)

 

예조 판서 신상이 "광화문 문밖에 본래 섬돌이 없어서 각품 관리들이 문 지역까지 타고 와서야 말에서 내리오니, 이는 매우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또 이 문은 명나라 사신이 출입하는 곳으로서 이와 같이 낮고 누추하게 버려두는 것은 부당하오니, 돌을 채취하여 계체(階砌)를 쌓고, 양쪽 곁으로 둘레를 쌓아야 하며, 또 강화(江華) 매도(煤島)의 전석(磚石)을 취해다가 안바닥을 포장하여 한계를 엄중하게 하소서."라고 건의했다.

이에 임금은 “"지금 바야흐로 농사철에 접어들었는데, 어찌 민력(民力)을 쓰겠는가." 하고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2007년 발굴조사 후 복원된 광화문과 월대 일부 /문화재청
2007년 발굴조사 후 복원된 광화문과 월대 일부 /문화재청

 

조선일보에 따르면, 세종 이후 광화문 월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후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경복궁이 재건된 것은 고종 초기였고, 이때 모습을 드러낸 경복궁의 규모는 태조 때보다도 장대했다고 한다. 월대도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월대는 1860년대에 만들어져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까지 60여년간 존재했던 시설이다. 이 월대가 만들어지고 고종이 백성들과 대화를 하고 소통을 했다는 기록이나 정황을 찾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4월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광화문 앞 월대 등 문화재 발굴복원과 해태상의 원위치 이전, 역사광장 조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가 중요 행사가 있을 때 국왕이 출입하면서 백성과 연결되던 소통과 화합의 장소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월대를 둘러싼 광화문 권역이 국왕의 궁궐 밖 행차에서 어가 앞 상소 등을 통해 백성과 소통을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월대가 경복궁 근정전 등 궁궐 전각과 종묘, 능침 정자각 등에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앞 해태상도 원위치를 찾아 제자리로 돌려 놓을 계획이다. 해치(獬豸)는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상상속의 동물로 예로부터 화재나 재앙을 막는 신수(神獸)로 여겨져 궁궐이나 절 등 중요한 시설에 세워졌다. 서울시는 해치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

해치상은 본래 광화문 월대 앞 양쪽에 각각 세워져 있었는데, 1920년대 일제의 조선총독부청사 건립 과정에서 광화문과 함께 철거되었다. 이후 광화문은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쪽으로 옮겨졌고 해치상은 총독부 청사 앞으로 자리를 옮겨 놓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광화문도 현재 위치에 복원되면서 해치상도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원래 해치상이 위치했던 장소는 현재는 도로와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원위치로 추정되는 곳에는 표시석만 세워져 있는 상태다.

2020년 강화문화재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화문 서편에 있는 해치는 현재 광화문 광장에 있는 해치상 표시석보다 동북방향으로 약 1.5m 떨어진 곳에 있고, 동편 해치는 해치상 표시석의 서북방향으로 약 1m 떨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해치를 원래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월대 조성이다.

2019년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이때 토론자로 나온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월대, 해태상을 세우고 역사광장으로 세우는 것이 민주·시민광장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 심층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염복규 교수는 월대 복원에 신중해야 하고 복원을 한다면 역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경실련 시민연대 전상봉씨는 월대복원에 관하여 시민들에게 납득할 명분이 없으면 접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월대와 해치상 복원은 문화재청 산하 궁능유적본부이 맡고 있다. 궁능유적본부는 연말까지 월대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2023년까지 광화문 월대를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광화문 월대 좌측면(풍속사진첩 1890년대)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좌측면(풍속사진첩 1890년대)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전경(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1910년대 후반)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전경(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1910년대 후반)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좌측면(국사편찬위원회, 1923년 이전)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좌측면(국사편찬위원회, 1923년 이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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