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⑧…돌덩어리에 새겨진 이름
이사부⑧…돌덩어리에 새겨진 이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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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신라적성비에 ‘이사부지’로 거명…소백산맥 넘어 남한강 중류로 진출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 부족하다.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도 기록되지 않았다. 지증, 법흥, 진흥왕 3대에 걸쳐 병권을 쥐고 신라 영토를 2~3배 확장한 중심인물이었으므로, 적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진흥왕 또는 거칠부 등이 의도적으로 그의 업적을 축소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경쟁심 또는 시기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같은 정통 역사서가 아닌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 아직도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화랑세기>에 이사부의 이름이 등장한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이사부다.

그의 기록은 우연하게 돌덩어리에서도 발견되었다. 바로 단양 적성비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에 위치한 단양 신라 적성비(赤城碑)1978년에 발견되었다.

 

이 비석은 1,500년전 고대 신라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기록해 묻어둔 타임캡슐이다. 적성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월중에 임금(진흥왕)이 대중등(大衆等)에 교사를 내리시니 훼부의 이사부지(伊史夫智) 이간지(伊干支)□□□서부질지(西夫叱智) 대아간지(大阿干支), □□夫智 대아간지(大阿干支), 비차부지(比次夫智) 아간지(阿干支)와 사탁부의 무력지(武力智) 아간지(阿干支) 등이 교사를 받들어 관장했다.”

적성비에서 이사부의 이름이 첫머리에 나온다. 한자 표기로 이사부지(伊史夫智).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사부(異斯夫)와 한자가 다르다. ()는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어미로 오늘날 또는 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한자의 차이는 있지만, 음으로는 이사부가 그대로 살아나온다.

내로라는 고고학자, 금석학자들이 모여 신라인들이 쓴 암호를 해독했다. 향찰식도, 한문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발견된 비문 중 가장 난해한 문장이었다는 평이었다. 일부에 상충되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윤곽이 잡혔다.

 

내용인즉, “진흥왕이 이사부와 비차부, 무력 등 10명의 고관에게 교시를 내려 신라의 국경개척을 돕고 충성을 바치다 숨진 야이차와 그 가족을 비롯해 적성사람(고구려인)의 공을 표창하고, 나중에도 야이차처럼 충성을 바치면 포상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신라가 소백산맥(죽령)을 넘어 고구려 땅을 뺏은 뒤 점령지 민심을 다독이는 차원에서 신라에 협조한 현지인에게 포상을 내리는 국가정책을 돌에 새긴 일종의 헌장인 셈이다.

 

단양 신라적성비 /문화재청
단양 신라적성비 /문화재청

 

적성비가 세워진 연대는 대략 진흥왕 11(550)으로 파악된다.

삼국사기에는 550년에 이사부가 진흥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와 백제가 싸우는 틈을 타서 도살성과 금현성을 빼앗고, 이듬해(551)에 거칠부가 고구려를 침공해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개 군을 취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사부가 점령한 도살성과 금현성이 적성 주변에 위치하고, 거칠부가 고구려를 치며 한강 유역의 대규모 땅을 확보하는 전진기지가 바로 죽령을 넘어 남한강 변에 위치한 바로 이 적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적성비에는 죽령을 넘어 단양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고관 9명의 이름과 소속, 관직명이 나오고, 고관 10명중 가장 먼저 이사부가 등장한다. 이사부가 이들 고관중 우두머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문에서 이사부를 지칭하는 글자는 大衆等喙部伊史夫智伊干(대중등훼부이사부지이간)’이다.

대중등(大衆等)이란 대등(大等)과 동의어로 파악된다. 대등은 신료(臣僚)’라는 뜻으로, 고위관직을 의미한다. 신라는 다수의 대등을 두었다. 비문에 기록된 10명의 고관 중 이사부와 두미지(豆弥智), 서부질지(西夫叱智), □□夫智, 내례부지(內禮夫智) 5명이 대중등에 포함됐다.

대등은 귀족의 구성원으로 특정한 임무를 분장받지 않으면서 신라왕국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데 참여했다. 4개의 진흥왕 순수비를 분석해보면, 임금이 소속해 있는 훼부(啄部)(탁부라고도 읽는다), 사훼부(沙啄部)(사량부(沙梁部)라고도 했다), 그리고 본피부(本彼部) 출신만이 대등에 임명됐으며, 골품상으로는 진골(眞骨)을 중심으로 한 고급귀족이어야 했다.

적성비에 나오는 대중등 5명의 관직을 보면, 이사부가 2등급 이찬, 두미지가 4등급인 파진찬, 서부질지, □□부지, 내례부지 등 세명이 5등급인 대아찬이다. 신라에서는 5등급까지는 진골 출신만으로 구성되므로, 이들 5명이 모두 진골인 셈이다.

대등의 모임은 대등회의(화백회의)이며, 회의를 주재하는 우두머리가 상대등이다. 이사부는 이 5명의 대중등 가운데 우두머리로 회의를 주재하고 통솔하는 상대등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양 적성비에서 5명의 대중등은 모두 훼부, 사훼부 소속이며, 두 부는 내물왕 이후 왕조를 이어간 김씨들이 관할하는 구역이었다.

5명의 대중등 가운데 4명이 훼부 소속이고, 서부질지만이 사훼부 소속이다. 그 아래 관직으로 나오는 고두림(高頭林)성 군주인 비차부(比次夫)와 무력(武力)은 훼부와 사훼부, 추문촌(鄒文村) 당주(幢主)인 도설(噵設)은 사훼부, 물사벌성(勿思伐城) 당주(幢主)인 조흑부(助黑夫)는 훼부 소속이다. 야이차(也尔次)만이 현지 적성 출신이라 소속 부가 없다. 위의 9명은 모두 훼부, 사훼부 출신으로 서라벌에서 올라온 왕경인(王京人)이었다.

 

적성비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이사부가 훼부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신라는 수도가 위치한 경주 분지에 6개의 지역을 나눠 왕경 6부제를 운영했다. 훼부, 사훼부, 잠훼부, 본피부, 사피부, 한기부가 그것이다. 왕경 6부에는 신라초기 왕실을 운영한 박, , 김씨의 족단은 물론 신라 지배층으로 편입된 세력으로 구성됐다.

이사부가 활약하는 6세기엔 훼부, 사훼부는 김씨 왕족이 장악했고, 잠훼부는 박씨, 한기부는 석씨가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훼부는 임금의 직할령에 해당하며, 사훼부는 2인자격인 김씨 왕족의 갈문왕이 수장을 맡아 임금을 보좌한 것으로 파악된다.

위치는 왕실인 월성(月城)을 중심으로 훼부이고, 사훼부는 월성 남쪽의 오릉 지역, 잠훼부는 경주 서쪽 건천 방면이고, 본피부, 사피부, 한기부는 경주분지의 동쪽과 북쪽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사부가 훼부 소속이라는 사실은 진흥왕과 같은 부에 속해 있음을 의미한다. 적성비에 등장하는 왕경인 9명중 훼부 출신이 6, 사훼부 출신이 3명이다. 김씨 왕조의 측근 세력들이 군권을 장악해 영토 확장에 나섰고, 박씨나 석씨등은 군권에서 거의 소외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사부는 병부령을 맡아 임금의 직할령을 위탁 관리하며, 어린 진흥왕을 도와 대외팽창을 진두지휘했음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적성비에서 이사부의 관직을 이간(伊干)이라 했는데, 이는 17등급 관직중 이등급인 이찬(伊飡)을 뜻한다. ‘()’이란 몽골등 유목민족에서 추장, 족장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몽골제국의 영웅 징기스칸(成吉思汗)’이 부족장 회의인 쿠릴타이에서 ()’으로 추대받았는데, 몽골의 이 신라의 관직명 과 동의어다. 자료에 따라 한기’, ‘간기등으로 표현되며, 이벌찬, 파진찬, 아찬등 신라 관직명칭의 어미에 나타나는 ()’ 도 같은 의미다.

삼국사기에 진흥왕이 이사부로 하여금 대가야의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할 때, 그의 관직은 이찬이었다. 적성비의 관직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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