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위기에서 세계를 구한 페트로프
핵전쟁 위기에서 세계를 구한 페트로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9.16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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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26일, 미국 ICBM 발사 신호 포착…컴퓨터 오류로 판단

 

그가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더라면 1983926일에 지구는 종말을 고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정확한 판단으로 지구를 핵전쟁의 위기에서 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구소련 공군중령이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1839~2017)의 얘기다. 그는 죽은 후에도 세계를 구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사연은 39년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1일에 사할린 상공을 날던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군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있었다. 승객 246, 승무원 23명 등 탑승인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사건을 소련의 대량학살이라 규정하고 이 행위는 한국에 대한 공격일 뿐 아니라 전세계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가뜩이나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다.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83년 9월 1일 KAL 007기 피격사건 개요 /위키피디아
1983년 9월 1일 KAL 007기 피격사건 개요 /위키피디아

 

926일 모스크바 남서쪽 비밀벙커 세르푸호프-15(Serpukhov-15)의 당직자는 페트로프 중령이었다. 나이는 44. 그의 임무는 적대국인 미국의 핵무기 동향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 미국의 대륙간탄도탄(ICBM) 하나가 소련을 향해 움직이는 신호가 컴퓨터에 포착되었다. 벙커에 사이렌이 울려 댔다. 얼마후 이동하는 핵무기의 수는 하나가 아니라, , , , 다섯으로 늘었다. 페트로프는 바짝 긴장했다. 진짜로 미국이 핵무기를 발사, 핵전쟁을 일으킬수도 있고, 컴퓨터의 오류일수도 있었다. KAL기 피격사건으로 미국의 보복이 우려되던 민감한 시기였다.

적의 핵공격이 시작되면 바로 반격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파괴된 이후에는 핵 공격을 할수도 없다. 판단의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핵공격인지 여부의 판단은 페트로프가 해야 했다.

페트로프는 컴퓨터의 오류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도 컴퓨터 오류가 있었다. 적이 핵공격을 하려면 모든 핵무기를 일시에 사용해야 한다. 미국이 5개만 쏘는 일은 있을수 없다. 당직사령에겐 핵무기 발사권은 없었지만 판단권한은 있었다. 그 판단 여부를 빠른 시간내에 상부에 보고해야 했다. 최종 발사권한은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갖고 있었다.

페트로프에겐 판단의 시간이 몇분밖에 없었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그는 컴퓨터 오류라고 판단했다. 그는 상부에 올린 보고서에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고 했다.

소련공산당 지도부는 핵전쟁 발발 직전에 페트로프의 판단을 믿었다. 소련 지도부는 일단 핵무가 발사를 보류했다. 소련으로 날라온다는 미국의 ICBM은 움직임을 멈췄다. 나중에 정밀분석에서 미국 노스다코다주 상공에서 구름에 반사된 햇빛이 소련 레이다에 ICBM으로 오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위키피디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위키피디아

 

이 사건은 오랫동안 소련의 1급기밀로 취급되다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인 1998년에 공개되었다. 소련 당국은 컴퓨터 오류로 핵전쟁이 일어날뻔 했던 사실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페트로프는 이 사건이 있은 후 소비에트 당국으로부터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조사의 골자는 정말 미국의 핵공격이 있었을 경우 오류라고 판단할 근거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그의 설명은 불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컴퓨터 오류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수는 없었다. 조사관들은 보고 불충분도 따졌다. 페트로프는 한손에 전화를 들고 보고하고, 다른 한손으론 컴퓨터를 두들겼다. 손이 세 개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견책을 받고 이듬해인 1984년에 불명예 제대를 했다. 그는 일이 알려진 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후 그는 정신쇠약에 시달렸다고 BBC는 보도했다.

페트로프는 20075월 미국을 방문해 사우스다코다주에 있는 미니트맨 미사일 기지 공원을 방문하고선 내가 적국 비밀장소를 방문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스토리는 세계를 구한 사람“(The Man Who Saved the World)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201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우드록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세계시민협회가 주는 세계시민상, 유엔의 표창장, 드레스덴 상등을 받았다. 페트로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영웅으로 부르는데 놀랐다. 나는 한번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말그대로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페트로프는 2017519일 조용하게 세상을 떠났다. 77세엿다.

 


<참고자료>

Wikipedia, Stanislav Petrov

Wikipedia, 1983 Soviet nuclear false alarm incident

Wikipedia, Korean Air Lines Flight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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