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성, 서울~인천 길목의 전략적 요충지
계양산성, 서울~인천 길목의 전략적 요충지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09.28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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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 있고, 한강수로 내려다 보이는 곳

 

인천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접근이 용이하다.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계산역에서 내려 10분정도만 오르면 산성터가 나온다. 산성의 일부는 복원되었고, 산성터는 나무를 베고 잔디를 심어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산성에서 내려다 보면 인천시는 물론 한강과 서울이 훤하게 보인다. 저멀리 북한산이 뚜렷하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강화도를 빼면 인천시에서 가장 높다. 조선시대에 경인운하를 뚫으려 했는데, 유림들이 진산인 계양산의 기를 흐트릴수 없다며 반대해 무산되었다고 한다. 지금 그 아래 아래뱃길이 흐르고 있다.

 

 

계양산성에서 내려다본 아라뱃길 /박차영
계양산성에서 내려다본 아라뱃길 /박차영

 

산성은 계양산 동쪽 기숡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만과 한양의 중앙에 위치하므로 삼국시대 이래 전략적 거점이었다. 지금은 인천 해안선이 간척에 의해 서쪽으로 한참 밀려나 있지만, 조선시대 이전에 계양산에서 서해 연안과 한강 하구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였다.

산성은 삼국 시대 처음 축성되었는데, 삼국의 영토전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인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과 왜의 고니시(小西行長)군과의 치열한 싸움터였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후에 산성으로서의 용도가 폐기되고 일정시대엔 공동묘지가 들어서기도 했다.

 

계양산성 성벽 /박차영
계양산성 성벽 /박차영
계양산성 올라가는 길 /박차영
계양산성 올라가는 길 /박차영

 

산성의 형태는 계양산 동남쪽의 능선 아래를 성곽으로 둘러친 테뫼식산성이다. 계양산은 옛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의 진산이며,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했다.

이 산에 있는 만일사(萬日寺)에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시가 전하고, 그의 망해지(望海誌)에 있는 기문(記文)에는 이곳에서 인천과 통진이 모두 조망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계양산고성은 석축이고 둘레가 1,937()이라 하였고, <문헌비고><대동지지>에서는 안남산의 동남쪽에 있는 고성을 같은 규모로 기록하여 이것이 곧 계양산성임을 알수 있다.

산성의 둘레는 1,184m 정도이며, 능선 중간 부분을 중심으로 축조되어 성내가 사방으로 노출되는 구조다.

 

계양산성 전경 /문화재청
계양산성 전경 /문화재청
계양산성 건물지 /문화재청
계양산성 건물지 /문화재청

 

잊혔졌던 산성이 최근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10차례의 발굴조사에서 한성백제 시기의 목간과 원저단경호(圓底短涇壺, 둥근바닥 항아리)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토기인 인화문(印花紋, 찍은 무늬) 토기 등이 나왔고, 화살촉·문확쇠(門確金자물쇠·쇠솥·동곶(童串, 대패 덧날막이철정(덩이쇠) 등 다양한 금속유물들도 출토되었다.

정부는 2020년에 그동안 인천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던 산성을 국가사적으로 승격했다. 근처에 있던 무덤들도 이장하고 산성 주변을 정비했다. 무너진 성벽과 돌무더기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옛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훼손된 상태로 성곽이 방치된 것이 보인다.

 

계양산 전경 /인천시청
계양산 전경 /인천시청

 

산성을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등산길에 나섰다. 계양산(桂陽山)은 옛날부터 계수나무와 회양나무가 자생하였기에 만든 이름이라 한다. 19441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인천시 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해발 400m가 채 안되어 얕잡아 봤지만, 정상에 오르는데 제법 다리가 팍팍했다. 정상의 팔각정에서 잠시 쉰 다음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계양산 정상의 팔각정 /박차영
계양산 정상의 팔각정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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