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신양반층 등장했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신양반층 등장했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0.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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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교수의 ‘신양반사회“…한국 운동권의 사고방식을 유교적 관점으로 설명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그 사회의 토착문화와 접촉하면서 고유하고 독특한 이념으로 변질된다. 사회주의 이념도 현지의 문화에 스며들어 기독교 사회주의 이슬람 사회주의 형태로 나타나고, 동양에서는 유교 사회주의라는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북한의 공산정권이 3대를 이어 세습하는 것은 가장 고집스럽게 성리학 원리주의를 유지한 조선사회 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남한의 운동권 세력들, 그들이 이뤄낸 정권들이 봉건시대의 유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주류 학자는 아니지만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임건순은 조선의 유교문화가 사회주의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20223월초 신양반사회를 춮간한 김은희 교수는 조국 사태와 윤미향 사태에서 그들의 논리가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떠받치던 성리학적 인식체계와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김은희의 경해에 따르면, 조국과 윤미향의 지지자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을 양반과 소인으로 나눈다. 양반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회운동가들로 대체되었고,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쫓는 사람들, 즉 운동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기득권과 적폐세력이 포함된다. 조국과 윤미향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정의는 시민사회가 말하는 정의, 즉 법을 지키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윤리규범인 유교의 ’()의 가깝다는 것이다.

조국 일가는 대학입시, 사모펀드, 사학재단 운영 등에서 온갖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는데도, 지지자들은그가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살아왔다며 그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윤미향도 불투명한 회계로 공익자금을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일해온 사회운동가라는 이유로 그의 지지자들은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사고는 도덕성에 근거한 의로움이 법과 제도를 규제할수 있어야 한다는 유교이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게 김은희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경제·사회·역사관 등에서 한국 엘리트들의 사고방식이 조선 후기로 퇴행하고 있다. ‘성장보다 균등 분배를 강조하고 가진 자를 적대시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외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는 게 증거이다. 이는 빈부 격차 없이, 모두 고르게 사는 농민사회를 지향한 조선시대 유교 경제관의 완벽한 부활이다.”

책표지 /출판사
책표지 /출판사

 

김은희는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 책의 부제로 달았다. 김교수는 586으로 대변되는 현실정치의 세력의 멘탤리티가 조선시대의 양반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저자는 이 사회를 신양반사회로 규정했다.

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실세였던 586 운동권과 한국 진보 진영의 정서와 세계관이 조선시대 성리학과 닮은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친일 청산

양반사회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 의리론에서 보면, 도덕적 가치는 목숨보다 중요하고 식민지 시대에서 친일 협력은 용서 못할 배신이다. 586운동권은 같은 논리에서 자신의 이익, 즉 출세를 위해 산 친일 부역자들을 처단하고 정의로운 독립운동가들을 한국 사회의 중심으로 복권시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한 운동권 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이 통치의 정통성을 항일투쟁과 정신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시위는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이라고 말했다. 이 선언은 세습 정당화를 위해 항일빨치산운동을 신성시하는 북한 정권을 빼닮았다. 김일성 가계를 정점으로 한 빨치산 후손들은 북한 사회의 최고 특권층이며, 김정은의 가장 열렬한 지지 집단이다.

 

아무개 자손이라는 정체성 강조하는 사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며 조상과 후손을 동일시하는 아무개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이 양반 계층에 강화되었다. 조상의 제사를 공동으로 지내는 친족집단을 구분하고 통합하는 제도인 중국 고대의 종법제가 널리 퍼졌다. 17세기에 들어 유학자들의 성리학 이론이 심화되고 유림이 서원과 향약 등을 발판으로 향촌사회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종법제도는 본산지인 중국보다도 조선에 더 엄격하게 받아들여졌다. 제사는 조상 대대로 그리고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우리라는 혈연의식과 집단의식을 강화시켰다. 제사집단으로서의 집안은 정치사회에 종속된 공적인 영역으로 변환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예우를 대폭 강화한 것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군자의 후손은 대대손손 예우해 줘야 한다는 양반 의식의 발로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독립운동 유공자의 4~5대손까지 대학교 학비를 지원하는 독립유공장학금 계획을 내놓았다. 2021년 서울시 독립유공장학금6대손까지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여론몰이 정치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은 집단적 존재로서 국민이 법 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민들이 분노하면, 공정한 법적 절차나 객관적인 증거, 변호와 인권 따위는 중요치 않게 된다. 국민은 야수로 변하고, 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야수에 복종한다.

이는 간관과 선비들을 통해 형성된 공론이 군왕도 복종해야 하는 천명이고 민심이라는 조선후기 양반사회의 재판이다. 서구 시민사회에서 여론은 정치행위에서 참고할 요소일뿐,절대적인 명령이나 지침이 아니다. 국민의 즉흥적인 판단은 무조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

시민단체가 정부 정책에 대거 참여하는 것은 조선 후기 양반사회에서 중앙정부의 관료조직 밖에 있는 지방유림이 거의 준관직자로서 중앙의 정치에 참여했던 실태와 유사하다. 유교적 도덕정치에서 국왕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는 유학자 관원들, 특히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의 감시를 통해 견제를 받았다.

도학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제도화된 삼사의 간쟁 활동은 조선의 왕권을 상당히 약화시켰으며, 조선 중기부터 붕당의 형성과 이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성과 난맥이라는 문제점들을 초래했다. 조선시대 신진사류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세력혹은 운동권의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 ‘패거리 정치’, ‘내로남불’, ‘불투명한정책결정 과정 등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의사결정의 지연과 국정운영 마비

김은희는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한국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의사 결정을 무한정 지연시키며 해결해야 할 현실의 민생문제는 방치되고 만다. 결정을 내리는 자는 반대편으로부터 항시 공격을 받기 때문에 아무도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하지 않게 된다.

조선 전기에 사림의 급진적인 도덕 정치에 대항했던 소위 훈구파 대신들은 이 문제를 정확히 예상했다. 그들은 신진 사료들의 공격적인 간쟁이 대신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국정운영이 마비되는 것을 한결같이 지적했다. 종국적으로 조선시대 중후기에 중앙 정계와 향권을 장악한 사람들의 내부 갈등은 통합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분열했다.

미국의 한국학자 그레고리 핸더슨은 이 분열의 정치로 인해 조선이 세계사적으로 드물게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와 단일민족, 단일문화를 발전시켰음에도 근대화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항일 독립운동 또한 수많은 파벌러 갈라져 통일된 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p220)

 

저자 김은희는

서울대 의류학과(75학번)를 졸업한 후 1993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중앙대 겸임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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