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르미…」 주인공 효명세자 특별전
드라마 「구르미…」 주인공 효명세자 특별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6.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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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개혁 시도하다 요절,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2016년 여름에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공전의 히트를 한 적이 있다. 드라마는 조선 제23대 순조 임금의 맏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를 주인공으로 했다. 내용은 한 나라의 세자가, 남성 내시로 위장한 젊은 여성 홍라온과 사랑에 빠져 예측불허의 로맨스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신데렐라성 드라마였다.

실제 역사에서 효명세자(1809~1830)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억제하려고 애를 쓰다가 21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는 죽기 전에 풍양조씨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았다. 나중에 신정왕후(神貞王后)로 책봉된 그녀는 남편과 달리 82세까지 장수하면서 수렴청정을 하고, 또다른 외척인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의 기반을 만들었다.

 

드라마 「구르미…」의 한 장면 /KBS 홈페이지
드라마 「구르미…」의 한 장면 /KBS 홈페이지

 

효명세자는 창덕궁에서 생활했다. 순조 임금은 당시 조선왕실의 주궁이었던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폐허 상태에서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창덕궁에서 살았다.

효명세자의 이름은 일()자에 대()자를 붙인 햇빛 ’() 자로 정했지만, ‘이라고 발음하라고 해서 이영(李旲)’이라 불리웠다. 효명(孝明)은 효성이 지극하고 영민하다는 의미다.

살아 생전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일찍 낳은 아들(헌종)이 임금이 되면서 후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사후에 추존되어진 조선조 다섯 분 중 한 분이다.

특이한 점은 효명세자가 추존 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27대 임금 중 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한 시호’(諡號)119자로 가장 길다. 종묘(宗廟)에 부묘할 때 영녕전에 모시는 관례를 깨고 정전에 유일하게 위패가 배향된 추존왕이다. 효명세자는 익종(翼宗)’으로 추존된 후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을 양자로 두었는데, 그가 26대 고종이다. 고종이 대한제국황제로 오르면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재추존되었다.

효명세자는 세자 시절에 대리청정에 나서 조선의 개혁과 왕권 및 국방력의 강화를 주도한 큰 그릇의 정치가였다. 왕릉의 능호는 수릉(綬陵)’이며 현재 신정왕후와 합장릉 형태로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효명세자 동궁일기(孝明世子東宮日記)/문화재청
효명세자 동궁일기(孝明世子東宮日記)/문화재청

 

창덕궁에는 효명세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에서 1809년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자로 태어났다. 이마가 튀어나온 귀상이라고 전해지며, 그날로 원자로 삼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왕들이 후궁 소생인 반면 정비 소생인 대군으로 태어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가 숙종을 낳은 이래 150년 만에 일어난 크나큰 경사였다.

1812년에는 희정당(숭문당)에서 왕세자로 책봉돼 책봉식을 치렀으며, 1817년 성균관에 입학해, 입학례를 성균관에서 치렀다. 1819년에는 경헌당에서 관례를 치른 후 덕인(德寅)이라는 자()를 받는다. 그리고 그해 풍양 조씨와 가례(嘉禮)를 올렸다.

궁의 서문인 요금문은 박규수와 교유하러 다니던 문이고, 관물헌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중희당은 세자들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동궁 역역에 속해 있는 전각이다. 효명세자는 주로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스승들과 서연을 펼치던 곳이다. 후원으로 들어가면 의두합과 운경거를 만날 수 있는데 세자가 강성한 조선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키우고자 주로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공간이었다.

의두합(倚斗閤) 정면을 보면 대청이 있고 가운데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기오와 의두의 글자 의미를 잘 살펴 생각해보면 할아버지 정조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큰 뜻을 펼치고자하는 의미가 실려 있다. 건물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이 규장각과 연결되어 있어 개혁군주 할아버지 정조를 닮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운경거(雲磬居)는 한 칸 반의 건물로 하단부에 구멍이 있어 공기가 잘 유통될 수 있어 악기와 책을 보관 했을 것으로 보인다.

폄우사(砭愚榭)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건물로 온돌방이 있어서 겨울에도 세자가 즐겨 찾아 공부를 하고 시를 지었던 공간이다. 궁궐지에 실린 <폄우사에서 정묘어제운을 경차하다> 사영 시 중 추월(秋月)을 소개한다.

구슬 같은 이슬이 뜰에 내리고 달은 막 솟으니/ 온 하늘 아래가 참으로 똑같이 밝구나/ 영롱한 세계에 화풍마저 일어나니/ 늦은 밤 글 읽기에 밤기운 알맞도다

 

효명세자의 관례(성년식)을 기록한 그림, 수교도(受敎圖)/문화재청
효명세자의 관례(성년식)을 기록한 그림, 수교도(受敎圖)/문화재청

 

창덕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숙종 17년에 지어진 능허정(凌虛亭)이 있다. 능허는 허공에 오르다라는 의미다. 취규정에서 연경당 쪽으로 내려오다 잠간 멈추면 천성동(빙천)지역에 이르고 여기서 눈을 위로 올려다보면 산 정상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자가 보인다. 낙엽지고 난 후 나뭇가지들 사이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잘 보인다. 효명세자가 이곳에 올라 지은 시 능허정즉사(凌虛亭卽事)가 전한다.

천성동 지역은 동궐도에서 민간신앙의 흔적이 보이며 백운사(白雲舍) 주변에 예필(睿筆)이라 하여 왕세자(王世子)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썼다고 보는 글씨가 바위 2곳에 새겨져 있다.

세자는 1827년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 중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 견제와 왕권을 강화하고자하는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고자 예악(禮樂)정치 카드를 꺼내든다. 그리하여 1828년에는 후원에 사대부의 집을 본 따 건립한 연경당(演慶堂)을 짓는다. 연경당은 사랑채의 당호이면서도 건물군 전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경이란 당호는 효명세자가 직접 지었는데 경사스러움을 연출하다 또는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세자는 아버지 순조를 위한 왕권 강화 계책이 숨어 있는 연향을 열게 되는데 순조에게 신하들이 술잔을 올리면서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의식을 펼치게 된다. 이 때 추는 춤이 정재인데 세자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춘앵무무산향이 추어졌다. 하지만 펼쳐 놓았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짧은 생애를 마감해야 했다.

희정당 서협실에서 청정 4년만인 18304월 잦은 기침을 하던 세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내의원에서는 향리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전 승지 정약용까지 불러들여 갖은 노력을 했지만 별 효험이 없어 56일 새벽 21세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 후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왕의 사후에는 궐내각사의 선원전에 어진(御眞)을 제작하여 보관하면서 다례(茶禮)를 올리게 되는데 이곳에 보관했던 익종어진은 여러 단계를 거처 우여곡절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약탈을 피해 임시수도 부산으로 옮기게 되는데 195412월 부산 국악원 창고에 보관 중인 어진이 사진처럼 대화재로 불타 일부만 남게 되었다.

 

1828년 궁중잔치를 기록한 의궤 /문화재청
1828년 궁중잔치를 기록한 의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오는 28일부터 922일까지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특별전이 열린다.

특별전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본 3년간의 대리청정 기간(1827.2~1830.4)에 궁중 연향(잔치)과 궁중정재(呈才) 1) , 궁궐  영건 주2), 궁궐도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과 이러한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성장 과정과 교육, 문예적 재능 등을 주제로 조명한다.

특별전은 효명세자의 생애,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 등으로 내용을 구성하였으며, 110여 건의 유물과 다양한 매체와 영상기법, 재현공간 전시로 효명세자의 삶과 업적을 소개한다.

먼저, 효명세자의 생애는 22세 짧은 세자의 삶을 탄생책봉, 교육입학, 관례가례, 대리청정, 죽음의 시간 순으로 소개한다. 왕세자 책봉 후 지속적으로 기록된 동궁일기(東宮日記)와 대리청정 시 정무 내용에 대한 기록인 대청시일록(代聽時日錄)을 비롯해 성균관 입학과 관례 등 왕세자 효명의 주요 통과의례를 그림으로 기록한 왕세자입학도와 수교도, 그리고 효명세자의 18세 모습을 담은 예진(睿眞, 왕세자 초상화)1830년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직접 쓴 표제가 남아 있는 <순조 어진> 3)등의 유물이 전시된다.

또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시인, 효명에서는 정조에 버금가는 효명세자의 문학적 재능과 성취를 보여주는 학석집 등 효명이 지은 각종 시집과 문집, 편지글들을 소개한다. 특별히, 전시 공간을 효명의 서재인 의두합(倚斗閤, 창덕궁 후원 애련지 옆에 자리함)으로 꾸며 관람객들은 효명의 서재를 둘러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서재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창작한 시의 주요 소재이기도 한데, 효명세자는 의두합의 경치를 10가지 절경으로 분류한 시 십경(十景)’을 짓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십경을 비롯한 효명의 시, 신하들이 지은 답시 등을 영상자료와 함께 소개한다. 영상은 의두합 주변으로 펼쳐진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담아냈다.

그리고, 궁궐도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공간에서는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에 제작된 동궐도4)에 나타난 효명세자의 정치·교육·개인 공간들의 세부를 소개하는 9m의 대형영상을 통해 기존에 조명되지 않은 동궐도 속 효명세자의 거처와 창작 공간의 의미와 기능, 이를 통한 효명세자의 삶의 지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정재를 출 때 여령이 입었던 몽두리, 한삼, 대대 (蒙頭里·汗衫·大帶),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문화재청
정재를 출 때 여령이 입었던 몽두리, 한삼, 대대 (蒙頭里·汗衫·大帶),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문화재청

 

아울러 궁중잔치의 개최와 궁중정재의 창작에서는 궁중 잔치와 정재에서 효명세자가 이룬 괄목할만한 업적을 소개한다. 그는 대리청정기 동안 왕실의 위상 강화를 위해 매년 궁중 잔치를 개최하면서 밤잔치인 야진찬(夜進饌)’을 처음 행하고, 23종의 정재에 대한 창작을 주도하며 독무(獨舞)를 처음 선보이는 등 조선후기 궁중 정재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829년 자경전 밤잔치의 모습을 당시 유물과 투명 디스플레이(display) 화면에 펼쳐지는 3차원 입체(3D) 만화영상으로 구했다. 특히, 왕실여성이 참여한 이 잔치에서는 여령(女伶, 여성 공연자)이 정재를 연행했는데,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와 잔치의 재현을 위해 기존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여령 복식과 왕실 잔치에 술잔으로 사용된 옥잔마노잔’(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을 국내에 처음 전시한다.

한편, 특별전 기간에는 특별강연을 비롯해 효명세자의 주요 업적인 궁중정재를 직접 볼 수 있는 공연도 준비되었다. 먼저, 효명세자의 생애와 문학, 회화, 궁궐, 궁중정재 등에서의 업적을 살펴 볼 수 있는 특별강연이 711일과 95일에 본관 강당에서 각각 열린다.

71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효명세자의 삶과 문학(이종묵, 서울대학교), 회화를 통해 본 효명세자의 삶(손명희, 국립고궁박물관), 95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효명세자와 창작 정재(조경아, 한국예술종합학교), 효명세자 대리청정시기 동궐의 건축적 변화(정정남, 경기대학교) 강의가 진행된다.

 

1829년 궁중잔치를 그린 병풍, ⟪기축진찬도병(己丑進饌圖屛)⟫, 삼성미술관리움 /문화재청
1829년 궁중잔치를 그린 병풍, ⟪기축진찬도병(己丑進饌圖屛)⟫, 삼성미술관리움 /문화재청

 

714일 오후 3시에는 국립국악원과의 협업으로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로비에서 효명세자가 창작한 궁중정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특별강연과 공연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전화(02-3701-7632)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 해설(7.29.~8.23.)과 초등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교육(8.3./8.10./8.17./8.24.)도 진행된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전화(02-3701-7654)로 문의하면 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71일부터 관람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로 변경한다. 야간특별관람은 매주 수토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진행한다.

 


1) 궁중정재(宮中呈才):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는 악기연주·노래·춤으로 이루어진 종합예술

2) 영건(營建): 국가가 건물이나 집을 짓는 것

3) 순조 어진과 효명세자의 예진은 불에 타서 현재 표제와 초상화 일부만 남아있음

4) 동궐도(東闕圖):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으로, 1828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3천 여 그루의 나무와 함께 수많은 건물이 그려져 있는 조감도식 궁궐 배치도

 

효명세자 특별전 안내홍보물 /문하재청
효명세자 특별전 안내홍보물 /문하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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