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내시·궁녀의 공동묘지, 은평구 이말산
조선시대 내시·궁녀의 공동묘지, 은평구 이말산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0.15 0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상궁의 묘, 상선 노윤천, 상다 김경량의 무덤…노원구 초안산과 쌍벽

 

조선시대 궁궐에서 일하던 내시와 궁녀들은 직장에서 죽을 권리도 없었다. 그들은 평생 임금과 그 가족을 보좌하다가 죽기 직전에 궁궐을 떠나야 했다. 대부분 가족이 없었다. 돈은 있었을 것이다. 봉급도 받았고, 모시던 윗분들이 던져주는 용돈도 있었다. 궁궐에 나온 그들이 간 곳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 등의 절이었다. 그들은 절에 시주를 하고 죽음을 부탁했다. 스님들은 중생들을 보살폈다. 그렇게 해서 죽은 내시와 궁녀들은 북한산 자락의 이말산에 묻혔다. 이말산은 그들의 무덤으로 가득찼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이말산 전체가 공동묘지다. 해발 133m의 야산에 조선시대 궁궐에서 일하던 내시와 궁녀의 무덤들이 즐비하다. 후손이 없거나 있어도 거의 찾지 않아 봉분이 사라져 버린 것도 많다. 2010년 서울시가 이말산을 지표조사했을 때 확인한 분묘가 1,746, 비석 등 석물은 1,488기였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불분명하고, 머리가 잘려간 문인석도 많다. 제대로 된 무덤이 있다면 형조판서나 호조판서를 지낸 높으신 나릿님의 무덤이다. 대부분의 궁인들은 이름 없이 이곳에 묻혔다.

조선시대에 한양도성에서 10리 안에 묘역을 쓸수 없었다. 이를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했다. 이말산 서쪽 건너편 앵봉산에는 왕릉 5기가 있는 서오릉이 있다. 풍수가 좋은 곳은 왕족이 차지하고, 아랫 것들은 풍수 따위와 상관 없는 이말산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말산 정상표지 /박차영
이말산 정상표지 /박차영

 

이말산은 한자로 莉茉山으로 표기하는데 李末山으로도 표기했다. 굳이 한자 뜻을 풀이하자면 이말(莉茉)이라는 식물이 많은 산이다. 이말은 재스민의 한자 표현이라고 한다. 실제는 의미 없이 쓰던 구어가 전해내려 왔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 내시들이 잠들어 있는 또다른 곳이 노원구의 초안산이다. 초안산은 노원구 월계동과 창동 사이에 해발 114m의 야트마한 산이다. 초안산의 내시 무덤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죽어서도 궁궐을 지키려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은평구 이말산의 무덤들은 동쪽 사면에 많다. 궁궐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답사 경로 /이인호
답사 경로 /이인호

 

서울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산을 탔다. 산 입구에 궁녀에 관한 설명이 많다. 아마 은평구는 이 산을 궁녀들의 공동묘지로 포장하려 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비문을 갖춘 궁녀 묘가 지금까지 3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말산에는 그중 하나인 임 상궁 묘가 있다.

임 상궁은 본관이 옥구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임효원의 딸이다. 양반집 딸로 태어나 궁궐에 시녀로 들어간 것이다. 13살이던 1635(인조 13)에 입궁해 현종을 30년간 모셨고, 현종의 아들 숙종 때에 75세로 사망했다. 숙종은 임 상궁이 죽자 관을 짤 때 나무와 옷감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말산에는 궁녀에서 정일품끼지 오른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의 아버지인 최효원의 묘가 있다.

 

머리가 잘려진 문인석 /박차영
머리가 잘려진 문인석 /박차영
머리가 잘려진 문인석 /박차영
머리가 잘려진 문인석 /박차영

 

이말산은 궁녀보다는 내시의 슬픔이 가득한 산이다. 이말산에는 내시로서는 최고위직으로 종이품 상선에 오른 노윤천의 묘가 있다. 묘비의 글자가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지만 노윤천 글자만은 뚜렷하다. 문인석 하나가 놓여 있다. 내시 김경량 묘도 있다. 김경량은 임금에게 다과를 준비하던 정3상다라는 관직의 내시였다. 연산군일기에 김경량이 곤장을 맞은 기록이 나온다. 이 산 어딘가에 상세 정여손 묘가 있는데, 상세는 정6품으로 대전의 청소를 맡았던 관직이라고 한다.

 

상선 노윤천의 묘지석 /박차영
상선 노윤천의 묘지석 /박차영

 

이말산은 야트마한 야산이어서 등산이라기보다 산보라는 개념이 어울린다. 발길 닫는 곳에 무덤이 있다. 죽어서 묘비 하나 남기고 그 앞에 친구삼아 문인석 하나를 세웠는데, 그나마 깨진 것이 수두룩하다. 죽어서도 무덤을 지켜줄 후손이 없었던 것이다.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오릉 왕릉은 산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이말산의 무덤들은 비지정문화재라는 표식만 하나 덜렁 매달고 금줄처럼 밧줄을 쳐놓았다. 죽어서도 왕족과 그들을 수발하던 사람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내시 무덤들 /박차영
비지정 문화재 표지 /박차영
비지정 문화재 표지 /박차영
비석도 없는 무덤들  /박차영
비석도 없는 무덤들 /박차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