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탐사⑤…우리나라 최대 중문 주상절리
제주 탐사⑤…우리나라 최대 중문 주상절리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22.10.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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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0~40m, 폭 1㎞, 신이 만든 장관…범섬엔 몽골 잔당 무찌른 내력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대포동 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3.5km에 이르며, 용암의 표면은 클링커가 형성되어 거칠었지만 파도에 깍이어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냈다.

주상절리는 두꺼운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 작용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마치 계단을 쌓은 듯 겹겹이 서 있는 육모꼴의 돌 기둥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어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상절리 기둥에 파도가 펼쳐질 때 자연의 멋진 쇼가 펼쳐진다.

 

 

중문 주상절리와 범섬 일대 /네이버 지도
중문 주상절리와 범섬 일대 /네이버 지도

 

높이가 30~40m에 이르며, 주상절리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상부에서 하부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다양한 형태의 석주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식애를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는 주로 수직이나 수평인 곳도 있으며 주상체의 상부단면은 4-6각형이다. 해식작용으로 외형이 잘 관찰되고 서로 인접하여 밀접하게 붙어서 마치 조각 작품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중문 주상절리는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그 후의 해식작용에 의한 발달한 것으로, 지질학적으로도 연구가치가 있다. 자원으로서 학술적 가치와 경관이 뛰어나 찬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중문 주상절리 /촬영=이효웅

 

범섬은 서귀포시 법환동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로, 멀리서 보면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도(虎島)라고도 한다.

이 섬에는 해식 쌍굴이 뚫려있는데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울 때 뻗은 두발이 뚫어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수려하면서도 면면이 기괴한 이 섬의 자태는 신비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유람선으로 섬을 둘러 볼 수 있다. 섬주변에는 기복이 심한 암초가 깔려 있다.

범섬에는 고려 공민왕 23(1374)에 반란을 일으킨 목호들이 저항하다 최영 장군의 토벌에 쫓겨 도망갔다가 전멸한 내력이 있다.

목호(牧胡)는 목장을 관리하는 오랑캐, 즉 고려시대에 원()나라가 제주도 목장에 말을 키우며 파견한 몽골족 관리를 말한다. 목호들은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해 원나라로 공급했는데, 중국에 명()나라가 일어나 제주도 말을 달라 하니, 몽골족 목호들이 이에 반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공민왕은 최영 장군을 제주에 파견해 반란자들을 진압했다.

고려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적의 괴수가 도망하여 산 남쪽의 호도(虎島)로 들어갔다. 최영이 정룡을 보내어 날랜 전함 40척을 거느리고 그들을 포위하게 하였으며 자신은 정예병을 거느리고 뒤따라갔다. 석질리필사(石迭里必思)가 처자와 그의 일당 수십 명을 거느리고 나왔으나 초고독불화(肖古禿不花관음보(觀音保)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벼랑에 몸을 던져 죽었다.”

제주도가 삼별초의 최후 저항지이기도 하지만, 몽골 잔당의 마지막 거점이기도 했다.

 

범섬 /촬영=이효웅
범섬 /촬영=이효웅
범섬 /촬영=이효웅
범섬 /촬영=이효웅
범섬 /촬영=이효웅
범섬 /촬영=이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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