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우 전설이 내려오는 헌인릉
태종우 전설이 내려오는 헌인릉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0.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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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가 심했던 태종과 원경왕후가 나란히…4백년 사이에 흥망 엇갈린 무덤들

 

헌인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의 무덤인 헌릉(獻陵)23대 순조(재위 18001834)의 무덤인 인릉(仁陵)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두 임금의 간극은 400년이다. 선대의 왕은 외척을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새로 건국한 조선의 틀을 세웠다면, 후대의 왕은 외척들이 발호한 가운데 왕국이 쇠약해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대조적인 두 임금이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묻혔다.

세종이 먼저 헌릉을 자리잡을 때 풍수지리가 좋은 길지를 엄선했는데, 그 덕분인지 조선왕조가 500년을 갔다. 하지만 지력이 쇠했는가. 400년후 순조가 길지에 임했으나 허약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헌릉과 인릉은 행정구역으로 서울 서초구에 위치하지만 대모산 남측 사면의 그린벨트 내에 있어 대중교통 수단으로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필자는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 내려 한시간 쯤 걸어서 왕릉에 도착했다. 그 옆에는 대한민국 권부의 한 조직이 자리잡고 있다.

 

헌인릉 재실 /박차영
헌인릉 재실 /박차영

 

헌릉에는 태종과 부인 원경왕후 민씨가 묻혀 있다. 태종은 역사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으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다.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두차례 왕자의 난을 진압했다. 형인 정종을 왕위에 올렸다가 2년만에 임금 자리를 물려받았다.

왕비 원경왕후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이며,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큰 힘이 되었다. 태종은 말년에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처단하면서 원경왕후와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원경왕후가 세종 2(1420)에 먼저 죽었다.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은 광주 대모산에 조성한 왕비의 능 옆에 자신의 능자리를 남겨 놓으라고 했다. 태종은 죽어 왕비 곁에 묻혔다. 아들을 위해 외척을 제거했지만 그래도 조강지처를 잊지 못한 것이다.

 

헌릉의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묘 /박차영
헌릉의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묘 /박차영

 

헌릉은 쌍릉으로 무덤 아랫부분이 병풍석으로 둘러있으며, 무덤의 형식은 아버지 태조의 건원릉을 따랐다. 각 무덤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했고,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석인·마석을 배치했다. 무덤 앞의 석물은 고려시대의 현릉·정릉, 조선시대의 후릉과 같이 망주석을 제외하고는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추었다. 헌릉에 자리자븐 석물은 다른 왕릉에 비해 두배나 많다.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이 있고 비각을 세웠다.

 

​​헌릉의 정자각과 비각 /박차영​​
​​헌릉의 정자각과 비각 /박차영​​

 

태종 말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온 나라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태종은 눈을 감으면서도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걱정해 내가 죽으면 상제에게 비를 내리도록 청하여 우리 백성들의 근심을 덜어주리라.”라고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자 하늘에서 바로 비가 내려 오랜 가뭄이 풀렸다고 한다. 그 뒤부터 태종이 승하한 날인 음력 510일이 되면 항상 비가 내렸으므로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헌릉에는 아름다운 오리나무 숲에 둘러싸인 습지가 있다. 오리나무는 5리마다 한 그루씩 심어놓고 이정표로 썼다고 해서 붙여진 수종으로, 희귀종이다. 능 아래쪽에는 지하수가 풍부하고 토심이 깊어 17,000여 평에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숲은 2005년에 서울시에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인릉 능침 /박차영
인릉 능침 /박차영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했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인릉 정면의 홍살문과 정자각, 신도비각 /박차영
인릉 정면의 홍살문과 정자각, 신도비각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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