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에 대공포 진지가 있었던 용산성당
일제 말기에 대공포 진지가 있었던 용산성당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1.07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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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묘지에 초기 사제와 순교자 70기 안장…천주교 성지와 같은 곳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가파른 고개가 나오는데, 고개 이름이 삼호정고개다. 고갯마루에 삼호정(三湖亭)이란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서낭당 고개라고도 하는데, 언덕 아래에 부군당이 있기 때문이다.

고개 정상에서 보면 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곳에 용산성당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용산구 산천동 2-11이다.

 

용산성당의 전경 /박차영
용산성당의 전경 /박차영

 

용산성당 자리는 성직자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1887년 천주교 조선교구가 성직자 묘지를 마련하기 위해 삼호정 인근에 부지를 매입했고, 1890년 제7대 ㅈㅎ선교구장 블랑(백규삼) 주교가 선종하면서 이곳을 성직자 묘지로 꾸미게 되었다.

 

용산성당 내 성직자묘지 /박차영
용산성당 내 성직자묘지 /박차영

 

이곳에 예배당이 들어선 것은 1891년이다. 중구 중림동에 있는 약현본당 소속의 공소로 삼호정 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公所)는 신자수가 적어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당을 말한다. 삼호정 공소는 신자들이 스스로 복음의 터전을 일궈 1942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라리보 아드리아노(원형근) 신부가 부임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제가 용산 본당을 대공포진지로 사용하면서, 언덕 아래에 있는 신학교 내의 예수성심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시기가 있었다. 광복 이후 훼손된 성당을 복원하고, 1954125일 성당을 완공했다.

 

용산성당의 종 유물 /박차영
용산성당의 종 유물 /박차영

 

넓은 마당과 녹지를 가지고 있어, 공원과 같은 환경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 구실을 해주기도 한다.

성당내 싱직자 묘지에는 초기 사제들과 무명 치명자(순교자) 70여 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묘지는 전국의 성직-수도자들과 신자들이 찾아오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2010년 이탈리아 로마 리베리오 교황 성모 대성전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된 성모 순례지 전대사 특전을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성모 공경을 위해 용산성당을 순례하는 이들에게는 로마 리베리오 교황 성모 대성전을 순례한 것과 동일한 전대사가 수여된다.

 

용산성당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박차영
용산성당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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