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터 마애여래입상에서 세속잡사를 잊다
삼천사터 마애여래입상에서 세속잡사를 잊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1.1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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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에 조성…온화하고 중후한 외형, 사각형 구멍에 목조가구 설치한듯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서 북한산을 향해 20분쯤 올라가면 삼천사가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는

삼천사터 마애여래입상이다. 삼천사터라 함은 옛날 절이 있던 터라는 뜻인데, 버젓이 삼천사라는 현대화된 절이 나온다. 경치가 좋다. 뒤에 북한산의 암벽이 그대로 드러나고 옆에는 급류를 이루는 개울물이 흐른다.

마애석불은 삼천사 대웅전 위로 30m쯤 되는 지점의 병풍바위 위에 각인되어 있다. 석불 뒤로 북한산 산신을 모시는 산영각(山靈閣)이 바위와 함께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삼천사 내부 /박차영
삼천사 내부 /박차영

 

전체 높이 3.02m, 불상 높이 2.6m 크기이며, 얼굴과 상반신은 돋을새김으로, 하반신과 광배, 대좌는 볼록한 선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미간에 작은 백호공이 뚫려있고 큰 키에 비례가 좋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4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천사의 마애여래입상은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 657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대 미술품에 대한 조예가 없어, 문화재 전문가의 평가와 분석을 옮겨 적는다.

 

북한산 삼천사터 마애여래입상 /박차영
북한산 삼천사터 마애여래입상 /박차영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으며, 얼굴에서는 온화하면서도 중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상체는 어깨가 벌어져 건장한 모습인데 U자형으로 넓게 트인 가슴사이로 내의와 군의의 띠매듭이 드러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다소 두껍게 나타내고 있다.

왼팔에는 겨드랑이 사이로 물결모양의 옷주름을 촘촘하게 새긴 반면 오른팔에는 폭넓게 표현하여 두 팔의 구조와 짜임새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상체의 조화로운 표현에 비해 하체는 불안정한 모습이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곧게 펴서 옷자락을 살짝 잡았고 왼손은 배 앞에 들어 손바닥을 구부렸으나 들고 있는 물건은 표현되지 않았다. 광배(光背)2줄의 융기선을 이용해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했으며 몸광배는 신체 윤곽을 따라 단선으로 깊게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단순화되고 세부표현에 미숙한 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얼굴형이 원만하고 신체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삼천사 마애여래입상과 산영각 /박차영
삼천사 마애여래입상과 산영각 /박차영

 

불상 옆은 가파른 바위계곡이고, 급류가 흘러내려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면 북한산의 거대한 암반이 다가온다. 옛사람들은 급류의 시끄러운 물소리와 북한산의 위압감에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불심에 깊이 들어갈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절은 1970년대에 평산 성운 스님이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된 후 30년간의 중흥불사를 통해 전통사찰 형태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원래의 삼천사 터는 현재의 삼천사에서 산 쪽으로 2km 위쪽에 위치해 있다. 30분 이상 걸어 올라가면 옛절터가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올라가보기로 하고 날이 어둡기 전에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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