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의 흰 불상, 부처의 강 내려다 본다
북한산 자락의 흰 불상, 부처의 강 내려다 본다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2.11.16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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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엘리자베스 키스가 매료…많은 전설 전해져

 

홍제천이 북한산 자락에서 튀어나온 바위에 부딛쳐 굽이치는 모습은 불심을 돋게 한다. 조상들은 그 냇물을 부처님의 강(佛川)이라 했고, 그 바위를 불암(佛巖)이라 했다. 불도들은 부처님의 바위에 보살상을 다듬고 조개껍질을 갈아 하얗게 분칠을 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지문길 옥천암에 있는 마애보살좌상이 바로 그 불상이다. 대개는 보도각 백불’(普渡閣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 부른다. “널리 중생을 구제하도록(普渡) 보호각을 씌웠다”, “흰옷을 입었다는 뜻이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북한산과 인왕산이 갈라진 계곡에 물이 흐르고, 그 자락에 옥천암이란 암자가 있다. 불상은 길가에서도 훤히 보이는데, 흐르는 물 옆 암반 위 보도각에 모셔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냇가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지나다니도록 어로(魚路)가 설치되었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팔작지붕의 보호각을 설치하고 보도각’(普渡閣)이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보도각 전경 /박차영
보도각 전경 /박차영

 

불상의 높이는 5m이고, 전면에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다. 이 불상에 관해 성현(成俔, 1439~1504)용재총화’(慵齋叢話)물줄기를 따라 몇 리를 내려가면 불암(佛巖)이 있는데, 바위에 불상을 새겼다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경지략에는 이 불상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 표기했다.

불암은 홍제천에서 북한산 쪽 산비탈에 면해 있는 바위다. 그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해 불상을 만들었다. 몸 전체는 조개껍데기를 빻아서 만든 호분(胡粉)을 칠했다. 머리에 쓴 관과 귀걸이·목걸이·팔찌에는 금분을, 눈썹··머리카락에는 까만 칠을, 또 입술에는 빨간 칠을 했다.

 

보도각 내부의 마애보살좌상 /박차영
보도각 내부의 마애보살좌상 /박차영

 

신체의 모양은 사실적이고, 손모양(說法印)이 유려하게 구성되었다. 어깨에 드리워진 웃과 가슴에 대각선으로 걸쳐있는 넓은 띠주름도 유연하게 흘러 내렸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고려시대 불교조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공식 명칭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玉泉庵 磨崖菩薩坐像)이다.

이 불상은 일제시대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가 매료되었던 곳이다. 그는 이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놓았다.

 

옥천암 /박차영
옥천암 /박차영

 

이 불상에는 많은 전설이 내려온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또 조선 말기 고종의 어머니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가 여기서 아들 잘 되라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불상에 호분을 발라 백불이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또다른 얘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도원수 권율이 이곳 골짜기에서 왜병에 대항했다. 이른 새벽 조선군이 골짜기를 올라오는 왜군에 총을 쏘자 왜군이 놀라 배불을 흰 옷 입은 조선 군사로 오인하고 총을 마구 쏘는 바람에 탄환을 다 소비했고, 그 틈에 권율이 군사를 몰아 적을 전멸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백불이었음을 시사하는 스토리다.

 

보도각 백불 아래 홍제천의 어로 /박차영
보도각 백불 아래 홍제천의 어로 /박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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