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바다 고대해양탐험가, 제주 바다에 잠들다
채바다 고대해양탐험가, 제주 바다에 잠들다
  • 궁인창 생활문화아카대미 대표
  • 승인 2022.11.17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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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 한국하멜기념사업회 회장이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의 고인은 고대해양탐험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와 함께 오랜 기간 바다 생활을 해온 궁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가 고인의 인생을 추모했다. /편집자주

 

<채바다 선생님을 추모하며>

 

제주인 채바다(蔡波多, 채길웅, 1944~2022.11.15)는 제주의 명물 제주 전통배인 테우(떼배, 뗏목배)을 타고 물길 따라 큰 바다를 지나 일본 큐슈 고도열도에 도착했다. 이는 엄청난 용기를 가진 탐험가들의 도전이었다.

 

고대해양탐험가 채바다 선생님이 20221115일 하늘길로 떠나셨다.

3달전에 전화로 통화하면서 하멜(1630~1692)의 정신과 네덜란드 호린험(Girinchem)가는 범선 항해를 2024년에는 꼭 실현해야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아쉽게도 그만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전화로 강하면서도 나즈녁한 목소리로 30분간 대화를 나눴는데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가 없다.

채바다 선생은 제주 성산포에서 태어난 진짜 바다 사나이였다.

2021828일 오전 6시 범선 코리아나호는 거문도항을 출항해 오후 1시경 성산포항에 입항했는데 놀랍게 부두에서 우리 탐사대원들을 반갑게 맞아준 어른이 채바다 선생님이셨다. 그날 바람이 많이 불어 바다 날씨가 무척 차가웠다. 배 접안시 항구 담담자가 배 접안을 심하게 반대하여 "제주 성산포를 찾아온 손님을 그리 박대하면 안된다"고 직원을 나무라시며 묵직한 목소리로 로프를 잡아주고 접안을 도와주셨다. 지금도 성산포 컨테이너부두에서 지팡이에 의지해 우리를 반겨주셨던 어른의 듬직한 모습이 아주 또렷하다.

 

제주 큰 바다를 보고 성장한 채길웅은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한양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에서 화학 기자재 실험기구 판매 회사를 차려 크게 성공했다. 나이 40세 중반이 되어 90세의 노모가 계시는 제주의 바다가 매양 그리웠다. 그의 마음속엔 항상 어머니의 제주도 바다가 그리웠다. 그는 마음속에 간직한 바다를 찾아 안정된 사업을 청산하고 그리운 고향 제주도로 내려와 짧지만 어머니를 모셨다. 그리고 채길웅이라는 본래 이름을 채바다(蔡波多)’로 개명하고 '고대해양탐험가라는 어려운 길로 나섰다.

 

19965월 첫 탐험에 해병대 출신 5명의 대원과 함께 제주의 전통 떼배인 테우에 몸을 실었다. 테우는 통나무 몇 개를 엮어서 만든 너비 3.5m, 길이 6.5m의 원시형 떼배였다. 고대 우리 조상이 일본 큐슈로 떠났던 그 방법 그대로 바람이 미는 대로, 모터도 없이 그냥 해류가 이끄는 대로 그저 떠내려가는 것이 당시 항해의 모습이었다. 밤에는 어딘지도 모르고 별를 보면서 항해했다. 상어이빨같은 높고 하얀 파도도 해양탐험가의 뜨거운 열정에 손을 들었다. 나는 이 바다를 몇 번 지나 정말 대한해협의 날카로운 6m 높은 파도의 무서움을 안다. 그래서 채바다 선생님의 도전정신을 더 높이 산다.

 

1. 제주도 성산포에서 출발한 배는 6일 밤낮으로 항해하여 일본 규슈 고토열도에 닿았다.

2. 자신감을 얻은 해양탐험가는 다음해 199710월에는 2명의 대원과 함께 제주 성산포에서 출항하여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11일 만에 고토(五島)열도를 거쳐 나가사키항에 도착했다.

3. 20012월에는 영암군 대불항에서 출발해 진도 울돌목, 완도, 거문도를 거쳐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唐津市)에 이르는 길에 도전해 성공했다.

4. 20066월에는 제주~강진 고대 뱃길 항해, 201110월에는 제주~진도 고려 삼별초 뱃길을 탐험했다.

5. 2005년에는 떼배와 제주 해녀들이 사용하는 태왁을 비롯한 전통 어구, , 프로펠러 등 현대 어구 160여 점을 모아 성산포에 바다박물관을 개관했다가, 2012년 부산국립해양박물관 개관을 맞이하여 제주도 바다박물관 전시 유물을 모두 무상으로 부산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했다.

 

2014년에 이효웅 해양탐험가의 소개로 채바다 선생님을 화곡동에서 처음 만나서 대화를 시작한 이후 선생님은 나에게 줄기차게 해양강국 네덜란드인들의 강한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도 선생님은 42살에 자기를 낳아 어렵게 키운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시를 들려주셨다.

채바다 선생의 첫 항해 직전에 老母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네 아비 곁에 산에 묻지 말고 바다에 묻으라. 너는 말려도 안 들을 애다. 네가 네 곁에 있으마" 그는 첫 떼우 일본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어머니 유골을 성산포 바다에 뿌렸다. 성산포 항구에 앉아서 어머니를 회상하고 우는 남자, 그는 정말 어머니를 사랑한 뜨거운 남자였다.

 

어머니 수평선 - 채바다

나는 아버지 무덤에서 /어머니를 부른다 /아버지 무덤은 산에 있고 /어머니 무덤은 바다에 있다

오늘은 /산에 묻힌 아버지보다 /바다에 묻힌 어머니가 더 보고 싶다

수평선의 묻히신 어머니 /내가 수평선 따라 /노 저어 갈 때마다 따라 오신다

아들아 뱃길 조심 하거라

수평선을 따라 오시는 어머니 수평선을 붙들고 /수평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자다가 깨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마음을 아프게 하는 <訃告>가 있었다. 2024년 하멜의 고장을 찾아가는 '범선 코리아나 프로젝트'을 앞두고 날아든 채바다 선생님의 부고였다. 항해를 설계하시고 격려하셨던 그모습이 너무나 생생해 선생님의 옛 사진을 찾아보고 대화를 나누었던 흔적을 모아 추모하는 글을 20221116() 새벽 4시에 올린다.

 

선생님은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가슴에 - 채바다

어머니 기도 소리 /종소리 되어 올립니다 /푸른 가슴을 치는 당신의 기도 /산도 허리 굽혀 플잎들도 합장입니다 /어머니 기도 소리 /물소리 되어 흐릅니다 /텅 빈 가슴을 치는 당신의 기도 /바람도 머리 숙여 구름들도 돌아서는 밤 /환한 웃음 못 드리는 부끄러움 /원죄되어 아파오는데 /어머니 /오늘도 /어머니 가슴에 못만 박고 있습니다

(발표일자:199710)

 

채바다 선생님! 평생 잊지않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弓仁昌 合掌

 

#바다탐험가 #채바다 #하멜 #제주도 #표류 #천년호 #떼배 #오조리포구 #테우 #어머니 #네덜란드 #성산포 #장보고대상 #우도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채바다씨(2016년) /사진=이효웅 해양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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