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만 몰래 사용하던 중국 여서문자
여자들만 몰래 사용하던 중국 여서문자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2.11.2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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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중국 정부가 뒤늦게 공인…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금지하기도

 

중국 후난성(湖南省) 장융현(江永縣)에는 소수민족인 야오족(瑤族)의 거주지가 있다. 이곳엔 여성들만이 사용하는 문자가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여서(女書)문자라고 했다. 중국식 발음으로 누슈(Nüshu)라고 한다.

이 글자는 여자들만 배우고 쓸줄 알았다. 중공 정권이 들어선 1949년 이전에 여자는 한자를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들만 소통하는 문자가 생겨난 것이다. 누슈가 언제 시작된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동안 누슈로 쓰여진 책자는 거의 불태워졌고, 남성들의 언어인 한자로 누슈의 존재를 기록한 문서가 없기 때문이다. 학자에 따라 누슈의 기원을 송()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몽골() 지배시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청()나라 시대에 활발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엔 이론이 없다.

여서문자는 글자 하나에 하나의 발음을 내년 표음(表音)문자로, 한자처럼 글자마다 음과 뜻이 다른 표의(表意)문자와는 구분된다. 언어학자들은 한자보다 여서문자가 진보한 문자라고 평가한다.

글자모양은 점과 선, 삐침 등으로 구성된다. 모양은 한자의 해서체(楷書體)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다. 글씨는 한자 표기방식처럼 아래로 내려쓰고, 오른쪽으로 옮기는 우종서(左橫書)로 쓴다. 현재 서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드믈고, 장융현 여성들이 옷감에 새긴 자수 형태의 문자가 많이 남아 있다.

 

후난성 장융현의 위치 /위키피디아
후난성 장융현의 위치 /위키피디아

 

장융현의 여자들은 오랫동안 유교의 논리인 삼종지덕(三從之德)에 매여 농사일과 집안을 하며 교육애소 배제되었다. 여성들은 집안에서 옷감을 수선하고 수를 놓으면서 여서문자를 개발하고 이어왔다. 어머니 또는 이모가 딸애게 누슈를 가르쳤고, 그렇게 문자는 이어졌다. 남성들은 여서문자를 배우지 않았다. 여서문자는 또 시집간 딸에게 건네는 삼조서(三朝書)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결혼 후 3()일째 되는 아침()에 건네주는 책()이란 뜻이다. 삼조서는 여성의 애환과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서문자 글씨체 /인민일보
여서문자 글씨체 /인민일보

 

누슈는 가파른 사암 봉우리와 깊은 계곡, 안개가 덮힌 은둔의 마을에서 사용되는 문자였고, 중국 한족들은 이 문자의 존재를 거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군이 이 문자의 위험성을 인지했다. 1940년대에 중일전쟁 당시 후난성을 점령한 일본군이 이 문자가 암호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 금지했는데, 실제로 항일가요를 짓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장융현의 여성들 사이에서 누슈를 사용하는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 이 첩첩산중에도 TV를 통해 베어징어가 보급되고, 여인들이 일자리를 구해 도시로 나가기 때문이다. 누슈는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 갔다.

누슈를 되살린 사람은 저우 슈오이란 남자다. 그는 장융현 문화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다. 그런데 1950년 그의 이모가 장융현 마을의 남자와 결혼하고, 시집간 곳에서 여자들만 사용하는 암호문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우는 암호언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바로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그의 연구는 반동으로 몰려 연구 파일은 불태워졌다. 그는 자신의 연구로 인해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21년을 보낸후 1979년에 석방되었다. 그는 여성문자를 이해한 최초의 남자라고 말한다.

 

여서문자로 쓴 책자 /인민일보
여서문자로 쓴 책자 /인민일보

 

문화혁명이 끝난후 1983년 저우는 여서문자에 대한 보고서를 당 상부에 올렸고, 중국 중앙정부가 그 문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2004년 여서문자 최후 사용자인 양환이(陽煥宜) 할머니가 9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중국 당국은 뒤늦게 여서문자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려 하고 있으나, 문자 계승자가 없는 상태여서 고심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누슈 문자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 2004년에 무형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중국 당국은 박물관을 세우고, 그곳에서 수강생들에게 여성문자를 가르치고 있다. 죽어가던 문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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